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넘어가니 생일이 다가오는 게 더 이상 반갑지 않아 졌다. 올해는 마흔의 마지막 숫자라 더 예민한 느낌이다. 이제 어쩔 수없이 '나도 낼모레 오십이야'라는 말을 할 때가 된 것이다. 나보다 5살이 많은 남편을 몇 년 전 그런 식으로 놀렸었는데 이제 내가 당하게 됐다.
거울도 보기 싫고 마음이 우울해지려는데 이런 내 마음도 모른 채 SNS에는 내 생일이라고 주위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창피하기도 해서 핸드폰의 카톡 설정에 들어가 생일 알림을 꺼놓으려 할 때 마침 문자가 왔다.
"언니, 생일 축하해! 이 세상에 태어나줘서 고마워."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보내준 카톡 문구에 무뎌져 있던 내 마음이 그만 살살 녹아버리고 말았다. 서로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며 언제나 모든 기쁨과 슬픈 일들을 함께 나누는 친동생 같은 친구.
그녀의 축하 멘트를 들여다보니 주마등처럼 언제나 내 생일과 크리스마스와 연휴등을 챙겨주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 주는 그 친구의 생일이라는 것도 기억이 났다. 나도 이번 친구의 생일 때 꼭 서프라이즈로 그녀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다.
마침 친구의 생일이 월요일이라 그녀의 직장 근처 한국인 꽃가게에서 예쁜 꽃을 사서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회사 점심시간에 부랴부랴 차를 타고 친구네 매장 근처에 가서 꽃집을 찾았다. 그 꽃집에 보랏빛의 아리따운 난이 가득 심겨 있는 화분을 골라 생일 축하 카드와 함께 친구네 회사로 찾아갔다.
다운타운에서 의류매장의 매니저로 일하는 친구는 마침 샵 입구에 서 있었다. 나는 커다란 난꽃 화분으로 내 얼굴을 가린 채 그녀에게 가까이 가서 "친구야, 해피 버스데이!" 하고 큰소리로 놀라게 했다. 친구는 순간 꿈속인 듯 내가 건네준 꽃을 얼떨결에 받아 들고 꽃을 보다가 나를 보고 더 놀라며 어리둥절해했다.
"언니, 어떻게 된 거야!"
"점심시간이라 잠시 너 보러 왔지. 동생아, 매번 너에게 받기만 해서, 이번에는 나도 챙겨주고 싶었어, 생일 축하해! 나도 네가 태어나줘서 고마워!"
친구는 그렇게 한참 동안 나와 꽃을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었다. 우리 회사가 그녀의 매장에서 10마일 남짓하는 곳에 떨어져 있어서 그 짧은 시간에 찾아간 것을 보고 놀라는 그녀의 표정만으로도 나는 이번 서프라이즈가 성공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생일은 이런 서프라이즈가 감동이고 따뜻함을 전해주는 거 같다. 1시간의 점심시간 동안 꽃을 사서 배달도 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해서 좀 아쉬웠지만 오늘은 그 친구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테니 나는 다음기회에 날을 잡자 약속을 했다. 아직도 화분을 들고 내게 인사를 하며 우왕좌왕하는 친구를 뒤로 한 채 다시 내 차에 올랐다.
이게 바로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기분이 좋은 것인가 보다.
다음번에도 나이 때문에 기분 꿀꿀해하는 친구들에게 작은 서프라이즈를 해줘야겠다.
사랑을 받고 있다는 그 기분을 일깨워주면 분명 태어난 날이 더 감사해지는 느낌이 들것이다.
생일은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축복 속에서 기쁨으로 태어났음을 축하받는 날이기에 이제는 우울한 생각을 버리고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문구를 적어 주위 친구들에게 축하해 주고 싶다. 그 서프라이즈에 감동을 받는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행복지수가 더 올라가는 것 같다. 내년에는 또 다른 것으로 놀라게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