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예전 술에 살짝 취하시면 이북에 놔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며 부르시던 아버지의 18번 노래였는데.. 이제 이민살이가 한국에서 살던 시기보다 많아진 내가 어느덧 그 구절을 나 홀로 읊고 있다.
한국에서는 중학교도 졸업 못하고 이민의 길로 들어선 거라서 한국에 대한 향수만 많을 뿐 어디 내로라할 큰 추억거리조차 없다.
우리가 살던 동네의 옆집에서 거의 5년 넘게 친동생처럼 함께 어울렸던 경화와 30년 넘게 그 인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내 우정 넘버 1호이다.
경화와 그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지게 된 동기는 그녀의 오빠를 내가 10년 넘게 짝사랑한 까닭도 있으리라. 멋지게 자라서 그의 앞에 짠하고 나타나고 싶었기에 이민 왔어도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와 연락을 게을리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10년 후 내가 20대의 꽃송이가 활짝 핀 시기가 되어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경화에게 득달같이 연락을 하고 두근두근 가슴을 누르며 '너네 오빠는 잘 있니? 어떻게 변했을까?' 무지무지 궁금했는데.. 정작 만나보니 예전에는 무뚝뚝한 모습이 좋아 보였는데 이제는 영 말주변도 없는 그의 모습을 다시 보고는 내가 상상하던 짝사랑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와의 기억은 거기서 끝났지만 경화는 여전히 내 옆집 살던 동생노릇을 곧잘 한다. 무슨 소식만 있어도 곧바로 연락하고 내 안부를 수시로 물어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동생, 얼른 그녀가 딸을 데리고 엘에이로 또 놀러 와주기를 기다려진다.
그래도 그 14년을 살아온 동안 재산목록 1위의 친구 한 명을 잘 키워 놓아서 다행이다.
이민 와서 다니기 시작한 성당에서 알게 된 친구, 성지는 우정목록 넘버 2이다.
그녀와는 고등학생 때 만난 거라 추억거리가 많기도 하다. 머리는 컸고 이민 와서 말은 안 통하고 학교 가서는 수업에 집중 못하고 그저 사춘기라는 명목으로 부모님에게 좀 혼나는 짓도 하며 깔깔대다 10대 후반을 보냈다. 그녀가 다른 타주로 이사 가기 전까지..
나의 우정 넘버 2는 그렇게 이사 가고 나서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는 중이다. 지난달 연휴에도 난 그녀네 집에 방문해서 밀린 수다를 떨며 편하게 지내다 왔다. 언제고 '나 놀러 가두되?' 하고 물어보면 언제든지 '그럼~ 아무 때고 와!'라고 대답해 주는 친구. 친정식구 같은 친구. 언제 만나도 엊그제 봤던 것처럼 편하고 재미있다.
내 우정 넘버 #3, 희정이는 나를 교회로 인도해 준 친구이다. 언제나 말없이 나에게 편지를 써서 내 손에 쥐어지고 저만치 걸어가던 친구, 그녀의 편지에는 언제나 나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라고 교회에서 같이 만나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당시 20대 초반 주일날 반나절의 시간을 교회에서 허비하기 싫었고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교회에 가면 나 혼자 이방인인 듯 잘 어울리지 못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의 기도 덕분에 신앙생활하는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나를 위한 기도가 쌓이다 보니 그렇게 내 인생을 주관하시기에 급하신 나머지 하나님께서 배우자 기도를 하며 서른 살이 넘게 살아온 지금의 남편을 배필로 주신 것이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매주 주일성수를 해야 했다. 그렇게 단비에 비가 젖듯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날 희정이가 너무 고마웠고 내 인생의 큰 동역자라는 사실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20년 넘게 서로에 대한 중보기도를 해주며 축복하고 감사해한다. 그 친구가 나한테 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다른 친구를 전도하고 싶다. 처음에는 얘가 왜 이래? 할지 몰라도 나처럼 시간이 지나면 그 친구 덕분에 내 신앙심이 여기까지 왔구나 깨달을 수 있기를..
회사에서 10년 넘게 같이 일하며 친하게 된 동료직원 주디언니.
그 언니는 나에게 신의 선물 같았다. 아이들 키우면서 힘들었던 점, 남편과 투닥투닥 싸우고 난 뒤 회사를 가면 그 언니는 꼭 우리 남편의 변호사인양 그의 마음을 나에게 다시 변호하며 내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들을 녹여주었다. 희한한 것은 주디언니의 생년월일이 남편과 똑같았는데 그래서일까 생각하는 게 둘이 똑같았다. 그 언니는 나의 오피스와이프 같은 존재였다. 나의 모든 생각과 불만과 걱정과 기쁨을 함께 나눠주던 언니. 나보다 6년이 많았기에 내 인생의 선배로써 피해야 할 것, 묵묵히 건너야 할 것, 피하지 말고 부딪힐 것 등등을 다 알려주었다. 언니 덕분에 정말 힘들지 않게 30대를 지낸 거 같다. 내 우정목록 넘버 4.
엊그제 만났을 때도 다시 한번 남편에게 감사하라며 한소리 들었다. 혹시 그 언니는 우리 남편이 보낸 사람 아닐까도 싶게 항상 만나면 우리 남편이 할 말을 대신한다. 정말 희한하다.
내 마지막 5번째 우정은 보윤이다.
나처럼 딸 그다음 아들을 데리고 있어서 서로의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기 쉬워서 알게 된 것도 있지만 함께 자녀를 키우며 결혼생활을 하며 그리고 직장생활까지 병행하는 힘든 삶 속이지만 언제나 만나도 불평 한번 없이 꿋꿋이 살아가는 친구, 그런 친구이기에 어떠한 비밀이나 걱정근심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내가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고백했더니 자기 계좌에 현재 5천 불이 있는데 다 꿔주겠다며 몇 달 동안 맘대로 쓰라고 했을 때 참 고마웠다. 그 액수를 떠나서 그렇게 날 믿고 어려운 상황을 도와주려는 마음씨가 너무 이뻤다. 앞으로 보윤이가 상황이 안 좋아서 5만 불이 필요하다 하면 난 선뜻 꿔줄 수 있을 거 같다.
신문 사설을 읽다가 우테크(友테크)라는 단어를 접한 적이 있다. 많이들 재테크 재테크라는 말을 쓰지만 정작 나이 먹어서 필요한 것은 우테크라 한다. 인생의 반보다 조금 더 살아온 내가 우테크로 일궈놓은 5명의 보석 같은 친구들은 그 값어치가 엄청 나 보인다. 이 정도면 나는 인생을 헛산 것 같지 않다.
앞으로도 다른 친구들의 우테크 범위 안에 들 수 있게 나 자신 또한 잘 가꿔야겠다. 반들반들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닌 속이 더 진국인 친구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