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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민 May 25. 2024

런닝머신과 머신러닝

런닝머신


2월에 들어서 런닝을 시작했다. 평소에도 체력이 저질이라 헬스를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살이 빠지지 않고 있던 터에 여자친구가 새로운 자극을 주게 되어(ㅈㅂ이라며 놀림)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에 상체세트 2개, 하체 1개 루틴의 3분할 식 운동을 하고 있었기에 달리기 따위 뭐 얼마나 힘들겠냐며 시작했으나 런닝머신 위에서의 내 모습은 그녀가 말한 ㅈㅂ마냥 기계 위에서 쿵쿵거리며 헐떡이기 바빴다. 하루 많게는 1시간 30분씩 운동하던 나인데 꼴랑 1분 뛰고 1분 걷는 5개 세트조차도 너무나 버거웠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도 3K, 5K 뛸 수 있을까?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내 폐는 작은 아기새마냥 쌔액 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한들 새로운 것은 언제나 힘든 것인가 보다.


머신러닝


내가 살면서 이 단어와 마주하고 관계된 일을 하게 되리라 생각해 본 적 없다. 나는 소위 말하는 수포자였고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수학이 싫어서 미대로 도망친 것이 약 68.74% 정도 진심인 사람이었다. 22년에서 23년 동안 새로 나오던 기술들...라고 해봐야 스테이블 디퓨전으로 친구들 가상 여자친구 만들어주기, 미드저니로 가상 동화 만들기나 하며 놀던 게 다였다. 거기에 Chat GPT3 무료 들어가서 심심이처럼 놀다 보니 씨잘데기 없이 전문성 하나 없는 수박 겉핥기 지식만 늘어나있던 상태였다. 근데 그런 내가 어쩌다 대표님 눈에 띄어서 AI 솔루션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아직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일반인치곤 많이 알지 하더라도 아는 거 하나 없이 회사에 솔루션이나 수업을 제시한다라... 새로운 것은 언제나 어렵다.


생활생활, 습관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내가 4년 동안 운동했다고 말로만 들으면 헬창인 줄 알다가 정작 만나보면 그냥 일반인이네 하며 넘기는 거다. 근데 웃긴 건 소위 말하는 몸 뿜뿜 하시는 헬창분들은 정말 하루(까진 아니더라도 반나절 가까이)를 거기에 다 태울 정도로 어마무지하게 열심히 하신다. 시간과 노력이 모두 배어있듯이. 나는 그 정도는 당연히 아니다. 분할해 둔 루틴에 맞춰 하루 1시간 내외 운동하며 내 건강을 챙기는 정도의 운동인이었다. 보이는 건 근육빵빵맨들에 비해 형편없을지 몰라도 4년이란 시간은 물시간이 아니다. 나름 내 몸에, 내 체형이나 건강상태에 맞게 세트를 구분해 두었고 어느 근육에 얼마만큼의 부하를 걸고 하면 오늘 하루에서 업무와 일상에 지장이 없는지까지 세밀하게 짜여져있다. 일전에 근육 상승량과 체지방 감소율이 너무 낮아서 DNA 검사도 해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내겐 비만 유전자와 근육 성장이 더딘 유전자 모두 있었다. 그럼에도 이 정도를 유지하고 있으면 대단한 거 아닌가라며 스스로를 위로한 적도 있다.

'아니지 대단하지, 난 재능이 없으니 포기할래 안 할 거야! 가 아니라 계속 해내고 있으니까!'

아무튼 하체 근육에 대한 이해도도 충분히 있는 나였지만 어쩔유튜브자동재생목록.

