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주에 사는 딸과 매주 통화를 하다 할 말이 끊겨서 딸에게 뜬금없이 물어보았다.
"너는 생애 처음으로 기억나는 게 뭐야?"
"음.. 글쎄~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사진앨범을 보면 그때그때가 떠올라. 동생이랑 놀던 시간들이 생각나네. 같이 수영하면서 놀고, 공원에 가서 놀았던 시간들.."
"아, 그렇구나~ 네 사진들을 엄마가 더 찍었으면 네 어렸을 적 기억이 더 많아졌을까?"
"엄마가 내 사진 많이 찍었던데?"
첫 딸이었고 그 당시에 나는 완전 살림만 하며 집에서 쉬고 있을 때라 참 많이도 사진을 찍어줬던 거 같다. 우리 딸이 만으로 3살이 될 때까지? 그 이후로는 나는 다시 직장생활로 복귀하고 또 둘째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딸이랑 오붓하게 추억을 만들었던 시간들이 떠올라서 딸이랑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추억에 빠졌었다.
딸 말이 맞는 것 같다. 내 생애 첫 번째 기억도 우리 아버지가 찍어준 사진 속의 모습이 제일 먼저 기억나는 순간들이다.
온 가족이 서울대공원에 간다고 예쁘게 치장을 하고 맛있는 김밥도 싸고 흑백사진이었지만 그 하루종일 찍힌 사진들을 보면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전에 대한 기억은 없다. 사진이 없어서 그런가? 돌사진이 있지만 그건 아예 기억이 안 나고, 3-4살 때 기억도 없다. 아버지는 왜 그전에 사진 한 장 안 찍어주셨을까?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는 카메라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동네에 리어카를 끌고 카메라를 목에 메고 다니는 아저씨가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주신적이 있는데 엄마가 얼른 그 아저씨를 불러서 내 독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엄마가 꺼내주신 긴 드레스와 보라색 구두를 신고 예쁘게 포즈를 취한 내 첫 번째 독사진.
그게 내 2번째 기억인 거 같다. 나는 낯선 카메라 앞에 처음 서 본 거라 어색해서 잘 웃지를 못했지만 사진 속 내 표정은 그나마 잘 잡아주셔서 예쁘게 나왔었다.
그다음 기억은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식 인듯하다. 내 생일이 2월이어서 제일 나이가 어린(만 6세 생일 지나고 1주 후) 시기에 학교에 가야 했다. 엄마랑 처음 떨어지는 시기였다. 그전에도 몇 번 엄마가 유치원에 보내보려고 시도해 보셨는데 항상 울며불며 엄마에게 떨어지지 않아서 포기하시던 엄마는 불안한 기색으로 나를 초등학교 입학식에 데려 오셨고 내 앞뒤에 서있던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셨다. 울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있어서 바로 눈물을 머금고 미소를 날리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80이 넘어가시는 시어머니는 우리에게 예전 얘기를 참 많이 해주신다. 그중에도 특히 어머님이 어렸을 적 얘기를 종종 하시는데 꼭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얘기를 해주신다. 그럴 때면 나는 신기해서 어떻게 그렇게 기억이 다 나세요? 했더니 어릴 적 기억들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고 하신다. 얘기를 많이 하는 거 보면 그 당시가 너무 좋았던 시절이어서 그러신가?
아마 어머님에게 우리는 또 듣고 또 듣고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항상 처음 듣는 얘기처럼~
나도 나이를 먹으면 우리 딸에게 내 어렸을 적 그 몇 장의 모습들을 얘기하고 또 하고 그럴까? 분명 우리 딸은 내가 얘기 꺼내자마자 바로 "엄마, 그 얘기 저번에 한 건데?" 하며 말을 끊을 수 있다.
암튼 내 마음 안에 앨범처럼 남아있는 추억 순서 1,2,3.. 사진들이 더 있었으면 더 기억으로 남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기억이 너무 몇 가지 안 되는 거 같아서 가슴이 아리지만 그래도 굵직하고 선명하게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