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닭불고기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 김현철, <춘천가는 기차>
나는 치맥을 좋아하지 않는다. 몸이 차가운 편이고 탄산을 싫어해서 콜라는 물론 맥주만 마셔도 코를 쏘는데 그 느낌이 아주 싫다. 닭은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닭요리는 구이나 볶음이지 튀김이 아니다. 튀김을 먹으면 과자를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입천장이 헐어버리기 일쑤라 튀김옷을 벗겨야 하는데 그러면 좋아하는 껍질도 같이 벗겨져 닭을 먹는 의미가 없다.
나는 닭을 먹을 때 날개와 목부터 먹는다. 껍질이 많고 뼈가 많아 살은 부드럽고 연하며 쏙쏙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부위다. 남들은 뭐 먹을 게 있다고 하는 부위다.
한편, 술안주로 꼬치구이 중에 닭껍질구이를 아주 좋아하는데 복날 즈음이 되면 내 단골 꼬치집에서도 닭껍질구이가 안 된다. 삼계탕 때문에 닭껍질 수급이 어렵다는 것이다.
삼계탕은 집에서 먹는 음식이지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이 아니다. 복날이 되면 엄마가 전복이나 낙지 혹은 전복과 낙지를 모두 넣고 토종닭을 삶아주는데 밖에서 사먹을 수가 이유가 없다.
절기가 입추라 해도 아직 때는 8월 초 무더위가 한창이고 곧 말복이다. 그래도 여름이면 닭을 한 번쯤 제대로 먹어주고 싶고 이럴 때면 P와 함께 갔던 춘천의 닭불고기집이 생각난다.
P는 키가 185센티미터에 적당히 넓은 어깨, 한 마디로 슈트발이 좋았다. 그가 양복을 입은 모습은 친척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이었다던 11월의 어느 날, 딱 한 번 보았다. 난 그 날 내가 그와 사귀게 될 것을 예감했다. 단발의 나보다 좀 더 머리가 길었던 그가 사자의 갈기처럼 머리를 휘날리며 남색에 보라색 체크무늬가 멋스러운 양복을 입고 성큼성큼 걷던 뒷모습은 대학시절 킹카 선배들과 비슷했다. 지금도 기억난다. 학교 앞 건널목에서 “뛰자” 하고서는 성큼성큼 걷던 최하 185센티미터 이상의 장신의 선배들. 국문과에 그런 선배들이 많았던 것도 참 이상하지만. 하여간 P는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의 어린 시절 이상형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은 체격조건을 갖추었다. 낮고 차분한, 김동률의 읊조리듯 말하는 노래가 잘 어울리는 목소리까지.
춘천 닭갈비는 본래 돼지갈비를 팔던 춘천의 김영석 씨가 어느 날 돼지고기를 구하기 어려워 닭을 사다가 연구 끝에 닭을 발라 12시간 양념에 재워 숯불에 구워 닭불고기로 팔기 시작한 것이 유래라고 위키백과는 말한다.
이후 닭갈비는 춘천의 휴가 나온 군인과 대학생들에게 값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요리로 각광받기 시작해 대학갈비, 서민갈비로 이름이 났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의 닭갈비에는 양배추와 떡, 사리가 닭보다 많다.
나는 본래의 닭불고기가 좋다. 스테이크란 맛없는 고기, 질 나쁜 고기에 양념을 더해 그 맛을 가린 사기꾼 같은 음식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내게 주인공인 닭고기보다 양배추와 사리가 더 많고 요란한 고추장양념이 맛을 가린 닭갈비는 체질적으로 싫다. 그걸 먹으러 춘천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다. 춘천에 가게 되면 간혹 먹었지만 일부러 찾아가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숯불에 구워먹는 원조닭불고기는 그야말로 나의 취향을 저격했다!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빨간 양념으로 시작했다. P는 귀찮다고 뼈없는 닭을 원했으나 나는 뼈에 붙어있는 살이 제일 맛있으므로 중간점에서 타협해 오돌뼈 닭갈비를 시켰다.
