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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즐거움

<걷는 사람> 하정우 (feat : 까미노 데 산티아고)

내 삶의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원래의 나는  도보 3분 이상은 택시였지만 까미노 이후 나는 언제든 잘 걷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시작은 반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고 꾸준히 하는 것, 계속해서 나를 다독이는 것, 그래서 마침내 끝까지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 얼마나 짜릿하고 기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웬만하면 걸어 다니는 배우, 하정우가 <걷는 사람>이라는 책을 냈다고 했을 때 읽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와이에서 하루 10만 보를 걸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촬영장까지도 걷는다,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2년 연속 받고, 대국민 공약 때문에 577킬로미터 국토대장정을 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책을 읽고 싶지 않은 것은 배우의 이름으로 내는 책이 잘 팔리는 게 질투가 나서였고, 걷기에 대해서라면 나도 일가견이 좀 있기 때문에 그걸 책으로 낼 수 있는 배우 하정우를 또 질투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잘 걷지 않는다.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하루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약속이 있어 외출이라도 하면 그 날은 거의 글을 쓰지 못한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 화산회(화요일엔 산에 간다)에 나간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1만 5 천보에서 2만 보 정도를 걷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걸어야 건강도 챙기고 머리에 브레이크도 걸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산회에서 시인 언니가 하정우의 <걷는 사람> 책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정우도 매일 걷는 게 쉽지는 않대. 정말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일어나 앉기만 하자고, 그저 살짝 몸을 일으켜 앉아만 보자고, 그렇게 살살 달래 가며 일어나고 운동화를 신고 한 발만 내디뎌보자 한대.”


그 말에 끌려 책을 읽었다. 그는 정말 걷기를 좋아하는 걷기 예찬가고, 걷기 전도사라는 것이 책을 읽으며 한 문장 한 문장 느껴진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그리고 이후 내가 겪고 느꼈던 걷기에 대한 모든 즐거움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까미노 전까지 나는 등산화를 신어본 적도 없고(그래서 3일 만에 발병도 났었다) 그렇게 오래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걷다 보니 어느새 하루 30킬로미터쯤 걸어도 괜찮은 내가 되었다. 물론 힘들다. 그래도 걷기의 즐거움을 아니까 걷는다. 내려갈 산을 왜 굳이 올라가는지 알게 된 것과 같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잘 걷지는 못한다. 나는 내 속도, 내 보폭에 맞춰 나의 방식으로 즐겁게 걷는 것이 좋다. 오히려 그때가 처음이라서 내가 내 몸에 맞는 나의 방식을 만들고 그에 따라 걸을 수 있어서 걷는 것을 즐기게 된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안다. 누구나 걸을 수 있지만 걷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뇌의 활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서 동시에 걷는 것은 아주 힘들다. 그래서 걷다 보면 생각이 없어진다. 오늘은 얼마나 걸을까? 무엇을 먹을까? 어제 먹었던 수프 괜찮았는데 오늘은 버섯을 넣고 수프를 끓여먹을까? 어디에서 잘까? 다음 마을까지 걸어도 될까? 아니면 여기서 멈출까? 걸으면서는 이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넘친다.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걸었던 5-6월은 까미노를 걷기 가장 좋은 때라고 한다. 가을이라면 9-10월이 좋단다.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하지만 낮에는 태양이 작열하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대부분 아침 일찍 5-6시부터 걷기 시작해 12시나 늦어도 1시 전에는 하루의 길을 마친다. 시에스타 때문에 2시부터 5-6시까지는 식당도 마트도 쉬기 때문에 그 전에 도착하는 것이 좋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아침잠이 많고 아침을 꼭 챙겨 먹었다. 8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9시쯤 출발했다. 첫 번째 보이는 바르(bar)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한두 시간에 한 번씩 쉬면서 천천히 걸었다. 바르가 있으면 커피를 마시며 쉬고 바르가 없으면 길에서 스카프를 깔고 앉아 양말까지 벗고 확실하게 쉬었다. 물과 간식, 점심 꺼리를 들고 다니면서 길에서 점심을 먹을 때가 많았다. 처음 내가 길에 앉아 쉬는 것을 보면 외국인들은 걱정을 했다. 그들은 신발을 잘 벗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양말까지 벗고 있는 것을 보면 발이 아픈지 걱정하기도 했다. 아니 괜찮아, 난 피크닉 중이야, 하고 말하면 웃으며 지나가기도 하고 그들도 나를 따라 쉬기도 했다.


