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설거지와 관계

누군가의 뒷모습 - 가장 진실한 사랑의 기록

by 로벤

"사랑이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똑같은 방향을 내다보는 것이다." — 생텍쥐페리


우리는 보통 사람의 앞모습을 보고 그를 기억한다. 연애 시절 마주 보고 앉아 커피를 마실 때의 설레던 눈빛, 결혼식장에서 환하게 빛나던 미소,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왔어?” 하고 반겨주는 표정들. 앨범을 채우는 사진들도 하나같이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가장 예쁘게 꾸며진 앞모습들이다. 앞모습은 의식의 영역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표정을 관리하고, 옷매무새를 다듬고, 괜찮은 척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가족이 되어 한집에서 산다는 건, 서로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더 자주, 더 오래 보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다. 진짜 사랑은 꾸며진 앞모습이 아니라, 무방비하게 드러난 뒷모습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늦은 밤,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부엌을 본다. 아내가 싱크대 앞에 서 있다. 그녀는 지금 ‘아내’도 ‘엄마’도 아닌, 그저 노동하는 한 사람으로 거기 서 있다. 목이 다 늘어나 쇄골이 훤히 보이는 낡은 면 티셔츠, 아무렇게나 질끈 묶어 올린 머리카락 사이로 삐져나온 잔머리들. 하루 종일 서 있었을 다리가 아픈지, 발뒤꿈치를 들었다 놨다 하며 짝다리를 짚는 그 불안한 리듬. 화려하지도 않고, 조금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무방비한 뒷모습. 나는 그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하게 아려오는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짠함, 미안함, 고마움,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사랑 같은 것들이 한데 뭉쳐진, 목구멍에 걸린 덩어리 같은 감정이다.


설거지를 하는 사람의 등은 외롭다. 거실에서는 남편과 아이들이 과일을 깎아 먹으며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깔깔대며 웃는다. 그 행복한 소음들은 설거지하는 사람의 등 뒤에서 맴돌 뿐이다. 그는 쏟아지는 물소리에 갇혀, 가족들의 웃음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묵묵히 그들이 먹고 남긴 껍질과 흔적을 지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잠시 다른 시공간에 격리된 사람. 그 쓸쓸한 등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사랑해”라는 달콤한 말보다 “내가 할게”라며 다가가는 발걸음이 더 진실한 사랑의 언어임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나의 세상은 시장통 만두 가게 어머니의 뒷모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좁아터진 가게 구석, 사람 한 명 겨우 서 있을 공간에 마련된 개수대. 어머니는 늘 그곳에 박제된 사람처럼 서 계셨다.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 앞에서 쉼 없이 팔을 움직이던 그 작고 단단한 등. 찜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이 어머니의 등을 휘감아도 어머니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다. 어린 나는 그 등이 퍽 넓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등은 우리 가족의 생계와 동전 하나 물려받지 못한 채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했던 가난한 집안의 둘째 아들인 아버지와의 삶을 떠받치느라 잔뜩 굽어 있었다. 어머니의 등이 굽어질수록, 손가락 마디가 굵어질수록 우리의 밥상은 풍성해졌고 내 옷은 깨끗해졌다. 나는 어머니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보며 자랐고, 그 뒷모습이 나를 키웠다.


이제는 내가 그 기둥이 되어 싱크대 앞에 선다. 아내가 설거지하려 할 때, 슬그머니 엉덩이로 밀어내고 내가 고무장갑을 낀다. “당신은 가서 좀 쉬어. 드라마 봐.” 센 척하며 말하지만, 사실 싱크대 앞에 서면 나 또한 작아진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가장으로서의 무게,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거품 묻은 접시 위로 둥둥 떠다닌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 표정을 관리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릇을 닦으며 한숨을 푹 쉬기도 하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내 등은 지금 아주 솔직한 상태다.


그때였다. 허리춤에 무언가 따뜻하고 말랑한 것이 와닿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딸아이가 살금살금 다가와 내 허리를 뒤에서 와락 껴안은 것이다. “아빠, 설거지해? 내가 도와줄까?” 등 뒤에서 전해지는 아이의 체온, 샴푸 냄새, 그리고 콩닥거리는 작은 심장 박동. 그 순간, 딱딱하게 굳어있던 내 등의 근육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내 뒷모습이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내가 지금 닦고 있는 이 그릇들이, 이 노동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아이의 작은 팔이 내 배를 감싸 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뒷모습은 쓸쓸함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 다가와 안아줄 수 있도록 비워둔 ‘여백’이라는 것을. 앞모습은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하지만, 뒷모습은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 주고, 안아줄 수 있는 공간이다. 내가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사랑을 배웠듯, 내 아이도 나의 뒷모습을 보며 아빠의 사랑을 느끼고 있을까.


말은 가끔 거짓말을 하고 표정은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다. 하지만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피곤하면 피곤한 대로 축 처진 어깨,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리듬을 타는 엉덩이, 고민이 있으면 굳어있는 목덜미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이면 이제 모른 척하지 않는다. 슬그머니 다가가 어깨를 주무르거나, 엉덩이를 툭 치며 장난을 건다. 백 마디 위로의 말보다 한 번의 스킨십이 그녀의 고단한 등을 펴주리라 믿으면서.


가족이란 결국, 서로의 쓸쓸하고 무방비한 뒷모습을 안쓰러워하고, 기꺼이 다가가 그 등을 안아주는 사이가 아닐까. 오늘도 나는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한 앞모습을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나의 등을 내어준다. 내 등 뒤에 우리 가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싱크대 앞의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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