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비 오는 날엔 춘천에 가야 한다

하지, 감자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온 세상이 선명해지고 증폭된다.

색과 냄새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100배쯤!



교통사고 이후, 비가 오기도 전에 몸이 알아요, 했더니

실제로 비가 오기 전에는 기압이 낮아져

상대적으로 체내의 압력이 높아지고

이때 아픈 부위의 조직들이 더 부풀어 오르면서

관절을 압박하고 통증을 유발한다고, 의사가 그랬다.


감정이 증폭되는 것도 기압과 상관이 있을까?


어쨌든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마음이 둥둥 떠다니며 갈피를 못 잡고

옛사랑이 떠오르고

그리고

지글지글 ‘전’이 떠오른다.


왜일까?


‘타닥타닥’

비 오는 소리와 전 부치는 소리가 비슷하다,


햇빛이 없어

‘멜라토닌’이 증가하고 '세로토닌'은 줄어들어

식욕이 증가한다,


기온이 떨어져

말초혈관은 수축하고 내부 장기 혈액은 늘어

위장 운동과 위산 분비가 활발해져 식욕이 증가한다,


외부활동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한 곳에 앉아서 음식이나 술을 즐기려는 성향 때문이다,


등등


다양한 이유를 이야기한다.



요 며칠 비가 부슬부슬, 쫙쫙 내려주고

때는 마침 하지라 감자전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감자는 봄에 일찍 파종해 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수확한다.

페루 칠레 등 안데스 산맥이 원산으로

서늘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요즘은 시설 재배나 이모작도 가능하고

찌거나 볶거나 튀겨 먹어도 맛있다.


그래도 역시 하지 즈음에 나온 하지감자를

비오는 날 전으로 부쳐 먹는 게 제일 좋다.


집에 감자가 박스로 있으니

부쳐 먹으면 될 일인데


하필이면 춘천 서민주막의 감자전이

입안에서 맴도니 이를 어쩌나.

한때 춘천 최대 번화가였으나

침체되었던 육림고개

텅 빈 점포들이 청년들에 의해

아기자기한 술집과 찻집, 음식점, 소품 가게 등으로 바뀐 곳이다.

그런데 그 입구에 자리한 서민주막은

청춘이 아닌 나이 지긋한 부부가 운영을 한다.


술을 마시고 있는데

앳된 여대생이 혼자 가게로 들어와

감자전을 시킨다.


강릉이 고향인 그녀는 대학생은 아니고(완전 동안에 깜박 속았다!)

춘천 모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인턴인데

감자전이 너무 먹고 싶어

춘천 여기저기, 감자전을 찾아 헤매고 있단다.

수소문 끝에 시장에 가서 먹었는데 그 맛이 아니라

춘천에서 가장 맛있는, 추억의 감자전을 물으니

서민주막을 알려주더란다.


여자는 한 입 먹자마자

거의 눈물 글썽한 얼굴이 되었고

핸드폰을 꺼내 한참을 타닥타닥한다.

궁금증이 나서


“어때요?”


하고 물으니


“제가 찾던 그 맛이에요.

어렸을 때 먹던 딱 그 감자전이에요.”


“그런데 안 먹고 뭐해요?”


“친구들한테 알려줬어요. 드디어 찾았다고!”


술을 못 마신다고 사이다에 감자전 두 장을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먹고 가는 여자를 보니

도대체 무슨 맛인가 궁금했다.


“시간 좀 걸려요!”


하기에 막걸리를 시켰다.

결국 감자전이 나왔을 때는

막걸리가 떨어져 한 병 더 시켰다.


강판에 금방 갈아 부친 감자는

그녀의 말대로 겉은 크리스피할 정도로 바삭 고소하고

가운데는 쫀득하니 입에 착 붙었다.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앙금을 걸러 부치면 쫀득하고

믹서기로 갈아 수분이 있는 상태로 부치면 부드럽고 바삭하다.

그런데 도대체 감자에 뭔 짓을 했기에

두 가지 맛을 다 내는 것일까?

부치는 방법이 묘하게 다른데

몇 번을 지켜보아도

그 디테일은 도저히 말로 설명이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감자전이 그냥 감자전이지

뭐 그리 깜짝 놀랄 맛도 아니고

그걸 두 장이나 먹고 갈까?

아무리 한 장에 5천 원이라도

부치는 시간이 꽤 걸리는데 기다리면서까지...


친구 왈,

맛 중에 가장 무서운 맛은 아는 맛이다

그중에서도 추억이 묻어있는 맛

기억이 가물가물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맛

그 디테일을 일일이 말로 설명할 수 없어도

묘하게 다른 맛!

그래서 남자들이 첫사랑을 못 잊는 거라고.


그렇다면

나는 모든 사랑이 첫사랑이었나?

아니면 모든 안주가 나의 첫사랑이었을까?


친구는 그냥 감자전이나 먹으라며

막걸리를 따라줬다.


비도 올 것 같고

하지라 감자도 수북하고

감자 갈고 소금 넣고 부치기만 하면 되는데

난 왜 하필 서민주막의 감자전을 떠올리며

입맛만 다시고 있는 건지...



그놈의 아는 맛이 사람 애간장을 녹인다.

에잇, 비나 죽죽 쏟아져라!

춘천 드라이브 간 사람들

비안개에 산도 하늘도 도로도 안 보여 벌벌 떨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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