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의 진심을 알아줄 때

미국의류 회사로 가다 - 5 회

by BlueVada

“비비안, 당신의 어메이징한 (대단한) 작업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 페데리코”


그가 손수 써준 카드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대접이었다. 예전 한국회사에서는 매번 우리는 호떡집 기계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렇게 뽑아낸 옷들의 오더를 많이 받아 보았자 오로지 헤드 디자이너에게만 보너스와 인센티브를 주곤 했었다. 우리 개발팀에게 직접 고맙다고 인사 받은 적은 없었다.


#그때부터 그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매번 쫓기듯이 그림을 그려내던 다른 디자이너들에 비해 아이디어가 풍부한 그의 여유로움과 자신감, 그가 지닌 특별한 재능이 다 멋져 보였다. 패턴사들은 어느 디자이너를 만나는지에 따라 그 옷의 값어치가 몇 십 불짜리가 될 수 있고 이번처럼 몇 백 불짜리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옷 한 벌 한 벌에 정성을 다해서 처음 디자인된 그림처럼 완벽한 옷으로 탄생하기까지 모두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내 자존감이 갑자기 우뚝 올라선 기분이었다.

게다가 페데리코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20대 중반에 나처럼 미국에 취업으로 이주해 온 케이스다. 영어는 곧 잘하지만 유창한 원어민 발음이 아니어서 오히려 우리는 편하게 대화가 잘 통했다. 서로 같은 처지의 이민자들끼리 오히려 소통이 더 잘되듯 우리네 귀에는 그런 발음이 더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의 말투를 자꾸 듣다 보니 누가 떠올랐다. 〈러브 엑츄얼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라는 영화에 출연했던 남자주인공 콜린 퍼스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살짝 늘어진 듯하면서 낮은 중저음의 소유자. 그가 옷을 피팅 할 때마다 그 특유의 목소리로 이것저것을 요구하면 난 정신 줄을 똑바로 붙들고 있어야 했다. 눈이라도 감으면 브리짓 존스의 ‘마크 다아시 (콜린 퍼스의 배역)’가 나에게 속삭이는 듯 한 착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언제나 단정한 용모, 매일 바뀌는 은은한 향수, 도대체 옷장에 옷이 몇 벌이나 되길래, 그 색상들의 깔 맞춤 한계가 어디일까? 궁금증에 빠진다. 역시 이탈리아 밀라노 남자들은 타고난 멋쟁이인가보다.

페데리코를 알고 난 후 나는 남자의 멋스러움을 터득할 수 있었다. 중년의 남자도 잘 꾸며서 입으면 정말 부티가 나는구나! 무조건 정장을 입어야만 멋지게 보이는 게 아니라 캐주얼한 스타일로도 얼마든지 댄디하게 표현이 되는구나! 싶었다.

오히려 남자 옷을 담당하는 제임스는 페데리코 옆에 서 있으면 싸구려 옷을 입은 듯하다. 왜 그럴까? 키도 190이 다되고 길쭉한 스타일인 제임스는 나름 비싸다는 프라다, 구찌로 휘감았던데 그 이태리남자 옆에 서면 모두 타겟 제품 (미국의 대형마트)을 사 입은 듯하다.

다행스럽게도 그 미팅 이후 내가 그의 모든 드레스와 독특한 스타일들을 담당하게 되었다. 여러 샘플들을 같이 작업하다 보니 그는 나에게 ‘저번에 했던 그 레퍼런스 스타일’을 운운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옷에 대해 표현했고 나는 긴 설명 없이도 그가 원하는 데로 척하니 만들어 주었다. 소울 메이트라도 되듯이 손발이 척척 맞아서 함께 일하는데 너무 수월했다.

1년에 한번 있는 회사 샘플 세일 날 모처럼 토요일 하루를 직원들이 자원해서 일하는 거였는데 내가 그날 자원한다고 이메일로 통보했더니 우연히 그날 페데리코도 출근해 있었다. 전 품목을 70% 이상 세일하는 날이라 소문을 듣고 온 손님들로 매장 안은 몹시 붐볐다. 나는 손님들이 입어보고 놔둔 옷들을 피팅룸에서 정리하느라 매장 안을 왔다 갔다 하며 그와 몇 번이나 부딛 혔는지 모른다. 그도 그날만은 디자이너 타이틀을 내려놓고 매장의 알바생처럼 열심히 가게 안을 살폈다. 그 샘플 세일하는 곳에는 아는 회사사람이 없었는데 그나마 페데리코와 함께 일을 하니 든든했다. 그러다 어떤 손님이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매장구경을 하고 나갔는데 그 강아지가 붐비는 가게 안 중간에 소변을 누고 건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마침 내 주위에서 그걸 본 페데리코는 후다닥 키친타월을 갖고 오더니 말끔히 닦아냈다. 말없이 행동부터 옮기는 츤데레 스타일의 그가 그저 회사동료가 아닌 설레임의 상대로 헷갈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회사에서 점심시간이면 대놓고 서로 마주 앉지 않고 각자의 뒤에 앉아서 밥을 먹곤 했다. 나와 데이나는 서로 마주 보며 이런저런 회사 얘기 등을 나누며 점심을 먹곤 했는데, 내 뒤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을 페데리코의 뒷모습 때문에 나는 디자이너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아마도 데이나는 왜 자꾸 페데리코가 우리 근처에서 얼쩡대나 싶었을 게다.

가끔은 나 혼자 만의 상상 속에 빠지기도 했다. 회사 끝나고 만약 함께 회식하자고 한다면 옳다구나 쫒아가야지 하며 내심 그의 초대를 기다렸지만 겉으로는 그의 개인적인 궁금증은 하나도 없는 듯 애써 모른 척했다. 결국 나는 그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에게 단지 밝고 명랑한 동료직원처럼 대하며 그렇게 우리는 몇 년간을 함께 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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