런닝머신 위에선 한없이 나약한 폐활량이었다. 나는 런데이라는 App으로 훈련을 시작했는데 첫 훈련 시스템이 '30분 달리기'이다. 총 8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주마다 2~3회 훈련을 제안한다. 첫 훈련은 1분 달리고 2분 걷는 인터벌 식인데 이마저도 너무 벅찼다. 아니 이 꼬락서니로 어떻게 나중에 8주 뒤에 30분을 연속해서 달릴 수 있다는 거지? 뛰는 동안 쉼 없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벌컥이며 생각했다. 그래도 운동하던 버릇이 있어서인지 포기하진 않았고 꾸준히 3주쯤 뛰었을 때는 로드워크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때 즈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폐활량이야 워낙 어릴 때부터 천식도 앓고 흡연자인 내가 당연히 좋을 리가 없었지만 힘들어하는 것 대비 심박수가 낮았다는 것이다. 평소 몇 년간 운동해 온 덕에 덜 힘들고 습관이 있어 포기하지 않고 왔던 것 같다. 그때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평소에 쓰는 버릇부터 들이자'

그렇게 회사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갈피를 잡게 되었다.

첫 번째는 AI의 진입장벽인 심적 거리감을 줄여주고 두 번째는 친해져서 일상에서 업무에서 가볍게 쓸 수 있는 습관을 만들어주자! 이것이 DX(디지털전환)의 첫 단추가 되었다.

그냥 까라면 까래서 아무도 모르고 알려줄 수도 없는 이 광고판의 디지털 전환이란 삽 하나만 들고 빈 공터에 삽질하며 퍼올리며 무아지경에 빠져있다가 무슨 다우징로드 반응 온 것 마냥 삘 꽂혀서 바로 독려 문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장표의 제목은 Chat GPT랑 같이 만들었는데 무려...

� : 서브타이틀이 더 길지롱 > <

이맘때쯤 나를 도와줄 든든한 지원이 생겼는데 문제는 회사라는 것이 그렇게 직원 편의를 봐주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은 전공한 스카이스카이출신의 대학원생을 붙여줬는데 얘를 붙여줬으니 연초에 있는 국가지원사업에 사업 보고서를 작성해서 내야 하니 투트랙으로 달리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당시 내가 담당하고 있던 프로젝트들은 그대로 피디 업무를 보고 있던지라 3개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독려를 위한 수업 자료 및 AI 탐색, 사용, 분석 등을 해보고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만 진짜 큰 문제는... 기한이 2주도 안 남았었다는 것이었다. 사업 아이템 등은 대외비라 공개할 순 없으나 짜다 보니 대충 이게 진짜 구동을 하면 대행사나 마케터라는 시스템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AI였으나 기술적인 부분과 비용적 부분 등에 의해 2주 동안 달리고 캔슬되었다.  (웃긴 사실인데 글로벌 광고대행사 WWP 뉴욕에서는 이미 이 AI를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하더라...) 아무튼 나도 완전 수박 꼬리만 핥아대던 지식으로 막막하게 AI를 활용해 어떻게 사내 문화나 업무 효율 등을 바꿀 수 있을지? 마치 문과만의 상상으로 이게 다 될 수 있는 점인지 궁금하던 부분이 많았는데 그래도 대학생활 내내 개발을 파던 사람이 와서 여러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많은 메타인지 상승이 있었는데 그분과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레벨 간극을 좁히던 상황은 아래 영상으로 대체할 수 있겠다.











이맘때까진 원래 해오던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부여잡고 있었다. 일전의 일기들에서 내가 내 일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고 즐기는지 한참 얘기했듯이 나는 TVCF에 나오는 내 이름에 달린 작품들이 좋았다. 근데 다 경쟁피티(1) 다 따놓고 빠지라고 하니 힘이 이렇게나 빠질 수가 없었다. 그게 싫어서 억지 부려가며 부여잡고 있었지만 바라던 게 많았고 연달아 달리는 프로젝트들 사이에 AI를 집어넣고 공부하며 장표를 만드니 점차 지쳐만 갔다. 내 자리가 없어져 가고고 점점 더 겉도는 듯한... 이렇게까지 다녀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하던 때쯤, 대표님이 강경하게 피디 일을 내려놓으라는 말에 안 왔던 사춘기가 온 것마냥 모든 프로젝트 방에 공지를 때리고 나갔던 기억이 난다. 분했다. 코로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심호흡을 해봐도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왜 사서 충성을 했고 고생을 가져갔던 걸까?


