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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Vada Sep 19. 2024

30년만 더 친구하자

남사친 이야기

요즘 줄여 쓰는 말 중에 ‘남사친’ 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남자 사람 친구’라는 뜻을 줄여서 쓰는것이다.  곧이곧대로 남자친구라고 부르면 안 되는 진정한 친구 그자체 인데 다른 성별로 된 남사친.  나에게는 30년지기 남자 사람 친구가 있다. 그는 정말 바지만 입었을 뿐이지 나에게 있어 동성의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 보다 더 마음이 통하는 그런 친구였다.

나의 과거의 연애 행적을 다 나누고 가끔은 신랄하게 비판도 해주던 친구 H.

그 친구에 대해 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소개했을 때 일종의 질투도 하고 나름 오해하던 적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 H와 연애를 안 하고 우정으로 지낸 것이 다행이라 여길 뿐이다. 안 그랬으면 길게는 3년 정도의 연애사로 흑역사를 달리했을 텐데 지금은 몇 배가 넘는 시간동안 우정을 함께 나누며 오늘까지 이어질 수 있지 않은가?

H는 뜬금없이 카톡으로 연락을 잘한다.

오늘은 비도 부슬부슬, 겨울비가 온종일 오는 날이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데 카톡으로 연락해준 그의 문자를 읽어 보았다.

웬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크게 확장해서 보니 내가 쓴 글씨체였다. 그 친구가 미국으로 먼저 이민 와 있었고 나는 그 당시 남미에서 살고 있어서 아마도 편지를 보냈던 모양이다. 구구절절 그 당시 나랑 사귀던 남친에 대해 쓰고,  친구 H의 여친에 대해 이리저리 쓴 글을 읽어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한다. 그 당시 1995년에는 20대 총각이 한번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남사친 H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이혼한 내 여사친을 우연히 만나고 (나랑 상관없이 둘이 어쩌다 알게 된 후) 뒤늦게 첫사랑을 겪으며 몸살을 앓고 있을 때였다.

나는 중간에서 그 둘의 연애를 돕는 중이었는지 편지에는 거의 H의 여친에 대한 얘기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 편지를 오랫만에 다 읽고 H에게 물었다.  

“내가 이런 걸 굳이 편지에 구구절절 쓴 이유는 뭘까? 그 당시 이메일 없었나??”

 자문자답으로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HOTMAIL이란 이메일은 한 1년 뒤에 더 유행을 타기 시작한 것 같다. 지난 1995년도에는 요란한 모뎀에 접속하여 채팅은 했던 것 같지만 해외에 사는 친구에게는 손편지밖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암튼 참으로 오래전 일이라 그 H가 다시 보여준 26년 전의 편지를 읽으며 그 당시 감성에 젖어 들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간직하고 있었어? 나는 진작에 다 버리고 이민 왔는데..”

 성격이 꼼꼼한 H라 가능한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그는 첫사랑이 생각이 났을 수도 있겠다.  그러다 꿩 대신 닭이라고 내가 써준 그녀에 대한 얘기를 다시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겠지.. 그 둘은 아마도 부모님의 반대와 또 H가 남미를 떠나오면서 자연스레 헤어지게 됐다. 그 여사친은 그 후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서 잘살고 있다. 물론 H도 장가가서 아들 둘 낳고 잘살고 있고.. 둘 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각자의 맞는 짝을 만나고 가정을 이룬 것이다.

 지금의 H의 와이프는 참 성격도 좋고 이해심도 넓다. 아마 H가 그 힘든상황을 뚫고 이혼녀랑 결혼했으면 많이 부딪힐 수도 있었으리라.

암튼 20년도 넘게 지난 편지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보며 우리는 한동안 가슴이 뭉클해졌다.

벌써 반백 년의 나이가 되어 이젠 소위 말하는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 옛일을 추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참 고마웠다.  남사친으로 30년을 내 주위에서 있어준것이..

그래서 고맙다고 H에 말해줬다.  그랬더니 우리 30년만 더 친구 하자고 한다.

"왜 80살 넘으면 친구 안 할 거야?" 나는 그건 무슨 대답인가 싶어서 물었다.

"기력이나 있겠어? 기억력도 흐려질테고.."

나의 찬란했던 20대를 생생히 기억해주고 함께 추억해줄 수 있는 친구가 여태껏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 비오는 월요일 오후에 다시금 깨달았다.

지나고 보면 참 별것도 아닌 일들에 우리는 설레고 가슴 아파하고 매달리기도 한다.

이제 30년이 흐른 후 그때를 되돌아보니 정말 어리석어 보이기조차 하지만 그때의 그런 추억거리가 없다면 지금 이 삭막한 50대를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H와 앞으로의 30년후 도 기대해본다. 우리가 다시 80살이 되어 지금이 이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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