하정우는 “가만있지 못하는 재능”이 있다고 한다. 회의를 할 때 낙서를 하고 말할 때 제자리 걷기라도 한다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회의 내용이 따분한가 걱정을 한다고. 그래서 자기는 낙서가 아니라 하정우식 회의 속기록을 쓰는 거라고 말해주면 사람들이 이해한다고 한다. 귀신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내가 늘 하는 말이다. 우리는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려 하지만 어쨌든 자기 기준으로 생각해 이해한다. 그러나 나와 타인은 다르다.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 다른 점을 명확히 말해줘야 한다. 알겠거니, 이해하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치다 오해가 쌓이는 것이다.



난 양말까지 확실히 벗고 쉬었기 때문에 그 길의 끝까지 발에 물집이 잡히지 않았고, 처음 걷는 데다 짐까지 무거운데 잘 걸을 수 있었다. 매일 피크닉하고, 요가도 하는 특별한 동양인으로. 그렇게 4-5시가 되어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샤워를 하며 옷을 빨고,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해가 밤 10시에 졌기 때문에 일찍 저녁을 먹고 마을을 산책하거나 산책 후 돌아와 와인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일기를 쓰고 수다를 떨고 그러다 내일 어디까지 갈지 정하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또 새로운 하루, 걸어야 할 길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내 짐은 좀 무거웠다. 배낭의 무게는 자기 몸무게의 10%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한다. 하지만 까미노에서 순례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인 알베르게에 묵기 위해 필요한 침낭과 수건, 세면도구 등을 챙기면 1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다. 걷다 보면 힘들어서 치약도 반 잘라 버리고 싶다지만 내 경우는 오히려 처음 시작할 때보다 늘었다. 파리에서 샌들을 샀고, 팜플로냐에서 폴라폴리스 겉옷과 스카프를 샀다. 등산화가 익숙하지 않아 샌들은 아주 유용했다. 정말 발이 아플 때, 가볍게 마을을 돌아다닐 때 샌들을 신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폴라폴리스를 입고 스카프를 둘러맸다. 쉴 때는 깔고 앉았다가 툭툭 털고 배낭에 매달고 잘 다녔다.


그 길에서도 매일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길을 잃을 때도 있고, 사람들 때문에 속상할 때도 있고, 한국에 돌아와 잘 살 수 있을까 걱정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매일매일을 선물 받은 사람처럼 많이 웃고, 많이 감사하고, 행복하게 걸었다.


걷다 보면 생각이 사라지기도 하고, 어쨌든 돌아갈 그 날까지 내가 그곳에서 해야 할 것은 잘 걷고 잘 여행하는 일뿐이었으므로. 하정우가 말한 것처럼 “어쩌면 인생에는 내가 굳이 휘젓지 말고 가만 두고 봐야 할 문제가 80퍼센트 이상일지도 모른다. 조바심이 나더라도” 그 길에서는 어찌 할 수 없어 다행이었다. 그냥 “지금”을 즐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외국어를 잘하지 못했고, 내 속도로 걸었기 때문에 나는 거의 혼자 걸었다. 까미노는 서쪽으로 걷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걷는다. 그래서 때로는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힘들어서 오늘은 걷지 말까, 여기까지만 걸을까 했다가도 한 발을 내디디면 다른 발이 저절로 내디뎌질 때가 있다. 걷기는 뇌 속에 자동화된 프로그램처럼 프로세스화 되어 있고, 처음엔 잘 못 걸어도 계속 걷다 보면 숙달이 될 수밖에 없다.


