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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Vada Sep 19. 2024

내 30년 지기 친구

앞으로 50년 더 친구 하자!


이민 와서 매해 서로의 생일 때마다 전화통화를 하는 오랜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다 그 친구가 먼저 미국으로 이민 오고 거의 10년을 떨어져 지내다 나도 20대 후반에 결혼해서 미국으로 왔지만 서로 다른 타주에 살고 있어서 자주 못 만나는 친구.
요즘은 그나마 카톡이 편해져서 예전보다 자주 연락하지만 그 예전 90년대에는 서로 손편지로, 2000년도부터는 이메일로 연락하던 친구.
10대 후반에는 서로의 썸남들에 대해 구구절절 써 내려가던 편지들, 20대 초반에는 구체적으로 사귀는 남자 친구에 대한 소식들과 종종 함께 찍었던 사진까지 동봉했었던 편지들. 그래서 결혼하면서 제일 먼저 그 친구의 편지들을 없애야만 했던, 혹시나 지금의 남편이 알면 안 되는 비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서 미안하지만 그 많던 편지들을 고이 간직하지는 못했다. 아마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우리가 각자 결혼한 2000년대쯤부터는 시대에 맞춰 조금 편해진 이메일로 더 자주 소식을 접했었다.
그러다 문득 생일날이 되어 반갑게 걸려온 친구의 전화 목소리는 예전에 내가 아는 수줍게 웃던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아닌 점점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진해지고 '어머머.. 웬일이니~'를 연발하는 소위 우리가 아는 여느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서 깜짝 놀란적 있다.. 아! 사람의 목소리는 변하지 않는데 그 말하는 톤이 나이를 먹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내 목소리도 그렇니'라고 물어보았던 적이 있다.
나도 친구의 목소리처럼 누구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받으면 내 나이가 대략 느껴지겠구나 싶었다.
올해도 그 친구랑 서로의 생일날 전화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젠 아이들이 서로 대학을 가고 또 둘째, 셋째들이 곧 대학에 갈 예정이다. 서로의 걱정과 근심 등 우리의 대화의 내용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게 새삼 웃겼다. 예전에는 서로 '그 오빠가 나한테 관심 있는 거 같아? 아닌 거 같아?' 하면서 나름 심각했었는데.. 후후후
어려서 함께 미팅을 나가면 항상 인기가 많던 친구였다. 목과 허리가 유난히 얇아서 언제나 넥라인을 보이게 옷을 입고, 두꺼운 허리띠로 날씬한 허리를 강조하던 스타일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새초롬이 앉아 있으면 미팅에 나가서 제일 먼저 킹카로 떠오르던 친구였다.
세월이 30년이 지나니 그 가느다랗던 허리는 온데간데없고 아이들 넷을 낳아 어느덧 척척 다 키워가는 그 친구의 모습에서 우리가 어렸을 적 바라보던 우리네 엄마들의 젊었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 같았다.
하긴 그 친구가 바라보는 내 모습도 마찬가지리라. 어려서도 한 덩치하고 얼굴은 동그라니 크고 사람이 쳐다보면 얼굴이 벌게져서 눈을 마주 쳐다보지 못했던 숙맥의 예전의 나. 마음은 항상 로맨스를 꿈꿨지만 현실에서는 짝사랑만 몇 년째 하던 인기 없던 나였는데 어느덧 미국 와서 교회 다니며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하면서 이제는 사람들 만나는 게 제일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밝게 살아가는 나.

서로의 바뀐 모습들을 우리는 오늘도 전화통화 속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깔깔대다가 어머머를 연발하다가 웬일이니?를 때에 맞춰 내뱉을 것이다.
아이들 대학 다 보내고는 친구와의 원대한 계획이 있다. 함께 손 붙잡고 한국에 놀러 가는 것이다. 서로 결혼도 비슷한 나이에, 아이들도 비슷한 시기에 낳고, 대학 보내는 시기도 서로 비슷할 거 같다. 이러다 어쩌면 아이들이 결혼하는 시기도 비슷하고 손주를 보는 시기도 비슷할 수도 있겠다.
아직도 기억난다. 볼이 통통한 아이가 강아지를 안고 동네 버스정류장 옆을 걸어가던 그 친구를 처음 본 그때의 모습이.. 그 친구를 동네 성당에서 다시 만나 금방 친구가 되고, 또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어 어느덧 죽마고우가 되어 함께 고등학교 시절을 단짝으로 보내다가 3년 후 친구가 엘에이로 이민 가느라 펑펑 울며 헤어졌지만 서로 그렇게 떨어져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오래도록 서로의 추억을 나누며 함께 인생을 나눌 줄이야.

그건 아마도 나를 항상 기억해 주고, 연락을 끊이지 않고 내가 하는 일마다 다 잘될 거라고 응원해 준 친구의 아름다운 성격 덕분이리라.
외로웠던 이민 초기에 이 친구와 이메일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이민 오자마자 시작된 전업주부의 고달픔도 친구와의 전화통화로 많이 위로가 됐었다. 이제 아이들을 품에서 내보내는 공허하면서 시원섭섭한 시기 또한 친구와의 대화로 또 그렇게 지나 보내리라.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점점 굵직해지고 깊어지고 끝이 없으리라.
사랑하는 이 친구와 60년 지기 친구라고 자랑하며 다시 글을 또 쓰고 싶어 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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