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그리려다..

꿈을 찾아~

by BlueVada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기억에 남는 내 첫 번째 장래희망이 도서관의 사서였다. 동네에 오다가다 둘러보던 도서관에는 언제나 카운터에 마주하고 책속에 빠져있던 언니, 오빠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책도 읽고 얼마나 좋을까 마냥 부러웠었다.

그러다 조금 크고부터는 무작정 앉아서 책만 읽는 것이 아닌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어졌다. 베스트셀러도 터트리고 유능한 작가들을 배출해내는 이름 있는 출판사에서 원고들을 수정하는 내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러다 어느덧 머리가 굵어지니 이제는 아예 내가 베스트셀러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더 큰 꿈을 키우기까지 되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한바가지 선사하는 멋진 소설가가 되어 서점에 내 책이 출판 돼 있고 내 이름 석 자가 적혀있는 꿈을 꿔보았다.


하지만 그 당시 현실은 중학교 3학년 때 한국에서 지구 반대편의 남미의 어느 처음 들어보는 나라에 이민을 가고 처음 들어보는 스페인어를 떼,빼,쎄 등의 쌘 발음을 해대며 국어시간을 싫어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너무 억울했다. 18년 동안 꿈꿔오던 항상 책을 가까이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아련히 멀어지는 듯 했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나름 국문학과에 입학해서 차근차근 경력도 쌓으며 작가의 길을 걸어갈 텐데. 스페인어를 다시 초등학교 수준부터 배워 나가려니 좀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그렇게 이민 간 나라에서 잘 적응을 못하다가 우연히 교포들을 위한 한국 신문사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광고를 접하였다.

스페인어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기사를 쓰는 번역사를 구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대학교 1학년이어서 스페인어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중학교 3학년을 중퇴한 상태의 미숙한 한국말을 신문기사에 알맞은 딱딱한 서체로 잘 다듬어서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언론에서 일하고 싶었던 그 꿈을 향한 도전이 다시 기억이 났고 우선은 닥치고 보자 싶어서 이력서를 가지고 신문사를 방문하였다.

생각보다 소박하게 온 가족이 운영하는 신문사였다. 남편분이 사장님이지만 명함에만 이름 석 자 쓰여 있는 존재인 반면 안주인이신 실장님은 신문의 모든 광고비와 구독료를 받아내고 직원 봉급까지 계산해서 나눠주는 회계일과 편집일 거기다 이래저래 광고도 세일하는 나름 1인3역의 일을 도맡고 있었다. 또 큰아들은 기사담당, 작은아들은 인쇄담당 그렇게 모든 가족이 총동원해서 K통신이라는 월간지와 H일보를 매일 찍어내고 있었다.

실장님은 딸이 없어서 그런지 경력도 없는 나를 보자마자 바로 채용하셨고 큰아들을 부장이라 소개하며 나에게 일을 잘 가르쳐주라고 당부를 하였다. 큰아들은 사장님을 닮아 융통성이 없이 곧이곧대로 글을 쓰는 스타일이었다. 처음 몇 번은 그 나라 신문의 톱기사를 나에게 넘기며 번역해 보라고 시켰는데 내가 그 뜻에 딱 어울리는 한국어를 적절히 써내지 못하니까 실장님에게 바로 “쟤, 번역 잘 못해” 라고 말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실장님은 어린나이에 실력도 없으면서 제 발로 찾아온 나를 바로 내치지 않고 오히려 다른 기사를 번역시켜 보라며 다시 기회를 주셨다.

부장님은 내 번역 기사를 매일 반 이상 고치며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아예 연예, 영화 관련의 기사를 맡게 하였다. 딱딱한 1면기사에 내 사소한 감정이 실리고 글을 잘 다듬지 못해 기사가 언제나 길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반면 특유의 부드러움을 살려서 그 주말에 개봉되는 영화들을 소개하는 내 기사가 더 잘 어울렸다. 종종 미리 개봉된 영화도 보고 와서 기사도 쓸 수 있어 나름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첫 아르바이트가 그렇게 쉽게 물 흐르듯 지나간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처음 접해보는 나는 눈치가 빠르지 않았다. 매일저녁 마감시간 때는 연예기사를 쓰는 나도 팔을 걷어붙이고 편집부를 도와주어야 했다. 그 당시 신문편집은 그야말로 기사를 쭉 프린트해서 우리 같은 알바생들이 가위로 잘라 놓으면 실장님이 풀로 신문 원본 종이에 말 그대로 편집해서 붙이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컴퓨터로 자동 편집하고 그랬지만 30년 전 남미의 한 신문사는 그렇게 신문을 만들어 냈었다.

종종거리는 실장님의 발걸음과 심부름에도 난 실장님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나에게 무엇을 시키는 것 같은데 당최 알아듣지 못하고 맹하게 서있는 적이 많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것이 실장님이 기사를 붙이다가 자투리공간이 남으면 사진을 넣으려는 건데 성격이 급한 실장님은 항상 나에게 “그거 가져와”라고 말하기 일쑤였다. 그게, 무얼까??

나보다 몇 년 더 일찍 들어온 승주언니는 신기하게도 단번에 그거를 캐치하였다. “선경아, 얼른 자료실가서 김대중 사진 좀 오려와”, “잡지책 뒤져서 사람들 걸어가는 모습 찾아와 봐”등의 팁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바로 그것이 짠 밥인 것일까? 그 신문사에서 3년을 일했는데 나중에 나도 실장님이 그거..라고만 입을 열어도 얼른 자료실로 뛰어가고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풀타임으로 일하고 싶어서 아쉽지만 그 가족경영의 신문사는 그만두게 되었다. 몇 년을 일하고 나니 그 매일 되풀이되는 그 주먹구구 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았다. 좀 더 직원이 체계적으로 배치 돼 있는 배울게 많은 큰 회사로 옮기고 싶었다. 다행이 H신문사에서 일한 경력이 바탕이 되어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내 첫 아르바이트는 끝이 났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겪은 가장 큰 경험이었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또 그 H 신문사를 찾아가고 싶다. 그 실장님에게 그이후로 한번 찾아뵌 적이 있다. 퇴사하고 5년 후쯤 개인적인 경조사가 생겨 광고를 자그마하게 내고 싶어 신문사를 방문했는데 실장님이 거하게 쏘신다면서 아래층 하단 면 전체에 내 결혼식 광고를 내주었다. 내가 그렇게 섭섭하게 회사를 박차고 나간 것이 내심 밉지만은 않으셨나보다.


호랑이를 그리려다가 나중에는 고양이를 그린다더니, 어려서 꾸었던 내 꿈들은 아스라이 멀어져 간 것 같지만 미국오기 전까지 신문사에서 일하며 겪은 언론사의 경험은 내 인생의 또 다른 밑거름이 되고 다른 곳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 시도해보고 부딪히는 게 있어도 이제는 더 이상 겁이 나지 않는다. 해보겠다고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그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가보다. 아마 실장님도 나에게서 그 기운을 찾아내신 듯 하다. 아직도 나에게는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다. 그리고 고양이는 호랑이과에 속하니까 언제고 더 실력을 닦아서 날렵한 호랑이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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