숯불이 백탄으로 뽀얗게 예쁜 색으로 나오는 것이 기분 좋더니 이어 나온 오돌뼈 닭갈비는 적당히 씹는 맛이 있어 P도 좋아했다. 이어서 간장닭갈비와 소금구이를 먹었다. P가 좋은 점 한 가지는 양이 많다는 것. 고기 2-3인분은 거뜬히 먹기에, 나는 천천히 메뉴를 모두 섭렵할 수 있었다. 마침 옆에서 처음 보는 메뉴를 시킨다. 바쁘지만 친절한 종업원에 물어보니 닭내장과 똥집, 초란이라고 했다.
닭내장탕을 먹어본 게 언제였지? 대학 때 이후로 닭내장을 먹어본 적 없는 나는 그것을 구워서 먹는다는 게 신기해 그것마저 주문해 버렸다. P는 내가 그토록 맹렬히 음식을 시키는 것을 본 적이 없어 조금 놀라는 눈치다.
“초란 먹어봤어?
뱃속에서 달걀을 품고 있던 어미닭이 잡히는 바람에
채 달걀이 되지 못한 거라고, 그걸 먹을 수 있겠어?”
“그래? 한 번 먹어보지 뭐!”
초란은 그냥 노른자였다. 흰자가 감싸지 않고 그냥 샛노란색의 노른자만 있었다. 닭내장과 함께 그것을 숯불 위에 올리자 금방 얇은 막이 터지고 찐한 노른자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종업원이 와서 호들갑을 떤다.
“초란을 먼저 드세요. 닭내장도 살짝만 익혀 드세요.
닭내장은 신선해야 먹을 수 있는 거예요. 딴 곳에서는 못 드세요.
오늘은 운 좋게 초란도 있네요.”
초란은 계란을 열 개쯤 응축시켜 놓은 듯 진한 맛이었다. 아직 계란이 되기 전에 먹는다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지만 계란이 되어서 먹나 그 전에 먹나 똑같고, 그렇게 생각하면 과일조차 익어서 땅에 떨어진 것만 먹는 극단적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 <노팅힐>에서 나왔던 프루테리언(Fruitarian) 말이다.
닭내장은 씹을 때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쫄깃하면서도 이에 부딪치는 식감이 사각거리는 것이 아주 신기한 맛이었다. 이제 나는 닭껍질만큼이나 닭내장과 초란을 좋아하게 되었다.
“억울해, 이토록 맛있는 것을 왜 난 여태 몰랐단 말이야”
하고 말했을 정도다. P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P의 치명적 단점은 치킨과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치킨과 떡볶이를 좋이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걸 매번 먹는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술은 좋아하는데 안주도 치킨과 모듬전과 아구찜을 매번 돌려먹는 식이랄까.
딱 한 번 춘천에 다녀온 이후로는 여행도 가지 않았다. 그는 여행을 가기에는 일이 너무 바빴고 맛집을 찾아가는 수고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양복보다는 청바지를 선호했다. 나는 심각하게 그가 미맹이 아닐까 고민했다.
얼마 후 자연스럽게 그와 헤어졌다. 내게 식성과 취향은 이성적 매력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못 생기고 키 작은 남자보다 술안주 고르는 취향이 다른 것을 더 못 견디겠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그가 나를 춘천에 데리고 가서 닭불고기맛을 알게 해준 것에 감사하다. 그 날 P는 춘천에 일이 있었고, 잠깐이면 끝나는 간단한 일인데다가 나를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고, 그래서 노력이라는 것을 할 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고 좀 억울해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여간 연인들은 처음엔 하늘에 별도 달도 따준다 한다. 여행가자고 꼬드기고 근사한 데 가서 데이트도 하지만 처음에만 그런다. 상대의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처음뿐이고 이내 자신의 취향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뻔히 알면서도 넘어가고 그래서 또 감정을 소비했다는 점이 억울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대학시절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과 기차여행의 낭만으로 기억되던 춘천에 이제 나도 남들처럼 닭갈비를 먹으러 갈 수 있게 된 것은 과연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