“루틴의 힘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잠식하거나 의지력이 약해질 때, 우선 행동하게 하는 데 있다. 내 삶에 결정적인 문제가 닥친 때일수록 생각의 덩치를 키우지 말고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루틴의 힘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의 요즘 루틴은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커피를 내린다. 핸드드립으로 에스프레소 한 잔과 아메리카노 한 잔, 두 잔의 커피를 들고 서재로 온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책상 앞에 앉아 향을 피우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모닝 페이지를 쓴다. 그리고 그 날의 할 일을 포스트잇에 적어 책상 앞에 붙여 놓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중간중간 페이스북이나 전화 통화도 하고 그러다 졸리면 좀 자기도 하고. 그렇게 매일 글을 쓴다.


앞으로 여기에 두 가지를 더 붙이려 한다.

“힘들다, 걸어야겠다” 내 몸에 뇌와 손만 있는 것 같아서. 매일 한 시간의 산책!

“가만있지 못하는 재능” 때문에 매일 2페이지 이상의 새로운 글쓰기!



“고통보다 사람을 더 쉽게 무너뜨리는 건, 어쩌면 귀찮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다 견뎌내면 의미가 있으리라는 한 줌의 기대가 있지만, 귀찮다는 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하찮게 느껴진다는 거니까. 이 모든 게 헛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차오른다는 거니까.”


대뜸 멈춰버리고 싶었다.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산 게 20년이고, 재미있는 글을 쓰자 시작한 게 5년 되었는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이 모든 것이 헛짓이 아닐까, 그냥 남들처럼 먹고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살아도 힘든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 나이에 이렇게 혼자 외롭게 글을 쓰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와이에 왔으니까 10만 보 걷기에 도전해보자며 다 함께 목표를 설정한 것 아닌가? 왜 걷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그 ‘의미’란 걸 찾으면서 포기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고통의 한 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 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김작가로 사는 것이 좋으니까,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으니까 이왕이면 재미있는 글을 쓰자, 나만의 글을 쓰자, 목표를 정해놓고 왜 쓰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그 ‘의미’를 찾으면서 포기하려 하는 것일까? ‘포기해도 되는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내게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좋아하는 재능이 있으니 매일 새로운 글 두 페이지를 쓰자. 지금 쓰던 글도 힘들어하면서 무슨 또 새로운 글이냐 싶지만,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 말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니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매일 글을 쓰고 매일 걷고 단순하게 돌아가자.


까미노를 걸을 때 사람들의 공식질문 1호는 ‘어디서 왔어’고 2호는 ‘넌 왜 이 길에 왔어’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단순해지고 싶어서. 서울에서 나의 생활은 너무 복잡하고 머리가 아파서

이 길을 걸으면 단순해질까 싶어서.”



매일 걷고 먹고 웃으며, 빨래조차 기분 좋은 여정이었던 일상 같은 여행, 까미노에서 돌아왔을 때 난 생각했었다. 삶을 여행처럼, 여행을 삶처럼 살자고.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한 달에 한 번 여행을 다니고, 일상은 여행처럼 즐기며!


<걷는 사람>을 읽고 보니,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힘들어도 그것은 나의 선택이고, 힘들어도 대뜸 멈춰버릴 것이 아니라 걷기로 “인간이라는 동물의 태엽”을 감아 “지금 이 곳에서 더 버티고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채워야 한다.


그러니 오늘부터 나의 루틴을 새로 정하자.

- 일어나면 커피와 모닝페이지

- 하루 1시간의 산책

- 매일 새로운 두 페이지의 글쓰기


* 걷기에 대한, 걷기와 배우의 삶에 대한 좋은 글이 마음에 쏙 든다.

* 사진의 편집과 사진에 달린 글의 편집이 정말 마음에 안 든다.

두 종류 다 진짜 보기 싫어서 결국 건너뛰게 만든다. 내 책은 잘 만들어야지!

* 이 책 덕분에 어제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을 때 몸을 설득하고 다독이는 방법을 써먹었다. 어떤 책을 읽고 바로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은 진짜 좋은 책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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