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부작용
108배를 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명상이 된다는데...
나는 108배를 하면서 점점 생각이 많아진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우선 처음 절을 시작하고
10번까지는 발목에 신경이 쓰여
아무 생각이 없다.
앉아서 밥 먹는 곳도 웬만해서는 피하고
무릎 꿇을 일도 거의 없으니
발목이 구부러지고 반대로 펴지고 하는
절운동이 내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10번쯤 하고 나면
발목이 부드러워져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는다.
무릎이나 발목 관절이 안 좋은 사람은
절운동이 무리일 수 있겠다.
어제 다큐 편집회의를 하고
집에 돌아온 게 9시도 안 됐었는데
세수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요즘 집순이로 콕 박혀 있었더니
잠깐이라도 외출을 하면 몸이 피곤하다.
2시 반 조금 넘어 눈을 떴다.
꿈에 길을 헤매다 문득 밝은 빛에 이끌려 가보니
셀 수없이 많은 고래 떼가 물속을 헤엄치고
그들이 뿜어내는 물 위에 무지개가 찬란했다.
하늘빛 투명한 물속에서도
그들이 뿜는 물과 무지개가 아름다웠다.
너무 예뻐서,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려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
핸드폰으로 검색해봤으나
그런 그림은 찾지 못했다.
세수부터 하자 일어났다가
108까지 했다.
졸리면 낮잠 자면 되지 뭐,
프리랜서잖아!
절을 하다 보니
10년쯤 전에 실상사에
잠깐 머물렀을 때가 생각났다.
(브런치에 올리려 사진 찾아보니
2011년 5월이다.)
낮에 혼자 사진 찍고 돌아다니니
개 한 마리가 쫓아왔고
스님이 말을 걸었다.
그러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없지만
종무소에 말해둘 테니
와서 며칠 있으라 하셨다.
새벽 4시 예불은 힘들면
참석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 절한 시간이
3시 20분부터 4시 5분이었다.
새벽 예불을 위해 3시 반에
잠을 깨우는 죽비소리는 들었어도
한 번도 참석 못했었는데..
그러다 40번쯤 절하고 나니
갑자기 이 시간이라면
동해에 가서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티맵을 확인해보니
속초까지 2시간
일출 시간은 7시 10분...
계속 갈등하며 절을 했다.
남들은 108배를 하면
생각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점점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가?
그래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108배를 다 하고 나니 뿌듯하다.
일찌감치 108배로 하루를 시작했으니
오늘은 하루를 꽉 채워
살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