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딸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지만, 마치 여름방학 숙제처럼 내일로 미루기만 하다 보니 전혀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이러다 방학이 끝나기 직전, 숙제를 밤새서 하던 그때처럼 나도 그렇게 해야 하는 걸까?
내가 처음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두려움, 그리고 설렘이 가득했던 딸과의 순간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정작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몰라 그저 미루기만 했다.
그러던 중, 2월의 어느 날 중국이 구정 연휴로 인해 장기간 휴가에 들어가면서 의류를 취급하는 우리 회사도 한가해졌다. 마침 항공권과 호텔 요금도 비수기라 비교적 저렴했기에, 딸이 살고 있는 스페인에 가볼 계획을 본격적으로 구체화하게 되었다.
딸은 지난해 9월부터 1년 계약으로 스페인의 4번째 도시인 세비야(Sevilla)에 위치한 이중언어 중·고등학교에서 교생 선생님처럼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참고로, 스페인에서는 중학교 7학년부터 12학년까지를 Secundaria라고 하며 한 학교로 운영됨) 그곳은 작은 동네라서 그런지 딸은 4과목을 맡아 중점적으로 수업을 돕고 있으며, 아이들이 참 착해 한국인의 얼굴로 영어와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딸을 무척 잘 따르고 있다고 한다.
딸은 스페인에 오기 전까지 미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여 졸업한 후, LSAT 시험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LSAT은 점수에 따라 랭킹에 맞는 법학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게 해 줌) 시험 점수를 바탕으로 대학원에 지원한 후, 1년간의 대기 기간 동안 스페인에 체류하며 스페인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스페인에 온 지 6개월이 되어갈 즈음, 딸은 법대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딸이 18살에 대학갈 때 정치학을 전공하며 큰 꿈에 부풀어 있었고, 4년 후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대학을 졸업한 지 2년 반이 넘었지만, 아직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또 무엇을 더 공부해야 남은 인생을 즐겁고 보람되게 살 수 있을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방황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하루라도 빨리 스페인에 가서 딸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직접 보고 싶어졌다.
혹시나 얘가 부모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방탕하게 살거나, 이상한 남자친구를 사귀는 건 아닌지 걱정 되었다. 한때 공부를 좀 하는 아이였는데, 왜 갑자기 법대 진학을 포기한다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 자식이라 뼛속까지 잘 알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애가 스무 살이 넘어가니 점점 모르는 애 같기도 했다. 누구를 닮은 건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끈임없는 걱정과 근심에 두발을 못 뻗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딸과 둘만의 긴~ 여행을 함께 하면서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24살이 된 내 분신과 50살이 넘는 지천명의 엄마가 사이좋게, 그리고 추억에 많이 남을 수 있도록 재미있게 여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제 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이번 여행에서는 마치 딸의 그림자처럼 조용히 따라가는 역할만 했다. 정말 기본적인 도시 이름만 알고 있을 뿐, 그 외에는 한 치의 정보도 검색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그 여행지에 대해 알게 되면 딸에게 '여기가자, 저기가자' 하며 진두지휘할 테니까."
결론적으로 우리 딸은 너무 잘 자라주었고, 한편으로는 나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여행하며 딸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니, 디테일한 면에서는 나를 닮아가고 있다는 점과 동시에 엄마를 닮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어 너무 기뻤다.
그리고 어려서는 무쌍이어서 아빠의 눈을 닮았구나 했는데 이번에 보니 나처럼 쌍꺼풀이 두껍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돈 벌었네 우리 딸~ 원래 대학교 졸업할 때 쌍꺼풀 수술을 해주려고 했었는데, 딸이 "엄마, 나는 얼굴에 칼 대는 거 싫어!" 하길래 좀 더 기다렸다 해주려고 했더니만..
나는 딸이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닮은 것 같아 소외감을 느껴왔다.
직선적인 말투로 싫은 것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단호하게 'No'라고 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는 모습으로 오해했었다.
딸이 사춘기 시절에 나는 일하랴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랴 분주한 어느 날 딸은 "엄마는 왜 그래? 다른 엄마는 안 그러는데~" 라며 영어 잘하고 미국식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친구 엄마와 나를 비교하자, 나는 바로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집에 가서 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름대로 시댁 식구들에게 자식 양육에 대해 인정을 받고 싶었고, 미국에서 살면서 겪었던 차별과 편견을 자식의 교육으로 만회하고자 했다. 그로 인해 아이들이 많이 고생했다. 대학 진학 전까지 과도한 사교육을 시키고, 시행착오와 지나친 학원 학습으로 뺑뺑이 돌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25년 동안 낳고 키운 것에 대해 하나도 억울한 게 없었다! 아이들에게 온전히 정성을 쏟은 그 시간들을 딸은 다 알아주고 있었고, 그럼에도 엄마 말을 100% 따르지 못하는 데 본인도 힘들어 했다.
이해한다 딸~~ 너 나이에는 정말 그런 불안감이 많지. 엄마도 그랬었어. 하지만 엄마 나이 때는 그런 불안감을 결혼이라는 시스템에 맡기고, 나를 편안하게 해 줄 남자를 찾는 거에 혈안이 되어 있었지. '결혼'이란 것이 분명 엄마를 자유롭고 성숙된 인간으로 만들어 줄 줄 알았었는데. 결혼 후 바로 '이게 아니다!'를 깨달았지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