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산타페라는 시골 동네에서 살던 9개월의 시간 동안 서로를 너무나 아끼고 의지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었다. 온종일 잔소리와 바가지를 긁던 엄마는 그 당시만은 다정하셨고, 술 좋아하시던 아버지도 그런 시골에서 술을 구하기가 어려운 걸 아셨는지 일절 금주하시며 이래저래 우리 가정은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서로의 얘기도 가장 많이 나눈 거로 기억이 된다. 온 가족이 모여서 텔레비전 같은 것도 볼 수가 없어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부모님의 예전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듣는 게 일과였다.
지금은 거의 기억도 안 나지만 엄마, 아버지의 그 살아온 스토리들이 나에게는 드라마였고 다큐멘터리였다. 특히 6.25를 겪으신 부모님은 앞다투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스토리들을 얘기해 주셨고 나는 그저 묵묵히 그 이야기들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하루 중에 그렇게 부모님들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외에 나는 나 혼자 책도 좀 읽었다. 이민 오면서 세계 문학전집을 가방에 꾸역꾸역 가져올 수 있었고 그 당시 9개월의 시간 동안 그 30권의 책들을 읽고 또 읽고 했었다.
부모님이 산타페에 이민 와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병아리를 사서 농장에 키워 계란과 닭을 팔아 보는 것이었다. 돼지가 더 나을 수도 있었겠지만, 워밍업으로 병아리를 시도해 보았다. 목수 일을 잘하시던 아버지는 혼자서 그 큰 닭장을 1달 안에 만드신 것으로 기억이 난다.
우리 가족은 워낙에 닭고기를 좋아하던 터라 그 천여 마리를 키우면서 거의 반은 다 잡아먹은 것 같다. 병아리들이 커가면서 이래저래 서로를 공격해서 죽일 때도 있었고, 집단으로 키우는 거라 매일 한두 마리씩 시들시들 병난 것들이 속수무책으로 나왔다. 그럼 우리는 그날 큰솥에 물을 끓여 백숙으로 요리해 먹었다. 내 키가 1년 사이에 10센티미터 크게 되었는데 그 8할은 다 닭을 잡아먹고 큰 덕이다. 단백질을 그렇게 공급받아먹어 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