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며칠 동안 수염을 안 깎아도 내 눈에 거슬리지 않지만 아들의 그 몇 가닥 나온 콧수염은 기른 채 3일이 지나도 깎지 않고 집 밖을 나가려면 나는 얼른 아들을 불러 세운다. “아들, 수염 안 깎았네, 얼른 가서 깨끗이 밀고 나가.” 그러면 아들은 시간 없다면서 엄마처럼 자기를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 사람 하나 없다고 불평한다.
“엄마, Nobody 나를 엄마처럼 안 봐.” “아니야, 여자들은 그런 거 다 봐! 너한테 얘기를 안 하고 속으로 지저분하다고 욕해. 어서 깎고 가.”
그런 엄마의 잔소리에 거역하지 않는 아들은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수염을 깎는다. 희한하다. 얼굴은 아직 젖살이 안 빠진 애기 얼굴인데 수염은 자주 깎아서 그런지 금방 거뭇거뭇해진다. 그리고 그게 내 눈에 무척 거슬린다. 아들은 올해 초 성인이 됐다며 지난달 투표도 하고, 운전면허도 따고 나름 성인의식을 다 찾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품 안의 애기처럼 덩치만 산만하지 아직도 강가에 놓인 애 같다.
미국으로 이민 오기 20여 년 전에 당시 임신인 줄 모르고 이민국에서 지정한 예방주사들을 다 맞았었는데 어느 백신인지 주의사항에 그 주사를 맞고 3개월 안에 임신이 되면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읽어 내려 같지만 이민 오면서 까맣게 잊어버렸다.
뱃속에 3개월 된 아이를 갖고 미국 오자마자 산부인과를 알아보고 피검사를 했는데 뜻밖에도 결과가 다운증후군일 수 있다면서 의사는 서둘러 양수검사를 실시했다. 양수검사 결과는 2주 후에 나온다 했고 그 당시 뱃속의 아기는 벌써 5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그 산부인과 의사는 너무 천연덕스럽게 낙태수술을 권하면서 싸게 해 주겠다고 덧붙였다. 주위에 있는 분들도 찝찝하다면서 의사말대로 하라고 했다. 아는 분이 마침 다운증후군 자녀를 두었기에 자문을 구했는데 그분도 자기는 피검사 같은 것에 비정상이라고 나오지 않아 몰라서 낳았다며 후회하였다. 주위에 우리 편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피가 말라가던 2주 후에 결과가 나왔다. 99.99999% 정상이라며 성별은 아들이라고 그랬다. 우리 부부는 한 치의 의심 없이 낳겠다고 했다. 그러나 0.000001%는 비정상일 수 있다며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의사는 계속 우리를 흔들어댔다. 그 의사는 몇 년 후에 자격정지를 맞았다고 신문에 나왔더랬다. 아마 다른 부부들에게도 돕는답시고 실수를 한 모양이다.
그렇게 어렵게 40주를 채워 정월초하루에 아들이 태어났다. 뱃속에서부터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아기의 울음소리를 흡사 멱따는 돼지 울음소리처럼 구슬펐다. 내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던 큰애의 모습과 다르게 아들은 한참 그렇게 울음소리가 오래 이어졌고 곧이어 나는 마취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내가 깨어나서 보니 병원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아가의 눈초리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마침 그 예방주사의 부작용이 바로 임신이 되면 아기의 시력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떠올랐다. 병원에서는 새해 꼭두새벽부터 소아과 무슨, 무슨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다모여서 회의를 하고 아들의 눈을 까뒤집어 보고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애는 말을 못 하니 눈이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확인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거의 일주일을 병원에서 퇴원을 안 시켜줘서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가족들은 교대로 교회 분들을 모셔와서 중보기도를 하며 제발 아기가 정상이기를 통성기도했다.
그렇게 뻑적지근하게 태어난 아들은 결론적으로 다 멀쩡하다. 온 가족의 기도 탓도 있고 축복을 많이 받아 이번 가을에 동부에 있는 C공대에 붙어서 집을 떠날 것이다(올해 탐 크루즈 딸내미가 그 학교에 입학하면서 더 인기가 좋아졌다). 가끔 아들을 바라볼 때면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고 저런 예쁜 자식을 못 봤으면 어쩔 뻔했나 가슴을 쓸어내려 본다.
대학 가기 전까지 앞으로 5-6개월 남아서 아들에게 이렇게 시간적 여유 있을 때 여자 친구나 한번 사귀어 보라고 충고했다.
시국이 이래서 다들 집콕하는 분위기라 연애는커녕 친구도 못 만난다면서 아들은 대학 가서 사귈 거란다. 내 품에 있을 때 여자 친구를 사귀어야 내가 얼굴도 보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 줄 텐데 아쉽다. 나중에 동부 가서 사귀면 엄마에게 시시콜콜 말하지도 않을 텐데 어떻게 하지? 내 잔소리에 겨우 움직이는 녀석이라 앞으로는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것이 아니니 더 이상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은 해본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전국이 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한 관계로 학교도 온라인으로 수업하느라 친구들은 못 만나지만 언제고 만날 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아들은 2주 넘게 다이어트를 하고, 푸시업을 매일 100개를 하면서 몸을 만들고 있다. 머리 색깔도 좀 연하게 염색하고 싶다는 것을 지금 미용실이 닫혀 있으니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10파운드(4킬로 정도)살이 빠지니까 턱에 있던 젖살이 많이 빠져 보인다. 이제야 나이에 맞는 얼굴이 돼 가고 있다. 하지만 내 눈에 여전히 오버랩되는 그 젖살 통통한 얼굴은 왜일까? 얼굴도 매끈하게 아기 같아야 눈에 들어오고 지저분한 수염이 있는 얼굴은 내 아들이 아닌 거 같다. 큰일이다. 아들을 떠나보내기에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는 거 같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아들과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내 품의 아들을 타지로 떠나보내기 150일 전인데 난 아직도 모르겠다. 독수리들은 새끼가 다 크면 낭떠러지에서 바로 떨어뜨린다는데 나는 내가 날개에 태워서 안전하게 아래까지 데려다주고 싶은 마음이니 큰일이다. 그러면 계속 낙하하는 법을 못 키울 텐데 어쩌나? 어느 집이나 우여곡절로 아이들을 다 키울 텐데 나 참 유난을 떠는 거 같다. 아마 아들이 떠나면 한동안 아플 수도 있겠다.
아들에게 약속하나는 받아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와 1주일에 한 번은 꼭 전화통화 하기로! 물론 문자는 내가 수시로 보낼 거 같다. 앞으로 이 크나큰 사랑을 다른 곳에 퍼부어야 할 텐데, 남편과 우리 애견이 서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다. 그래, 내려놔야지. 아들의 앞날을 위해 오로지 기도하며 아들바보는 이제 그만 졸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