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 나이 총각들이 수두룩 빽빽한데그때는 다들 서른이 넘도록 어째 장가를 못 갔냐고 쑥덕댔던 기억이 난다.
뭔가 결정을 하기까지 생각을 하고 또 하고 너무 신중한 남편. 그에 비해 나는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후다닥 잽 싼 성격이었다.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할수록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든 반면 남편은 제대로 대시를 안 하고 그저 밥 사주는 동네오빠처럼 굴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나이도 생각해서 미래도 계획하고 그러면 좋으련만..
자기는 뭐 내일일은 모르겠다. 계획한 대로 살 수 있겠냐. 결혼이란 게 부담스럽다. 라며 계속 소극적으로 나왔다.
그런데도 내가 이 사람이다 싶었던 건..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딱히 굴곡 있는 삶을 살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말이 먼저 앞서고 계획만 번지르르했던 친정아버지에 나는 두손 두발을 들었다. 아이디어가 넘쳐나고 팔랑귀인 친정오빠는 비즈니스를 진득하니 하질 못하고 자꾸 말아먹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오빠 같은 남편감은 피하리라 결심을 했었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입술이 얇으시고 말이 많으셨는데.. 나는 거꾸로 입술이 두껍고 말이 없는 남자가 끌렸다.
남편이 딱 그 2가지가 맞아 떨어졌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바른생활 사나이에다 신앙심도 좋고 가족들에게도 잘하고, 여자에게 이렇다 할 허풍이나 이루지 못할 맹세를 절대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빈말 못하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스타일.
함께 연애하던 시절, 공원에 놀러 갔었는데 높은 나무를 보니 장난기가 발동해서 남편에게 나를 그 나뭇가지에 올려서 사진 좀 찍어 달라고 부탁했었다. 남편의 등을 밟고 나뭇가지에 올라가 걸터서서 사진까지 잘 성공적으로마치고 나무에서 내려오는데 남편의 표정이 너무 일그러져 있었다. 왜 그러지? 이해가 안 됐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 물어보니 내가 그렇게 무거울 줄 몰랐단다. 그래도 연애시절인데 표정 관리를 좀 하지 그랬어! 했더니 자기는 아닌 건 아니라나?
남편에게 요리하는 모습을 어필하기 위해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육개장을 만들어서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당시 요리책을 구해서 하루종일 고기를 삶고 푹푹 끓여서 정성을 다해 국을 준비했다. 밥 먹기 전 마지막에 당면을 넣었어야 하는데 그걸 깜박하고 모두 다 때려 넣고 남편을 기다리며 계속 국을 데우고 있었다.
드디어 남편이 우리 집에 도착해서 맛있는 육개장을 퍼줄라고 냄비를 열어보니 그 많던 국물이 다 없어지고 당면이 퉁퉁 불어 있었다. 나는 순간 냄비에 구멍이 나서 국물이 어디 샌 줄 알았다.
쩔쩔매며 국물 없는 육개장을 퍼서 줬는데 말없이 후루룩 먹기만 했다. 표정은 또 일그러저 있고 뭐라고 가타부타 칭찬이 없었다. 나는 미인계를 쓰듯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오빠~ 국어때? 맛있엉? 당면을 미리 넣었더니 국물이 다 졸아 들었네.."
보통 연애하는 분위기에는 다 괜찮다고 하지 않으려나? 하지만남편은 절대 육개장 맛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고 한그룻 더 달라고만 했다.
결국 그날 우리 둘의 금지어는 '육개장'이 되었다. 그이후로 내가 육개장을 만들어본적이 없을 정도다. 나중에서야
"그때 좀 맛있다고 해 주지" 라고 했더니..
" 나는 맛없는 걸 맛있다고 하지 못해. 그나마 연애할 때라 한솥 가득 있는 육개장을 두 그릇 먹어준거야."
그 성격을 우리 딸이 닮아버렸다. 걔도 아빠처럼 목에 칼이 들어와도 빈말을 안 한다. 나중에 누가 사위가 될지.. 서로 맘이 맞으면 동맹을 맺고자 한다. 분명 딸이랑 반대되는 사람을 만날 테니까.
다시 남자 친구였던 그 당시를 떠올려본다.1년 넘게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며 연애를 했지만 계속 그는 결혼의 ㄱ 자도 꺼내지 않았다.
속이 타들어 가던 중 어느 날 그가 심한 감기에 걸렸었다. 전화통화를 해보니 목소리가 아주 잠겨 있는 게 많이 아파 보였다.
" 에고, 몸이 안 좋아서 어떻게~ 약 먹고 오늘 푹 자! 내일은 좋아지길.."
이라고 전화를 끊고 어떻게 병간호를 해줄까 곰곰이 생각하다 죽을 끓여서 새벽에 갖다 줘야겠다 싶었다.
다음날 직장에는 내가 아프다고 병가를 내고 남친네 집으로 향했다.
죽도 끓여주고 오전 내내 병시중을 들었다. 한참 자고 깨더니 좀 살아났는지 남자 친구가 내 간호하는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더니..
"선경아, 우리 결혼하자! 결혼이 뭐 대수겠냐. 이렇게 서로 아프면 간호해 주고 서로 아껴주는 거지."
나는 그의 말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남자 친구의 진심이 느껴졌고 그도 우리의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살짝 억울했다. 아.. 진작에 이 방법을 쓰는 건데~ 이 남자는 아플 때 마음이 연약해지는 거였군!
결혼하고도 남편은 한두 번 크게 독감으로 앓은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마다 지극 적성으로 간호를 하고 나서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적절하게 잘 챙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