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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배 18일] 내가 보고 있다!

108배 게으름

자꾸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매일 108배를 하고 그 날의 생각을 브런치에 올린 지 오늘로 18일째 나도 놀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 언니 결혼식 날도 민족 대명절 설날에도 마감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날도 빼먹지 않았다.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루쯤 하는 어때, 하는 생각도 들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점점 더 힘들고 잠자는 시간도 부족한 요즘이라 더 힘들다.


문득,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800km를 오로지 내 두 발로 걷는 일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제대로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걷는 만큼 걷고 힘들면 택시나 버스도 타고 그렇게 걸을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워낙 오지 산골이라 어떤 곳은 버스가 2-3일에 한 번 다니기도 하고 택시를 부를 수 없어 오로지 걷기만 가능한 곳도 있다. (요즘은 우버가 있겠지. 자가용 택시도 있는데 언어가 안 통해 몰랐다는 건 길 끝에쯤 알았다.)


결국 나는 택시도 타고 버스도 탔다. 물집보다 무서운 코골이들 때문에 3일 넘게 한 숨도 못 자니 세상 불행하고 힘들어 버틸 수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큰 마을로 가서 호텔에서 하루 자고 일어나니 퉁퉁 부은 다리도 편해지고

몸도 가벼워지고, 다시 걸을 만했다.


그래 처음 생각처럼 나의 속도에 맞춰 걷자.


그러던 어느 날, 까미노 3일째에 함께 저녁을 먹었던 한국인 친구들 9명 중 한 명을 만났다. 60대의 할머니였는데 참 열심히도 걸으셨나 보다. 그런데 그분이 대뜸 그러는 거였다. “버스 타고 온 거 말 안 할게” 이건 무슨 말이지? 바로 이해가 안 되어 멍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한테 말 안 할 테니까 다 걸었다고 해요” 하고 덧붙인다.


엥? 힘들면 버스나 택시도 타고 정 안 되면 포기할 수도 있는 거지 이 길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 난 나의 속도, 나의 컨디션에 맞춰 걸을 것이고 그게 부끄럽지 않다. 누구에게 말하든 말든 내가 알고 있고 내가 내게 부끄럽지 않으면 된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분은 아닌지 몰라도 나는 다른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고 나는 내 목표와 속도에 맞춰 잘 걷고 있으니 그런 것 상관없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 메세타 지역을 휙 건너뛰어야 했다. 산티아고에서 로마까지 비행기를 예약해 두어서 36일 안에는 끝내야 했다. 다시 간다면 더 긴 시간이 걸려도 천천히 걷고 싶다.


그래도 결국 다 걷고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해 인증서도 받았다!

(까미노 인증서는 100km 이상만 걸으면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프란세스 길에서는 사리아에서부터만 걷는 이들도 있다. 요즘 300km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어쨌든 당시에는 그랬다. 그때 내가 걸은 길은 560km쯤 되고 33일을 매일 걸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을 때처럼 앞으로 하루 이틀 건너뛸 수도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 죽자 사자 하지 말고 마음 내려놓고 편하게 내 속도, 내 컨디션에 맞춰서 108배를 하자!

108일이 걸리든 180일이 걸리든 108배를 108일 동안 해보는 게 나의 목표다!


중요한 것은 나다. 어느 치킨집의 사훈이 "사장이 보고 있다" 라 쓰여진 것을 보고 웃었다. 그러나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무섭다.


오늘도 내가 보고 있다! 생각하며

게으름을 떨치고 일어나 108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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