빈 물 잔에 더운 숨을 내뱉으며 나오지 않을 물방울을 들이키려 헐떡였다.

공허함과 허무함을 베개 삼아 자던,

쓸쓸하고 초라해진 겨울이 가고

3월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움츠렸던 싹들이 자신보다 무거운 흙을 비집고 일어났다. 1분 뛰고 아기새마냥 헐떡이던 나도 어느새 첫 5K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었다. 더불어 회사에 하기 싫은 모든 이들 붙잡아두고 AI를 활용하면 개선할 수 있는 반복적인 작업이나 시간로스가 많은 작업을 줄이는 법, 아낀 시간만큼 창의적인 곳에 더 몰두할 수 있는 형태로, AI의 도장깨기에 두려워말고 잘 쓰는 사람이 잘 난 것인 결국 자신이 레벨업 되는 과정이란 것을 알려줄 독려 발표가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참 이상한 감정이었다. 분명히 싫었다. 내 일을 못 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았다. 내 옷이 아닌 옷을 입는 느낌처럼. 하지만 하나씩 내가 누군가를 설명할 레벨만큼 올라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이해도가 올라가고 사람들이 이걸 알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하다 보니 분명 싫었음에도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들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잘 뛰고 발표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준비한 시간은 비록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달리기도 발표도 모두 농도 짙게 준비했던 터라 작은 기대감이 싹텄다.










벚꽃마라톤


친애하는 여자친구 말로는 이런 벚꽃마라톤은 부담 갖지 말고 뛰어도 되는... 대충 꽃맞이 마라톤 같은 것이라 하였다. 첫 마라톤을 준비하던 나의 당시 페이스는 무려 07:30 이였는데 나는 이 속도도 엄청 빠르다고 생각했다(ㅋㅋ). 페이스도 페이스이지만 일단 30분가량을 안 쉬고 뛸 수 있을지가 많이 걱정됐었는데 기존의 러닝 훈련은 인터벌 식으로 최종적으로 나중에 30분을 연달아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시스템이다. 다만 내가 이 훈련의 중반부였던지라 연달아 30분을 뛰어본 적이 없어 공포감에 몸을 덜덜 거리고 있었는데 가서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10K 준비자들을 보니 그저 소리 지르며 도망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무려 몇 천명에서 만명쯔음 되보이는 사람들이 핑크색티를 입고 집단 체조를 하고 있는데 벚꽃이 아니라 핑크 고무장갑들이 춤을 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레 겁을 먹어서는 출발 전에 자꾸 소피가 마려웠는데 하도 왔다 갔다 했더니 출발 직전엔 몸에 액체가 별로 안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ㅎ


그래도 사진은 찍고 출발했다고...


