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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Vada Oct 19. 2024

빵 사~

You should buy the donut

현재 다니는 미국회사에 다니기 전 10여 년을 한국 의류 회사에서 일 했었다. 'FOREVER 21'이라는 한때 잘 나가던 미국 LA의 한국인 상표.

그 회사는  미국 아니 전 세계에 매장을 800여개를 개장해서 거의 ZARA, MANGO 메이커 급으로 유명세를 떨쳐 나가더니 어느덧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추세가 바뀌는 시절이 오니까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무리한 사세확장으로 각 매장에 돈을 퍼부어서 투자를 해오다 하루아침에 온라인으로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 거기다가 정크패션(패스트 패션, 허술하게 만들어져 한두 번 입고 버려지는 옷)이라는 오명과  SHEIN, ASOS 같은 중국제품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가격과 제품경쟁에서 밀리는 것이다.


그 Forever 21 브랜드가 아주 잘 나가는 시절, 회사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직원들끼리 참 우애가 넘치는 시간들이 있었다. 1년에 3번씩이나 보너스(매번 각자 주급의 200%)를 받는가 하면 연말에 선물이 한 보따리, 그리고 회사 창립기념일마다 고기 파티와 각종 상품으로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우리 팀은 멕시칸 직원들까지 거의 20여 명이 같이 있었다. 칸막이 같은 거 없이 다 같이 어우러져서 일을 했는데 타인종 7명 정도 빼면 한국 직원 15명이 똘똘 뭉쳐서 매일마다 음식을 싸 오고 점심을 부엌에서 해 먹고 집집의 숟가락 젓가락 숫자까지 다 아는 사이까지 돼버렸다.

그 회사는 유난히 일찍 출근해야 했다. 우리는 아침 7시 반까지 부랴부랴 도착하여 대부분 아침도 못 먹고 오기가 급급했다. 한두 분이 좀 음식을 넉넉히 챙겨 오면 서로 모여서 한 5-10분 아침을 먹으며 워밍업 하는 시간이 되었다.

샘플 만들어 주시는 나이 지긋하신 언니들은 다들 요리고수들이어서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어 오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배추 전, 고추 전(매운 멕시칸 고추인 할라뻬뇨의 씨를 다 빼고 그 안에 고기를 넣어 만든, 깻잎 전 등을 먹어본 것 같다. 그 외에도 군고구마, 삶은 감자, 찐계란, 수제빵, 찹쌀떡 등을 싸 오셨다. 그러면 우리 패턴사들은 좀 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기에 하루 날을 잡아 맛있는 것들을 30여 개 오더 해서 가져왔었다.

그 당시는 빵이 개당 1-2불짜리가 많아서 30여 개 사 오는 게 그리 큰 부담은 아니었다. 음식을 만들어오는 언니들의 수고에 비하면 우리는 그저 시간 좀 들여서 투고해 오는 거라 서로 쌤쌤이라 생각했다.

우리 패턴사들이 사가는 아침 메뉴로 제일 인기 많았던 것은 베이글 & 크림치즈, 곰보빵, 크로켓빵, 찹쌀도넛, 김치만두(왕만두 사이즈), 붕어빵, 샌드위치, 엠빠나다(스페인 스타일 군만두), 프렌치토스트등이 있었다. 아침에 부지런을 떨면 한인타운에서 김밥 한 트레이(Tray) 던가, 떡, 야채만두, 떡볶이 등도 사 올 수 있었다.

1주일에 3-4번은 기본으로 한 사람씩 뭐 사 오던지 만들어오던지 서 푸짐한 아침을 먹었었다.

어쩌다가 아침 사 오는 순번이 끝이 나면 우리는 서로를 막 칭찬하기 시작했다. 느작없이..

"어머, 언니~ 요즘 피부 좋다!" 라느니 "언니네 아들 언제 장가 가요? 좋겠다~"라면서 떠보기도 하고 "딸 이번에 대학 잘 갔지?"라고 이런저런 좋은 소식을 바라는 답변을 기다리면 꼭 대답들이 긍정적이고 행복한 상황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면 그 얘기들을 듣던 우리는 여과 없이

"그럼 빵 사!"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사람 열댓 명 그것도 아줌마들이 죄다 모여있다 보니 한 집 건너 경조사도 많고, 자식에 대한, 본인들 가정에 좋은 소식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뭘 잘했어요." "남편이 이번에 월급 올랐데요!"라고 자랑을 해도

"그래! 그럼 빵 언제 사?"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지만 우리들은 다들 당연한 것처럼 빵을 사고 떡을 샀다.

그 회사를 그만두고 보니 참 먹는 인심이 너무 좋았고 직원들끼리 사이가 좋았던 것이 많이 그리웠다.

이 "빵 사!"라는 게 습관이 돼서 지금의 미국회사에 와서도 좀 편안 직원들이랑 대화하다가 그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You should buy the donut."라고 말했는데 그 뜻이 잘 전달이 안 되었는지 처음에는 못 알아듣는 거 같았다.

한국처럼 먹을 것을 쏜다던지 한턱을 내는 것에 대한 문화가 없는 미국인들은 초반에 굳이 개인적으로 빵이나 도넛을 사 오는 적이 없었다. 그저 생일이 되면 매니저가 마켓에서 파는 제일 달디 케이크를 1개 달랑 사 올뿐이었다.

빵집에서 오롯이 파는 케이크는 좀 덜 달고 화려한데 가격이 비싸다 보니 슈퍼마켓에서 사이즈 크고 그저 크림으로 처발처발 된 케이크는 사는 사람이 그리 부담이 안 갈 수 있다. 암튼 그거라도 사 오니 우리는 감지덕지하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 이후 우리 짠순이 매니저가 감원대상이 되(성격이 정말 별로 였었다) 우리 팀원도 많이 줄어들어서 다 모여보니 8명 밖에 안되었다. 내가 매니저를 이어 팀장이 된 후 정도 인원면 그리 큰 부담 없이 뭘 나눠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먼저 회사 근처에 있는 베이글을 한번 사 가 보았다. 직원들이 모두 너무 고마워하며 맛있게 나눠 먹었었다. 그랬더니 정말 한국회사 저리 가라 한 명씩, 한 명씩 돌아가면서 뭔가 사 오게 되었다!

멕시칸 직원은 자기들이 가는 빵집에서 소라모양의 빵을 사 오고, 미국인 직원은 역시 아침은 도넛! 인 듯 인스타그램에 유명한 도넛을 1박스씩 잘 사 왔다.

이제 우리 회사직원들도 굳이 "빵 사!"라고 안 해도 저마다 자기의 순서를 알고 사 오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자기들의 자랑거리를 하나둘씩 얘기하며 함께 축하해 주는 관계에 까지 다다르게 됐다. 정을 나누는 건 한국사람이건, 미국사람이건 어디든 다 좋아한다. 사람들과의 소통과 정을 나누려면 역시 음식이 기본으로 푸짐해야 하고 먼저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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