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여자라도 반하는 스타일이 있다. 나는 여자중학교를 다녀서 그랬는지 유난히 여자에게 반한 적이 많다.
테니스 선수로 운동하던 같은 반 친구인데 매일 창밖의 운동장을 바라보면 언제나 혼자서라도 열심히 테니스를 치던 아이였다. 정말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몸이 말 근육 저리 가라고 튼실했다. 그 친구를 바라보는 게 그 당시 낙이었다. 다른 동성 친구들은 조지 마이클, 톰 크루즈, 장국영에 빠져있을 때..
한동안은 테니스만 보면 그 친구가 생각났다. 나중에 30대가 되어 'I love school'이란 사이트를 통해 연락이 닿아서 그 친구가 본인의 사진을 보내 주었는데, 세상에 이런 배신감이!
그 친구는 치마를 곱게 입은 유치원 원장님이 되어 있었다. 난 그 친구가 운동선수로 성공할 줄 알았었다.
10대 시절 남미에 이민 왔을 때 학교에서 만난 2살 많은 고등학교 선배 언니가 또 좋았다. 그녀는 그 당시 부모님이 이혼한 상태여서 많이 외로워했다. 그런 그 언니의 소식은 다른 이로부터 나중에서야 듣게 되었지만 동생 격인 나에게 그녀는 말한 적 없어 나는 한동안 사연도 모른 채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는 외롭고 공허한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며 그저 그녀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었다. 학창 시절 2년 넘게 언니에게 실실 웃으며 다가가 많이 얘기 나누고 그랬었지만 그 언니는 결국 그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그래서 내가 한동안 그 언니의 그 눈빛을 하고 다닌 적도 있었다.
10대 후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사무실에 만난 회사 선배 언니도 좋아했다. 그 J 언니는 꽤 똑똑하고 명석했으며 지혜로웠다. J언니가 하는 말투가 부러웠고 그 언니처럼 똑똑해지고 싶었었다. 그녀는 시간이 나면 혼자 뮤지컬이나 클래식을 감상하러 간다고 했는데 그것조차 멋져 보였다. 책도 많이 읽어서 정치, 사회, 문화 모르는 게 없었던 그 언니에게 나는 소탈하게 다가가서 언니, 언니 하며 잘 따랐었다. 언니가 하루 자기 집에 초대해서 언니의 방을 가본 적이 있는데 방에다 멋진 여성들의 사진을 붙여놓고 다 롤모델이라고 소개해줘서 나도 이제 롤모델을 키워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세월이 흘러 나의 그 레즈비어니즘이 사라진 줄 알았다. 이제 주위에 반할만한 스타일도 없고 애들 키우는데 아등바등 살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또 예전의 그런 감정이 나타난다. 바로 S 집사님을 보면.
교회에서 알게 된 분인데 정말 연예인처럼 예쁘다.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 눈 코입이 너무 조화롭다. 얼굴만 예쁜 게 아니고 마음은 더 예쁘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베푸는 마음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최고다. 거기다가 교회 봉사도 잘하고 리더십도 좋은 그 집사님을 보면 예전 알바에서 만났던 그 J 언니처럼 닮고 싶어 진다. S 집사님이야 말로 나의 최애 롤모델이다.
지금 되돌아보니 나는 항상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페메닌들을 보면 반한 것 같다. 운동신경 하나 없는 나는 운동 잘하는 친구가 부러웠는데, 거기다가 몸매도 잘빠지고 뭐든 열심히 연습하는 그 친구의 모습에 반했고, 10대 중반에 이민을 가서 많이 외롭고 슬펐는데 그 쓸쓸함이 너무 많이 보였던 친구를 보니 동병상련 같기도 하고 오히려 깔깔대며 같이 웃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던 그 친구에 대한 그리움..
또 한국에서 중3까지 공부하고 온 후 남미에서의 학업이 즐겁지 않아 공부에 취미가 없었는데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열심히 하는 J 언니를 보고 아주 부러워하면서 닮아가고 싶었다.
거기다가 결혼도 잘하고 아이들도 멋지게 잘 키웠는데 본인의 미모도 잘 가꾸고 남에게도 잘 베풀고 배려하는 S 집사님의 모습 또한 부러움과 따라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굴뚝같았을 거다. 좋아하는 친구의 좋은 점을 따라 하고 싶고 관심이 있어하는 건 죄가 아니겠지? 주위에 따라 하고 싶은 상대가 있다는 건 정신건강에 좋을 수도 있다고 자부한다. 또 나를 누가 그런 상대로 바라본다면 나 또한 기분이 좋을 거 같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지혜롭고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분들에게 반하게 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처럼 묵묵히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는 동성들을 바라보며 나는 또 반하고 반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