난생처음 해보는 마라톤, 사람들의 열기와 숨소리 그리고 미세먼지로 자욱이 가득했다. 뛰는 동안 내 페이스만 유지를 하자며 거듭 되뇌었던 거 같다. 내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몰랐는데 나는 꽤나 느린 편이었다. 굉장히 이상한 포즈로 살랑살랑 뛰는 분들이 계셨는데 너무 무섭게도 고인물 스킨인지 축지법 쓰는 사람들마냥 시야에서 사라졌다. 슬리퍼를 신고 뛰시는 할아버님도 계셨는데 이게 장인은 장비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인가? 란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뛰는 사람들을 쫒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는데 가슴은 터질 듯이 뛰고 폐는 바삐 숨을 들이켜느라 고생 중이었다. 분명 주변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주변 소리가 마치 노이즈 캔슬링처럼 내려갔고 어느새 온전히 내 숨소리와 페이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연습 중엔 아무 생각도 못했었는데 고민하던 내 업무들과 앞으로... 무엇은 어떻게 해야 할지 뛰면서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발표는 어떤 식으로 하고 사람들에게 앞으로 어떤 게 도움이 되고 할 수 있을지 노트에 적어 내리듯 명료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생각의 흐름이 지나고 눈앞의 풍경은 흔들리듯 일그러져있던 모습에서 누군가 걸어둔 사진처럼 멈춘 듯이 보였다. 아직 채도가 오르지 않은 톤이 많이 다운된 노란색 풀들 사이로 듬성듬성 초록색 물감들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에 담기는 풍경들을 뒤로 그저 앞으로 뛰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앞에 골인 지점이 흐릿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법 내 업무, 직무에 대한 고민을 길게 길게 써 내렸던 거 같다. 놀랍게도 내 고민은 당시 어떤 식을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고 불편했다. 미궁 속에 빠져서 입구가 있을 거란 희망 따위는 들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냥 내가 광고를 하면서 AI에 관심을 가지며 겹쳤던 부분들. 제작팀이 쓸만한 것 외로도 기획팀이 쓸 수 있는 인사이트 효율 올리는 방법들, 그런 것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모두 숙지하고 작성하고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3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여태 쌓아 올린 것들을 이제 천막을 거두고 보여줄 시간이었다. 솔직한 말로 실무자들이랑 친하다 보니 얼마나 사람들이 AI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 정도에 대해 알고 있었다. 까놓고 얘기해서 정말 '아, 그런 게 있구나' 정도였다. 이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리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구성을 했다.

독려로 시작해서 AI를 활용해서 인사이트를 취합하고 나온 인사이트를 토대로 카피까지 구성하는 단계를 보여줬다. 내가 대단한 기획도 아니고 카피라이터도 아닌지라 그 수준은 형편없을지언정 현업을 치면서 시간이 들 수밖에 없는 부분들을 AI툴만 활용해서 30분 만에 구성하는 법을 보여줬다. 발표 당시 앞에 앉아 계시던 분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바뀐 순간을 기억한다. 대체될 거라는 불안감으로 걱정하지 말 것, AI는 인간의 일상이나 업무를 돕기 위한 것, 쓰기에 따라 심심이에서 자비스가 될 수 있는 점, 이 모든 건 사용자의 역량이고 사용하게 되며 줄어든 시간은 더 창의적인 곳에 쓰고 이를 통해 더 넓은 시야와 깊은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게. 이것이 내 수업의 목표였다. 그리고 그 목표는 뭐... 지금 사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 50% 정도는 잘 전달이 된 것 같다. 시작이 반? 반이면 시작했지! 더 이상 우울함과 힘듦은 그만하고 긍정적으로 나아가보려 한다. 성공적인 전사 발표를 끝내니 정말 개운했고 34살이면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아니 나이를 떠나서 새로운 것의 도전이 정말 무섭지 않게 되었다. 뿌듯한 마음을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대표님께서 하회탈 얼굴을 하시곤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잘했다, 다음엔 우리 제자들한테도 하러 가자'



대표님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다.

초봄이었다.





(1) 독립광고대행사의 수입시스템은 외부, 즉 광고주들이 내놓는 캠페인 운영과제(경쟁 PT) 비딩을 통해 이루어진다. 굉장히 짧고 굵고 고달파지며 제일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기는 기간인데(수명을 줄여 수면을 포기하고 줄밤샘의 연속...) 그만큼 땄을 때와 아닐 때의 감정온도 차이가 광화문광장에서 해피뉴이어! 외치는 순간과 엄청 다급하게 준비해서 지하철 후다닥 탔는데 거꾸로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나 지금 뭐하냐...' 혼잣말을 되뇌일 때만큼 허무함만큼 차이가 난다.


러닝 그리고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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