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의 진심을 알아줄 때
미국의류 회사로 가다 - 7 회
#코비드-19 때문에 바뀌어진 회사 상황
우리 회사는 코로나 발병 후 완전히 문을 닫은 건 아니고 새로운 모델 만드는 우리 팀만 임시 실업자들이 돼 있었다. 6개월 후 다시 회사로 돌아와 보니 썰렁한 우리 팀 사무실에는 팀장도 안 돌아오고, 데이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그녀에게 연락해 보니 코로나 기간 동안 둘째를 임신해서 당분간은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겠다고 한다. 오직 나와 어시스턴트 스티븐만 복귀된 것이었다. 우리 회사의 그 악명 높은 셸리를 안 부르다니, 그건 마치 학교에 갔는데 담인 선생님이 아프셔서 안 오는 날과 같고 엄마가 모처럼 시골 외할머니 집에 가 계시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그녀가 도대체 언제 정년퇴직할까 손꼽아 기다렸었는데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온 것이다. 아무도 그녀가 언제 복직될지 모른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직원 수를 50% 이상 감원했는데 아마도 그 대상에 걸린 거 같다. 솔직히 그녀는 자리에 앉아서 우리에게 이메일로 일만 시키고 디자이너와 시시 때때 회사 흉이나 보고 있었다. 1주일 내내 얼굴 찡그리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거의 매일 화난 표정으로 만들어놓은 샘플이 맘에 안 든다고 집에 던지기 일쑤였다. 인사과에서 그런 일들을 묵인하고 있다가 이번 바이러스를 핑계 삼아 기회를 잡은 거 같다. 그 대신 내가 모든 걸 맡아서 다 해야 했다. 혼자서 거의 3인 역을 해야 하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마스크를 종일 끼고 서로 변방 6m 이상 떨어져서 일하고 있긴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좋아진 점들이 있다. 특히 우리 대표님이 달라졌다. 1년에 한두 번 연중행사로 방문하던 그가 최근에는 코로나를 핑계로 회사에 자주 들락날락한다. 몇 년 전부터 의류 계통 말고도 LA 최고 부촌인 말리부 동네의 큰 헌 집들을 사서 인테리어를 싹 바꿔서 파는 부동산업에도 투자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회사에 방문해도 고위상사들과 미팅을 하고 우리 같은 직원들에게는 눈길조차 안 주던 대표님이 이제는 의류 쪽에 매진하려고 맘을 먹었는지 자주 사무실에 들여다보며 우리 직원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건넨다. 오늘은 아주 바로 옆까지 다가와서 우리 둘만 일하는 거냐고 말을 건넸다. 스티븐과 나는 순간 너무 놀라서 웨어 하우스 (창고)에 직원 3명 더 있다고 어물 정하게 대답했다. 그가 우리 사무실에서 나간 후 나는 스티븐에게 농담을 던졌다.
“스티븐 그거 알아? 한국에서는 꿈에 유명한 사람을 만나면 로또를 사라고 하는데, 6년 만에 대표님이 우리에게 인사도 하고 말도 시켰는데 우리 오늘 로또나 한번 사볼까?”
“하하. 비비안 씨, 당신은 정말 웃겨요! 그래요, 오늘 당장 사러 가요!”
페데리코가 없는 대신 새롭게 왔던 여자 디자이너도 감원대상에 걸려 다시 잘렸다고 한다. 결국은 혼자 남아있는 제임스가 남성, 여성용 다 맡아서 디자인하기로 했다. 디자이너들을 다 없애게 된 것은 미국인들이 거의 자택격리 중이라 옷을 딱히 안 사 입는다고 한다. 그나마 팔리는 게 있다면 집에서 입는 운동복, 스웨트셔츠, 파자마 등 새로 디자인할 필요 없이 우리가 종종 만들었던 라운지 웨어를 다른 원단으로 뽑아내는 중이다. 제임스도 이제 남아있는 사람이 나와 스티븐밖에 없으니 더없이 친절하다. 여자 의류를 안 하다가 맡아서 그런지 그는 여자 옷에 대해 감이 별로 없어 보였다. 특히 드레스 기장, 치맛단 폭, 안감이 필요한 시트루 (비치는) 원단이던지, 앞 트임은 어디까지 내려야 하는지 다 내 눈치를 살피며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나를 리드하던 페데리코가 생각이 났다. 정말 그는 아이디어가 많았는데. 그렇다고 제임스 앞에서 페데리코 얘기를 꺼내면 자존심이 있는지 되게 싫어한다. 내가 눈치 없이 몇 번 ‘페데리코가 했던 드레스’를 운운하며 그를 소환했더니 나보고 이제부터 그의 이름을 오르내리는 것은 이 회사에 금기어라며 못을 박았다. 제임스는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존경할 줄 모르는 것 같다. 영국 사람은 나름 유럽 사람들 중에 자기들이 최고인 줄 안다.
그래도 실력이 낮은 제임스와 일하면서 내 입지가 더 올라갔다. 차라리 내가 팀장이 되면 어떨까 상상을 해본다. 우리 팀 현재 샘플 메이커들과 창고에서 일하는 남미직원들까지 포함하면 7명이기에 셸리가 꼭 돌아올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상사가 없이 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미 직원들은 요즘 셸리가 없으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종일 수다스럽게 떠들어댔다. 스티븐도 슬슬 노래를 크게 틀어놓으며 일을 하는 거 같았고 아침 출근 시간마다 매일 20분씩 늦게 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 혼자서 고궁 분투하는 가운데 부사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우리 부사장님은 미국에 어려서 이민 온 60세 정도의 미국교포다. 그분은 유창한 영어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작렬했는데 머리는 언제나 질끈 동여 묶고 한국처럼 정장을 아래위 콤비로 입고 꼭 하이힐을 고수하는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회사 안에서 같은 한국인이었지만 눈길 한번 안 주는 차가운 분이었다. 처음 입사하고 얼마 안 되어 탕비실에서 단둘이 만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로 인사했더니 ‘한국말은 웬만하면 서로 하지 말자고요, 여기는 직원이 많은 미국 회사예요.’라고 못 박으셨다. 다른 베트남, 남미 직원들은 서로 만나서 자기네들 언어로 시끄럽게 떠드는데 나까지 그럴까 봐 그러는 건지. 초반에 그렇게 대꾸를 해줘서 나도 뭐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부사장님에게 딸랑거리며 안기고 싶은 마음 없어서 가끔 회사에서 지나칠 때면 가볍게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회사로 복직하고 나서도 그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줄 알고 긴장 빡 하고 부사장님 방에 들어가서 영어로 인사 나누려고 하는데 그녀가 먼저 한국어로 첫마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