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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 48. 죽고 싶지 않아!

108배와 마음 챙기기

“하지 않고 죽어도 되는 일만 내일로 미루라!”

- 피카소


오늘도 알람보다 일찍 일어났다.

좀더 잘까 망설이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1시간이 지났다.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목이 아프다.


“침대에서 책 보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책보다 핸드폰 보는 게 더 안 좋은데..


물 한 잔을 마시고

108배를 했다.


어젯밤에 먹은 야식이 아직 소화되지 않아

신물이 넘어온다.

그만할까, 하루쯤 건너뛰지 뭐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드는데

그럼 브런치도 건너뛰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계속했다.


학창 시절에는 매일 일기를 썼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그림일기 검사를 받아야 해서 썼고

고학년 때는 방학 숙제라 썼다.

그때나 지금이나

숙제를 꼬박꼬박 하고 노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방학 끝날 때쯤이면 몰아서 쓰기도 했다.

큰언니가 숙제 검사를 했으니까.


우리 집은 4남매다.

형제자매가 많다는 것은 서로의 일기를 보며

날씨와 내용을 돌려쓰고 베껴 쓰는 데도 유용하다.


5학년 여름방학, 나는 억지로 쓰는 일기가 너무 재미없어

매일매일 정말 쓰고 싶은 대로 막 썼다.

어떤 날은 그 날 읽은 책의 독후감도 쓰고

어떤 날은 아주 짧게 한두 줄 쓰고 넘어가기도 하고

설마 선생님이 이 많은 일기를 다 읽겠냐

생각하며 마음대로 썼다.


방학이 끝나고 며칠 후, 선생님이 불렀다.

내 일기가 아주 솔직하고 재미있어서

자기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그래도 되는지 내 허락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선생님이 고맙다.


그다음부터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숙제가 아니라 그냥 쓰고 싶어서 썼다.


백일장에 나가서 상을 받았을 때보다

그때 그 선생님의 칭찬이 더 좋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은가.


엄마가 힘든 가정형편에도

책 사주는 것을 아끼지 않은 것만큼

그때 그 선생님의 말이

내가 작가가 되는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된 이후, 일기를 쓰지 않았다.


방송작가는 너무 바빴고

일로 하루 종일 글을 쓰고 나면

내 일기 따위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일로 쓰는 글은

주문받아 쓰는 방송이나 홍보, 책 대필 등은

결국 내 글이 아니다.


내 글에 대한 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입금되면 써요!” 하던 콧대 높은 프리랜서의 종말이었다.


얼마 전 5년 동안 쓴

나의 첫 책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글을 쓰면서 또 답답했다.

독자를 의식해야 하니까.


그래서 내 마음대로 써야지, 하고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하고

브런치에 연재도 시작했다.


그러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아티스트 웨이를 만나고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나 혼자 볼, 혹은 읽지도 않을

일기를 쓰는 게 즐겁다.


그러니까 재미있어서 쓰는 게 좋아서

나는 계속 글을 쓴다.


그러니까 매일 일기를 쓰고

브런치에 연재를 하는 것은

작가로서의 생존신고다.


작가라는 것을 빼고 내가 나일 수 있을까?

이번 생은 그냥 작가로 살기로 정했으니

그냥 계속 쓰면서 이렇게 생존신고를 하는 것이다.


처음 108배를 시작한 것은

아직 죽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때의 난 하루하루 영혼이 병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결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싫어서

참고 또 참았다.

그러다 결국 내가 나를 죽이지 않을까 무서웠다.


피카소는 하지 않고 죽어도 될 일만 내일로 미루라 했는데

이대로 내가 죽으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부모님께,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108배를 하며 내게 묻고 또 묻고

결정을 내렸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자!

지금이라도 되돌리는 것이 맞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으니까.


108배를 하며

매일 108배 브런치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일종의 생존신고였다.

나를 걱정하는 가족, 친구들에게

“나 괜찮아요”라는 안부인사였다.


그런데 48일째인 오늘 깨달았다.

매일 108배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재미있다.

108배를 하지 않으면 이 글도 쓸 수 없다.

자승자박(自繩自縛)!

108배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108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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