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의 진심을 알아줄 때

마지막 회

by BlueVada

“비비안씨,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아니요. 제가 뭘요. 부사장님이 너무 잘 이끌어 주셔서 여기 까지 왔습니다.”

“그동안 그 부서 팀장이 너무 못되게 굴어서 제가 그 팀 근처에 가까이 못 갔었네요. 내가 셸리보다 이 회사에 늦게 부임한 거라 나를 은근히 힘들게 했거든요.”

세상에. 나는 이제껏 우리 팀장보다 부사장님이 더 차가운 분 인줄 알았었다. 6년 동안 오해한 것이 너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어머, 그러셨군요. 어쩐지 두 분이 좀 부딪힐 것 같았어요. 프로덕션을 셸리가 너무 이래라 저래라 좌지우지 하더라구요.”

“맞아요. 그래서 제가 많이 셸리의 성격을 좀 바꾸려 노력했네요. 그러면서 같은 한국 분이신 비비안씨를 제가 죽 지켜봤어요. 참 성격 좋으시고 일도 잘하시고. 그래서 항상 셸리에게 제가 비비안씨 편이 돼서 좋게 얘기 했었어요. 지금에서야 얘기하지만..”

아, 그랬구나. 어쩐지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와서 셸리가 그렇게 시집살이를 시킬 때 우리 둘이 인사과에 불려간 적이 있었는데 도무지 누가 그 인사과 팀장에게 셸리의 갑질을 일러 바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인사과 팀장이 오히려 날 붙잡고 셸리가 어떻게 직원을 관리하는지 속속들이 말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날 나는 눈물이 터져서 이래저래 참았던 울분을 토하며 그녀가 내게 못되게 한 일들을 털어놓았고 셸리는 경고를 받았는지 그 후 몇 달은 좀 또라이 짓을 멈췄던 것이 기억이 났다.

“부사장님이 그렇게 제 뒤를 봐주셨군요. 너무 감사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부사장님 근처에 다가가지 못 했었네요. 하지만 큰 패션의류회사에 이렇게 부사장직까지 오르신 거 항상 존경했어요. 정말 멋지세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주니. 하긴 제가 여기까지 오르기에 힘든 고비가 많았어요. 여자라는 장벽, 동양인이라는 장벽 등등. 하지만 언제나 실력이 그 장벽들을 넘게 했지요. 비비씨도 분명 영어는 좀 부족했겠지만, 실력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거에요. 인사과에서 조만간 연락 갈 거예요. 하던 데로 일 계속 하면 돼요. 직책은 당분간 시니어 디자이너로 계시다가 올해 3분기 실적 올라가면 자연적으로 팀장으로 발탁될 거예요. 제가 인사과 팀장에게 얘기 해놓을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그 팀 잘 관리해주세요.”

“부사장님, 감사합니다. 저는 그냥 묵묵히 하던 일 계속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된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셸리가 아주 힘들게 했을 텐데 언제나 웃는 얼굴로 열심히 일한 모습 참 보기 좋고 고마웠네요. 앞으로 그분을 다시 팀장으로 부를 건지는 대표님이 허락을 안 했지만 워낙에 회사에서 다들 싫어하는 분위기라 돌아오기 힘들 겁니다. 지금은 아마도 집에서 실업수당 받으면서 기가 확 죽었겠지요.”

“저도 솔직히 지금이 일이 많아서 몸은 힘들지만, 그 팀장 없이 일하는 상황은 훨씬 편해요. 그전에는 너무 하는 것마다 다 재재를 해서 제가 기가 죽어 있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혼자 이끌면서 저희 팀을 다 책임질 수 있어요. 맡겨만 주세요.”

“비비안씨 같은 분이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정말 고마워요. 아무튼 계속 잘 부탁해요.”


#P.S. 건축가가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다


부사장님 사무실에서 나오며 나는 큰소리로 ‘야호!’ 라고 소리 지를 뻔했다. 부사장님이 나에게 한국말로 저리 폭풍 칭찬을 하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눈곱만치도 기대하지 않던 일인데, 셸리가 복직 안 하는 것 저래가라 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부사장님이 은근 나를 지켜봤다니까 너무 뿌듯했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 거침이 없어졌다. 내 앞의 어떤 힘들 일이 다가온다고 해도 이제는 어떠한 걱정도 없어졌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승진을 앞두고 있는데 만약 페데리코가 새로 간 회사에서 나를 부르면 어쩌나 하는 짧은 상상도 해보았다. 지금으로써는 이곳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해야겠다. 그를 따라 다른 곳으로 이직해 가서 또 적응을 못 하면 나만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또 사람의 일은 한 치의 앞 도 모르는 것이다. 한번 이렇게 새로운 직장에서 6년을 달려왔더니 겁나는 것도, 두려움도 없어졌다. 어떠한 상황이 다가오더라도 피하지 않고 즐기리라. 묵묵히 소처럼 걸어가다가 보면 누군가는 내 진가를 알아 줄 테니. ‘건축가가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다’라는 비유를 마음속에 되새기며 오늘도 전진하겠다. 삶이 그대의 진심을 알아줄 때가 반드시 온다.


참! 나를 가차 없이 잘랐던 그 예전회사의 디자이너는 내가 그 당시 해고당한 6개월 후 미국회사에 취직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놀랐다고 한다. 그녀는 내가 큰소리 친 것이 순 허풍일 거라고 여겼을 테니까. 그리고 나보다 경력 아주 많다는 패턴사를 내 뒤를 이어 고용했는데 그 사람 또한 1년을 못 버티고 또 해고 했다고 한다. 결국 내가 나간 후 1년 있다 내 생각을 하며 후회를 했다고 하니 내가 큰소리 친 게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의류판매가 지지부진하게 안 되는 원인이 모두 남의 탓이 아닌 디자인을 이끌어가는 본인 때문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기를 빈다. 이제는 그녀를 어디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미워하기도, 용서를 못해서 자다가 이불을 차는 것도 하지 않으리라.

남을 깎아 내리고 무시하는 행동은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간다. 셸리가 우리에게 좀 더 나이스하고 본 받을만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런 팬데믹의 힘든 상황에서 대표님은 그녀부터 다시 복직시켰을 텐데.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집에서 후회하며 땅을 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살짝 불쌍하기도 하다. 이 회사가 그녀의 마지막 직장이 아니기를 바라며, 그녀에게 또한 행운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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