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와 글쓰기
사람들이 모여 있고
앞에는 흑백 영화가 돌아가고
4-5살 쯤 된 어린 아이는
영화가 무엇인지 몰라
한 사람씩 앞에 나가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앞에 나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긴장하면서...
얼마 전 이창동 감독님을 인터뷰하는데
영화에 대한 최초의 기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상상했을까?
역시 소설가라 남다른 것일까?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설레고 좋았다.
그리고 작가는 본능이구나 생각했다.
이번에 한국영화 100년 다큐를 하면서
영화를 참 많이 봤다.
그 중 이창동 감독님은
다큐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한 편도 빠지지 않고 모두 본,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봉준호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만 안 봤다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봤던 것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고
박찬욱 감독 영화는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박쥐>와 <달은 해가 꾸는 꿈>, <소년 천국에 가다>
3편을 안 봤었다.)
영화 <초록물고기>로 데뷔해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까지
내놓는 영화마다
굵직하고 무거운 서사로
감동을 자아내는 감독.
때로 불편한 이야기와 묘사가 너무 적나라하지만
어떤 것이 진짜 사랑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역사와 개인사가 어떻게 엮이는가?
그는 영화를 통해 질문을 던지며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처음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어려서 소꿉놀이를 하거나 병원놀이를 할 때도
언니와 동생에게 역할을 주고
대사를 정해주었단다.
사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작가는 늘 쓰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108배를 하든, 사진을 찍든
여행을 가든, 책을 읽든
일단 글로 남기지 않으면
내 것이 안 된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108배를 하고 바로 글을 쓴다.
요즘은 108배가 우선인지
108배를 한 다음 쓰는 이 글이 우선인지 모르겠다.
이번 생은 이렇게 작가로 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