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이 되도록 나는 제대로 된 감투 없이 잘 살아왔었다.
어려서 국민학교를 다닐 때 옆집 친구가 부반장이 되었다고 자랑할 때도 별로 부럽지 않았었다. 앞에 나서서 아이들을 리더 한다는 게 얼마나 창피할까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다행인지 나는 성적도 특출 나지 않았고, 수줍어하는 성격이어서 학창 시절 내내 별로 눈에 안 띄는 스타일이었다.
20대가 되어서도 나는 항상 나를 이끌어주는 소위 성격이 쌘 친구들을 좋아했고 그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맘이 편했다. 물론 결혼할 때도 남자가 하늘, 나는 땅..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내가 아이 둘을 낳고도 하늘 같은 남편에게 아이들 기저귀 한번 갈아달라고 부탁한 적 없이 그저 남편은 일하는 사람이라 집에서는 편안하게 있어야 한다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었다.
그러다 10년 전쯤 30대 후반의 나이로 지금의 교회로 옮겨 왔었다. 우리 가족을 아주 편안하게 인도해 주는 구역장님을 만나 2년 넘게 사랑을 받고 그분의 날개 아래서 편안하게 지낼 때쯤 권사님네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신다. 그분이 열심히 섬기시던 구역을 우리 부부에게 맡기고 가신다는 말에 나는 하늘이 두쪽으로 나눠지는 줄 알았다. 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나는 열심히 권사님이 하시던 데로 구역분들에게 대접하고 인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느덧 섬김에 대해 자연스럽고 편하게 대처하는 내가 돼있었다.
새로운 가정도 잘 챙기고 현재 공존하는 구역분들도 역시 잘 이끄며 그렇게 몇 번을 하다 보니 리더십이란 것에 자신이 생겼다. 그 후 날개를 단 듯 나는 교회에서 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그 소그룹 테이블을 맡아 이끌면서 더더욱 훈련이 되어 갔다.
비즈니스를 오래 한 사람은 그 가게에 손님이 들어오기만 하면 단번에 물건을 살사람인지 아닌지 안 하고 한다.
나도 슬슬 그런 경지에 오른듯하다. 새로운 가정이 우리 구역에 처음 오면 이 가정이 우리 구역에 잘 정착할지 못할지 느낌이 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내 예감이 적중했다. 역시 사람들은 그들의 인상이 거짓말은 못하나 보다.
성격이 조급하고 걱정이 많아 보이는 분은 결국 오래 계시지 못하고 다시 다른 데로 옮겨 간다. 하지만 편안한 인상과 아이들이 우리 교회를 잘 적응하는 모습이 보이면 그 가정은 게임 끝!
그렇게 구역을 이끌면서 한 사람 한 사람들을 파악해 보니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겁이 없어졌다. 왜 진작에 내가 이러지 못했을까 싶기도 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하루하루 늙어가는 거 같아 속상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지혜가 생기고 요령이 늘게 되는 건 참으로 덤으로 살아가는 능력 같아 보인다. 그래서 굳이 다시 예전의 20대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하나 없다!
점점 경험이 많아지고 사람을 상대하는 기술이 늘어나는 게 감사할 뿐이다.
지금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감투가? 생긴 것이 그저 기쁠 뿐이다. 내년에는 50대 여전도회 부회장을 맡게 될 거 같은데.. 앞에서는 몇 번 빼는척하고 뒤에서는 웃으며 겸허히 받아들여야겠다. 그리고 리더십을 잘 발휘해서 내가 이끄는 동안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의싸의싸한 시간들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