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남미로 이민 가서 제일 먼저 알게 된 친구 희정이.
그 당시 교회 야외 예배에서 처음 본 희정이는 막내티를 풀풀 내며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고 있어서 나랑 잘 맞지 않을 거라고 단정을 지었었다.
나도 막내였지만 내 밑으로 5명의 조카들이 줄줄이 있다 보니 국민학교 3학년부터 나는 맏언니처럼 조카들을 돌보며 어른스럽게 행동했었다.
그렇게 알게 된 희정이인데 알면 알수록 얘가 순수하고, 또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는 거룩한 분위기의 그녀였다.
고등부 때까지 희정이와 그녀의 친구들과 어울렸다가 우리 집이 성당으로 옮기면서 당시 교회 친구들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었다.
그러다 결혼하기 전 친구의 친구들과 다 같이 어울리다 보니 희정이도 아는 사이여서 우리는 반가워하며 다시 예전처럼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남편들을 만나 20대 중후반으로 결혼을 하였다.
우리 친구들 중에 나만 2001년도에 미국으로 이민 오게 되었고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자녀들에게 낳아 키우며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러다 희정이가 지난 10여 년 전부터 미국으로 시즌이 되면 의류 샘플을 구입하러 출장 오면서 우리의 우정은 다시 빛이 났다.
희정이가 1주일 정도 엘에이에 오면 나는 내 스케줄을 모두 비우고 그녀와 같이 오는 친구들과 함께 맛집도 가보고 엘에이에 좋다는 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렇게 매년 보게 되어 너무 좋았었는데 그녀가 사는 남미에 IMF가 찾아와서 더 이상 미국에 출장 오는 것 도 사치가 되어버렸다.
미불보다 몇 배로 싼 페소를 가지고 달러로 바꿔서 여기에 오려면 그 출혈이 너무 세다고 했다. 그렇게 6-7년 정도 희정이를 못 만나고 있었다.
카카오톡으로 연락은 수시로 하는 중이라 서로의 안부는 묻고 지내고 있었지만 자주 못 만나서 너무 아쉬웠다. 그녀는 항상 내년을 기약하며 한 해 한 해를 보내는 것이었다.
코로나 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골프를 배우며 서로의 실력을 논하고 골프의 좋은 점 나쁜 점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
하지만 카톡으로 나누는 대화로는 아쉬운 건 풀리지가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함께 골프를 치면 얼마나 즐거울까~ 상상만 하곤 했었다.
견우와 직녀처럼 얼굴을 맞대고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나도 직장 생활하다 보니 2주 정도의 휴가를 받기가 어려웠다. 고작 1주일 정도는 그나마 숨통이 트이게 휴가를 받을 수는 있는데.. 하며 다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있던 중에..
맞아! 내가 보고 싶으면 내가 찾아가면 되지! 하고 깨닫게 되었다.
1주일 휴가지만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서 그다음 주 일요일에 돌아오면 꼬박 9일이니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희정이에게 남미에 놀러 가겠다고 선포를 하고 그때부터 우리는 그 9일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에 들어갔다.
2명의 친구를 더 연락해서 우리 넷은 그룹카톡방을 만들어서 "알젠여행방"이라고 뭉치게 되었다. 내가 남미에 살 때는 여행도 많이 못 다니고 그래서 그 당시 유명한 수학 여행지였던 “바릴로체”에 며칠 가는 것도 계획에 넣었다.
그리고 내가 제일 먹고 싶은 것들,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적어보라며 나를 위해 미리 찾아보고 준비하겠다고 한다.
그녀들과의 여행을 준비하는 나날 속에 친구들은 서로 예약을 하겠다고 하고 서로가 돈을 내겠다고 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카톡방에다가
"친구들아, 잘 살아줘서 고맙다!"라고 적어보았다.
그러자 민자가 "푸하하하"라고 적으며 빵 터졌다고 한다~
나는 왜 웃을 일이지 하며 물어보았다 "
왜? 너무 새삼스러워?"
그랬더니 그녀가 하는 말이
"엊그제 우리 엄마가 우리 부부 보고 한 말이랑 똑같아서, 너네들 잘 살아줘서 고맙데이~"
순간 우리 넷은 다 같이 ㅎㅎㅎㅎㅋㅋㅋㅋ 등을 카톡방에 날리며 함께 웃었다.
그래, 50살이 되어 친구를 위해 돈 쓰는 것에 대해 아까워하지 않고, 가족이 있지만 잠시 애들은 아빠에게 맡겨놓고 여자들끼리 3박 4일 여행을 떠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기꺼이 동참해 주는 친구들이 나는 그저 대견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는 건 여태껏 친구들이 그 가정에 수고하고 헌신한 것 같아서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그래, 이제는 친구가 제일 좋을 시기야!
우리 슬슬 곰국 한 솥 끓여놓고 좋은 곳으로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