05. 몸의 기억 음식의 기억

소만, 멸치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내릴 때가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그냥 하염없이.


그래서 한의사가 침을 놓을 때

갑자기 몸에 쌓인 기억이 자극을 받아

눈물을 흘리기도 한단다.


기억은 뇌가 아니라 몸에 쌓이기도

하는 것이다.


몸의 기억보다 음식의 기억은 더 강렬하다.


2018_0527_삼척 490_2.jpg 멸치에 고추장이면 소주 한 병은 거뜬하다!
2018_0527_삼척 511_2.jpg 살림집을 겸하는 세월이 오래된 음식점은 무조건 맛있다

얼마 전 식당에 갔다가

양념 하나 없이

그냥 척 퍼 담은 고추장에

멸치를 보고 그랬다.


강냉이나 과자가 아니라

멸치를 내주는 집을 좋아하는데

그날은 고개 빳빳이 쳐든

퍼런 몸 비늘이 싱싱한 멸치를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 죽방멸치인가요?

- 어째 아네. 남해 죽방멸치가 좋지.


멸치도 생선이냐,

하지만 남해 죽방멸치를 먹어보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제대로 살이 올라

어른 손가락보다 굵은 것이

부드러우면서 씹는 맛이 좋다.


소주 한 병을 비우자

친구가 묻는다.


- 왜?

우리 멸치쌈밥 먹으러 남해 갈까?

- 멸치 뭐 먹을 게 있다고,

고등어 쌈밥도 아니고?

- 마른 멸치가 이 정도면 생멸치는 어떻겠어?

멸치 무시하지 마라!


남해에 가면 멸치쌈밥을 먹어야 한다.

2014_0621_남해 005_3.jpg 칼칼한 양념에 멸치가 주연인 멸치쌈밥

죽방렴은

조선시대부터 조수간만의 차가 큰 해안에서

사용되는 전통어업이다.

참나무 말뚝 사이에 대나무를 엮어

V자 형의 그물을 만든다.

밀물 때는 들어온 고기가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해 갇힌다.

그물로 잡은 것보다 쫀득하고

살결이 다치지 않아 좋다.


남해 죽방에 잡히는 것이 멸치만은 아니지만

이맘때면 멸치가 가득하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滿]는

소만에 멸치도 오동통하니 살이 오른다.


생선조림처럼 멸치에 한껏 양념을 얹어 끓이고

쌈을 싸서 먹으면 소주가 술술 잘 들어갔다.


남해에서 그렇게 먹었던 게 언제였는지

참 오래된 것 같은데

그때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였던 남자는 기억이 안 나고

얼큰하고 맵싸한 멸치쌈밥의 맛이 떠올라

남해에 가고 싶다.

2014_0621_남해 007_2.jpg 죽방멸치는 어른 손가락만큼 굵다!

강렬한 음식의 기억을 안주삼아

오늘은 멸치에 고추장 찍어

소주를 마셔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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