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뭐라고했겠노
작년에 확진된 아버지의 전립선암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수술 이후 우리 가족은 추석에는 고향에 가지 않고 설에만 명절을 쇠기로 합의했었다. 덕분에 이번 추석 일주일 전, 우리 가족은 대구에 내려가 동생네 식구들과 미리 만났다. 열 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고급 호텔 뷔페에서 식사했다. 내 수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버는 동생이 꽤 큰돈을 썼다. (동생아, 고맙다. ㅋ)
실제로 내려가지 않는 명절은 처음이라 기분이 묘하고 뒤숭숭했다. 그런데 추석 전전날과 전날, 통화기 너머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알고 보니 2주 전 아버지의 추적 검사 결과가 문제였다. CT와 MRI 결과를 보러 간 자리에서 의사가 "식도 쪽이 많이 부어있으니 따로 정밀 검사를 해보시는 게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3년 전 위내시경에서도 상태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덜컥 겁을 드셨고, 어머니 역시 '혹시 또 다른 암은 아닐까' 하는 공포에 휩싸여 계셨다. 자식들 걱정할까 봐 쉬쉬하다가 명절 안부 전화에 그만 털어놓으신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 차례상 차리는 데 온 힘을 쏟으며 살아오신 분이다. 김씨인 어머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건만 남편의 조상을 모시는 데 정성을 다했고, 나와 동생이 밥벌이하며 잘 사는 것도 그 조상 덕이라 믿어오셨다. 그런 어머니가 이번 명절에 차례를 건너뛰게 되었으니, 만약 아버지 검사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내가 조상을 소홀히 모셔서 벌을 받나 보다" 하고 자책하실 게 뻔했다. 조상님이 후손에게 벌을 준다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어머니의 세계관에서는 충분히 개연성 있는 공포였다.
"느그 아부지 위로 좀 해드려라. 지금 상심이 크다." 어머니의 당부에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식사 끝나자마자 바로 눕는 습관, 그거 역류성 식도염에 최악입니다. 생활 습관 안 바꾸시면 진짜 후회하세요." 하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역류성 식도염은 아이다~ 암튼 간에...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어쩌나 걱정이 좀 되기는 하네. 그래, 생활 습관 바꾸기는 해야지. 아이고..."
사실 아버지가 당신의 건강을 '훼방' 놓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고 꾸준하다.
1) 간이 맞는 떡국에도 간장을 세 숟가락 더 넣는 짠맛 사랑.
2) 식후 즉시 취침 (술과 음식을 가득 채운 채로).
3) 운동 거부 (귀찮다는 이유로 산책조차 거절).
4) 구부정한 자세로 종일 앉아 있기.
그리고 드디어, 추가 검사 결과가 나온 날이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는데, 수화기 너머 어머니 목소리가 한 톤 높아져 있었다. 큰일이 아니구나. 아버지의 위장 상태는 3년 전보다 오히려 좋아졌고, 식도와 위 연결 부위에 약간의 역류성 식도염 증상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대장 내시경에서 떼어낸 용종 몇 개도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소견이었다.
아버지를 바꿔드렸더니 며칠 전의 죽어가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딴사람이 되어 계셨다. 이번에 놀라긴 했으니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습관을 바꾸겠다며 짐짓 점잖게 말씀하시더니, 기어이 본심을 한 마디 덧붙이셨다.
"아~~~ 그나저나 그 대학병원 의사 놈의 시키, 그거 괜~히 겁이나 주고 말이야. 이렇게 아무 일도 아닌 거를!"
나는 기가 차서 대꾸했다.
"어허! 아버지, 그렇게 생각하실 게 아니죠. 그 의사 덕분에 추가 검사해서 별일 없다는 거 확인했고, 생활 습관도 바꾸게 되었으니 고맙게 생각하셔야죠!"
"아... 그게 그래 되나? 하기는 니 말도 맞네. 그래 생각해야 되겠네."
아버지는 머쓱하게 수긍하셨다. 평생 세상을 부정적인 필터로 보아오신 아버지. '다행이다'보다는 '저놈이 나를 겁줬다'는 원망이 먼저 튀어나오는 그 스타일은 일흔이 넘어도 여전하시다. 그래도 아들의 핀잔을 순순히 받아들이시는 걸 보니 좀 늙으셨나 싶어 짠하기도 했다.
다시 어머니를 바꿨다.
"어머니도 마음고생하셨는데 다행입니데이."
그런데 내 위로에 어머니가 뱉은 말은 예상 밖이었다.
"그래~ 아이고... 느그 아부지하고 내하고 인스턴트를 먹나, 몸에 나쁜 걸 먹나... 그런데 암인 줄 알고 정말 걱정 많이 했다. 전립선암 걸린 것도 그런데, 이번에 만약에 또 다른 암이라 그랬으면 남들이 뭐라고 했겠노. 아이고~ 다행이지."
'남.들.이. 뭐.라.고. 했.겠.노.' 그 문장이 내 귀에, 아니 가슴에 쿵 하고 박혔다.
어머니는 평생 타인의 시선을 나침반 삼아 살아오셨다. 암에 걸리는 문제, 죽고 사는 문제는 온전히 자신들의 것임에도 어머니는 '타인의 평가'를 먼저 걱정하셨다. '도대체 평소에 몸에 얼마나 안 좋은 걸 먹었길래 부부가 쌍으로 암에 걸리나.' 사람들이 뒤에서 이렇게 수군거릴까 봐, 어머니는 아버지가 아픈 것보다 그 시선이 더 두려우셨던 것이다.
"그런 말씀을 뭐 하러 하세요"라는 내 말에도 어머니는 "그래도~" 하며 말끝을 흐리셨다.
전화를 끊고 마음이 복잡했다. 건강을 스스로 훼방 놓으면서 매사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일흔의 아버지. 자신의 고통보다 세상의 평가가 더 두려운 일흔의 어머니.
오랫동안 굳어진 두 분의 마음가짐을 자식인 내가 억지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부디 두 분의 남은 여생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긍정적이기를,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어 조금은 더 제멋대로 자유로우시기를. 오늘 밤은 그 바람을 간절히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