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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Vada Sep 19. 2024

내 반쪽을 만나게 된 그날

올해 결혼 25주년 감사!

"사람들은 언제고 헤어진 후 시간이 흘러 나중에 약속 없이 우연히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어렸을 적 이민 오기 전 헤어지는 친구들과의 아쉬움이 컸는데 가까이 지내던 외삼촌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학교랑 집밖에 모르던 난 문득 그런 삶이 있을까? 하고 이미 어른이고 친하게 지내던 터라 한번 뜬금없이 물어본 것이다.

"그럼! 있고말고…. 사람의 [인연] 이런 게 꼭 있는 거야. 약속된 시간이 아니더라도 어느 하늘 아래 다시 부딪히게 되지!"

그날의 대답을 들은 이후 난 아쉽게 헤어지게 되는 모든 이들과의 이별을 슬퍼하지 않았다. 만날 사람은 꼭 어디서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안녕]이란 자체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만나지 못한 이들이 많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영희가 가장 그립고, 단짝이었던 연민이, 영주 그리고 시집가서 연락이 끊어져 버린 미영도 보고 싶다. 어느 우연함 속에서 알아보지 못 해서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면 다시 만나리라.

남미로 이민 와서 알게 된 인연 중에도 어찌어찌하다 헤어지고 또 우연한 기회 속에 다시 얼굴 부딪히는 사람이 간혹 있었다. 아무런 약속 없이, 아무런 기대 없이도 어느 제3의 자리에서 마주할 때가 있었다. 반가운 이 였다면 웃으며 인사했을 것이고 아니었다면 그저 얼굴 힐끗 보고 외면했을 수도 있다. 그중에 내 인생을 바꾼 사람이 있었으니….

수많은 [인연] 중에 하루는 친구들 틈에서 처음 알게 되어 함께 커피 한잔을 마주하다 시간이 늦어져서 우리 집까지 데려다 준 사람이 있었다. 그때의 그 모습을 가슴속에 진하게 묻어두며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도대체 이름 석 자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단지 그의 얼굴과 희미했던 목소리만 가슴에 남아 있던 사람이었다. 꼭 한번, 다시 만나 보았으면 하는 기대감을 저버리기 싫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때 만났을 때 같이 온 친구에게 연락처를 알아보고는 싶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 후쯤 우연히 그의 얼굴을 바로 코앞에 마주할 수 있었다.

은행입구에서 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중이었고 그는 나오는 찰나에 딱 마주친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 2가지 옵션이 있을 뿐이다. 첫번째는 그냥 모른체하며 고개를 돌리는것과 두번째는 "안녕하세요!"하며 아는체를 하는것이었다.
물론 나는 후자를 택하고 고개를 끄덕인 후 안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아주 반갑게 인사하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이 그닥 나같은 마음이 아닌것 같아서 가슴은 쿵쾅거리고 뒷통수가 무척 따가왔지만 한동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척 했다.

그렇게 이 사람을 2번째로 만난것이다.
은행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번호표를 받은 채 난 또박또박 뒤도 안돌아보고 걸어가 내 번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잠시 동안 난 나혼자의 최면술에 빠져보고 싶었다. 그가 내 곁에 다가와 그 동안의 안부를 물을까? 아님 어색해하며 그냥 지나쳐 버릴까? 그런 생각도 잠시, 그는 이미 내 앞 빈자리에 와서 앉았고 나를 바라보며 서슴없이 말을 걸었다.

"저기 죄송한데 누구시더라?"
이런...나를 못알아보다니! 하긴 나만의 기억속에 남아 있던것이지 그에게는 그저 대수롭지 않은 만남이었을지도 모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나의 두눈을 훑어보는 그의 시선, 하지만 난 이 순간에 그를 꽉 붙잡고 싶었다. 아니 이미 벌써 나의 최면술에 깊게 휩싸여 있었다.
"음, 저 모르겠어요? 그 날, 크리스마스 이브날 친구들과 같이 ㅇㅇ에서 뵜었는데"
"아~ 기억나는거 같네!"

일부러 모른 척 하는건 아니었겠지?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살짝 어색한 사이 다행이도 내 번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에게 더 말도 못 붙이고 서둘러서 서류를 갖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한 상태로 서류를 보여주고 어느덧 볼일을 마치고 문득 그가 있던 곳을 뒤돌아 보았다.
문앞에서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밖으로 나가던 상황이었을텐데 나를 기다리는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가 왜 저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를 별로 반가워하지도 않더니.. 그냥 "먼저 갈게요!" 하고 각자 자기의 세계속으로 돌아갈수 있을텐데.. 의연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는 그가 어느덧 내 시선에 익숙해지고 있다.

"저는 이제 다 끝났어요."
"아, 잘됬네요 그럼,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요. 마침 그쪽으로 갈일이 생겨서.."

6개월전에 데려다준 곳을 기억해 냈는지 주소를 다시 물어보지 않고도 잘 찾아간다. 집에 도착하기 10분전, 5분전

"저기 코너에서 우회전하면 되지요?"
여기서 난 내릴테고 그는 다시 자기만의 세계로 가 버릴텐데 아쉬움에 입안이 바짝 말라간다. 도데체 이 남자는 나한테 관심이 있는걸까? 없는걸까? 망설이는 사이 그가 말한다.

"우리 언제 커피나 한잔해요!"
나는 속으로 빙고를 외쳤다. 도착하기 1분전까지 이 말이 안 나왔으면 내가 말할뻔 했기 때문에..  그렇게 그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이어지는 결정적인 만남이 시작 되었다.
1주일이 되기 전 난 그의 연락를 받았고, 우린 그렇게 3번째의 만남을 가졌다.
4번째 만났고, 5번째 만났고, 6번째 만났다. 10번째 만나는 날 그가 10송이의 장미를 주며 오늘이 무슨날인지 아냐고 물어볼때 나는 웃으며 “ 꽃집에 꽃이 10송이만 있는날?” 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매번 만나는 날을 세어보는지 몰랐다. 그의 자상하고 다정함에 난 더 반해 버렸다.

이제는 그의 전화 없이 잠이 오지 않는다.
그의 사랑스런 미소없이 행복을 말할 수 없다. 처음 내가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했던 그 간절함이 오늘날 이런 큰 기쁨으로 커져 버리다니..
우연한 인연속에서 스치다 부딪힌 서로가 함께 하나가 되어 이제는 완연한 세계를 추구하며 서로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하루하루가 신기할 뿐이다.
이제는 아쉽게 헤어진 이들과 또 만나고 싶을때면 간절하게 소망하고 열망해보리라, 누가 알랴? 저 모퉁이를 지나 딱 마주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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