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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Vada Sep 26. 2024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나의 첫 이민 이야기 5화

그나마 내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씩씩하게 생긴 삽살개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멀티즈와 요크테리의 중간 같은 귀여운 강아지 있다.
부모님은 그저 삽살개라고 하셔서 그런 종류들은 다 삽살개인 줄 알았다. 동네에 돌아다니는 강아지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특히 나를 잘 따르는 충견이 있어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졌다. 수놈이기도 하고 우리 가족을 엄청나게 잘 보호해 주는 기분이라 멋진 장군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그 당시 7학년 수업에서 배운 아르헨티나 역사 시간에 나온 후안 카를로스 장군의 이름이 머릿속에 스쳤다.
"엄마, 저 강아지 이름 '후안 카를로스' 어때요?"
"뭐라고? '빵가루'라고??"
내가 발음을 너무 굴렸는지 엄마는 대뜸 ‘빵가루’라고 대답하셨고 우리는 둘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빵가루’라는 이름이 한국식으로 후안 카를로스라니, 땅속에 있는 장군이 벌떡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빵가루’는 우리 집 가족이 되었다.
아침부터 아버지 뒤를 따라 닭장을 지켰고 엄마를 따라 밭도 지키고 오후가 되어 내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내 분신처럼 해가 질때까지 내내 나를 쫓아 다녔다.
빵가루가 몇 살인지 누구네 집에서 온 건지 아무도 몰랐지만, 그저 우리 가족을 든든히 보호해 주는 게 너무 기특했었다. 나중에 이사하게 되면 꼭 데리고 가고 싶었었는데 빵가루는 우리가 그 집에서 사는 내내 아쉽게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 빵가루가 내 뒤를 따라다니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암놈 강아지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다. 정말 못 생기고 빈티 나는 동네 강아지 (맘에 안 들어서 이름도 안 지어줬다)를 미친 듯이 따라다녔다. 그 암놈 강아지는 꼬리를 깊숙이 내리며 빵가루를 외면하며 도망 다녔다. 그때 둘이 사이가 좋았다면 해피엔딩이었을 텐데….
그 암내 나는 강아지 때문에 온 동네 수컷들이 그를 따라다니다 결국 덩치가 제일 작은 빵가루는 다른 큰놈들에게 상대가 못되어 배에 구멍이 나서 우리 집에 돌아왔었다. 아마 그 전돌밤 다른 큰 개들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 같았다. 온몸이 다 이빨 자국이 나서 피가 나고 도저히 우리 집까지 올 수 없었을 텐데 용케 힘을 내서 우리 집 가족에게 돌아와서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그 암놈 강아지를 볼 때마다 내 신발짝을 던졌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우리 ‘빵가루’가 죽었어!"
그 이후로 두어 달 뒤에 그 암놈 강아지가 새끼를 낳은 거 같은데 한 녀석은 빵가루를 닮은 것도 같아서 엄마는 데려다가 키우자고 했는데 도저히 그게 빵가루의 자식인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그냥 싫다고 했다. 만약 다른 놈였다면 우리는 원수의 자식을 키우게 되는 것이 아닌가.
빵가루가 없어지자,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도 아무도 반기지 않았고 그 외롭던 시골집이 더 휑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다음에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꼭 후한 카를로스로 짓고 싶었고 내가 미국으로 재이민 와서 요크셔테리어를 구하게 되었을 때 망설임 없이 '찰리'로 지을 수 있었다 (카를로스는 미국명 찰리).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딸의 첫 번째 남자 친구 이름도 찰리여서 우리 가족은 찰리라는 이름과 계속 인연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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