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류 회사로 가다 - 3 회
#꿈인지 생시인지 내 볼 살을 꼬집어보며 첫 출근을 하다
미국회사에서는 내 다운타운 15년 경력을 크게 알아봐 주었다. 인터뷰 당시 언어가 네이티브처럼 매끄럽지 못했음에도 이력서에 쓰인 전 회사에 연락도 해보고 나름 내 뒷조사를 어느 정도 한듯하더니 인터뷰 후 바로 출근하라고 연락이 왔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직원들이 하는 대화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OK를 외치며 행동에 옮겼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 한두 개만 캐치해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 듯 눈치만 늘어간 것이다. 큰소리로 알아들은 척한 건 그나마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바로 내 옆에서 일하던 베트남 동료 데이나 덕분이다. 처음 내가 일하기 시작할 때부터 하나하나 다 가르쳐줘서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가 수월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시키거나 (여기서는 거의 이메일로 작업을 진행했다) 어떠한 오더가 떨어졌을 때 나는 얼른 데이나에게 달려가서 뭔 뜻이었냐고 물었었다. 다행히 그녀는 한국에 대해 너무 좋은 선입관이 있었다. 살짝 까무잡잡한 데이나는 내 하얀 피부를 너무 부러워했고, 이래저래 다 고맙고 해서 데이나에게 한국 브랜드의 화장품을 선물로 주었다.
“데이나씨, 내가 써보던 화장품인데 너무 괜찮아서 선물하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어머, 고마워요, 비비안씨. 이걸 바르면 나도 당신처럼 뽀얀 피부가 될 수 있나요?”
종종 화장실에서 마주친 데이나는 그 로션을 시간 날 때마다 자주 얼굴에 덧바르는 모습을 보였다. 회사 대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도와주려고 얼굴 마주할 때마다 항상 미소 지었다.
“비비안씨, 도움이 필요하며 언제든지 내게 물어보세요!”
회사에서 만난 데이나는 내 수호천사임이 분명하다. 그녀 덕분에 회사에서 쓰는 많은 용어와 이메일 쓰는 양식들을 고스란히 배울 수 있어서 편하게 이 회사에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회사에 물 흐르듯 쉽게 자리 잡은 것만은 아니다.
회사에 처음 인터뷰를 하러 온 날, 머리에 알록달록한 반다나 두건을 반 접어 쓰고 있는 필리핀 여자가 있었다. 인상이 드세 보이며 하나도 멋스럽지 못한 첫인상이 좀 아이러니했다. 날씨가 초가을임에도 아직 여름 웻지 샌들과 허리 부분에 구멍이 난 어두운 색깔의 셔츠에 철지난 스타일의 청바지를 입은 이 분이 디자인 개발팀 디렉터라니! 그렇게 첫인상이 촌스러워서 그런지 나는 회사에 입사하고도 팀장인 셸리에게 일일이 상의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많이 고집했다. 그녀 또한 우리를 유치원생 다루듯이 일일이 다 간섭하려고 했고 직원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우리 팀의 이메일을 CC (참조'라는 용어, 수신자 외에도 편지의 사본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사용)로 다 관리하며 매번 우리가 보낸 내용을 트집 잡고 지적하는 게 그녀의 주요 작업인 듯 하다. 이미 업계에서는 ‘마녀’라 불리고 있으며 회사 안에서 다른 팀 직원들과 가끔 탕비실에서 만나면 내게 ‘셸리랑 일하는군요. 정말 안됬어요.’ 하면서 동정을 했다. 아무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고 팀 모임이 있어서 식당에라도 가면 아무도 그녀 옆에 앉지도 않았다. 그렇게 2년여 시간을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일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나는 소심 줄처럼 질기게 그녀에게 대항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름 내 손이 빠르다고 자부하며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를 외치며 일 처리를 후다닥 해결하던 버릇이 있었는데 일일이 내가 한 일들을 더블 체크하며 실수와 단점을 집어내어 고치라고 명령했다. 거기다가 내 아킬레스건을 툭툭 건드리며 나와는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고 대놓고 기를 죽였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승낙을 받았는데도 자기가 중간에서 샘플들이 맘에 안 들면 가차 없이 리젝을 (반송) 외치며 다시 만들어서 보내라고 소리 지르는 그 당시 내 인생의 걸림돌.
1년에 6일을 월차로 사용할 수 있는 회사에 지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좀 한가한 날을 잡아 병원에 진찰을 받고 온다고 하면 그렇게 싫어했다. 어쩔 때는 우리가 정말 병원에 간 것인가를 의심하며 나보고 의사를 만나고 온 증명서를 띄어오라고 난리를 쳤다. 마침 유방암 정기검진을 하러 간 것인데 병원 직원에게 회사에 제출할 이 서류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가끔 그런 상사가 있다고 했다. 아, 이런 또라이들이 여럿 있었구나.
1주일에 50여 벌의 옷들을 피팅 모델에게 입혀놓고 디자이너와 같이 리뷰하는 데 한 번도 옷이 예쁘다고 칭찬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뭐라고 꼬투리를 잡아서 혼낼 궁리만 했다.
“비비안, 뚜 메 꼼쁘렌데?” (너 내 말 이해하니? 스페인어, 남미 직원들에게 써먹는 말인데 내게 일부러 그런 말투를 쓰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더해주고 싶을 때 튀어나오는 그녀만의 유행어). 그래서 나는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모른다. 나를 미치게 만드는 오피스 빌런 그 자체, 정말 지독히도 미워하다가 또 주일날 교회 가면 기도하고 회개하기를 번복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던 그녀의 심술을 멈추게 한 건 어이없게도 아주 쉬운 일이었다. 거의 50살이 다되어 외동아들을 낳은 셸리는 종종 기분 좋을 때면 입에 발리듯 아들 자랑을 했었다. 마침 중학교로 입학하는 우리 아들 방을 치우다 안 읽는 동화책들을 정리하게 됐다. 그것들을 쇼핑백에 담아 셸리에게 갖다 줬더니 하루아침에 나를 보는 눈동자에 하트가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뇌물을 챙겨줄 것을, 2년 동안 마음고생 한 시간이 몹시 아까 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의 속물근성에 고개를 젖게 되었다. 나랑 정말 맞지 않는 성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