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생긴 매듭, 마음을 닦아 풀다: A시에서의 1년과 암(癌)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2.
설거지통 앞에는 세 종류의 적(敵)이 있다. 물로만 헹궈도 되는 ‘순한 적’, 세제를 써야 하는 ‘보통의 적’, 그리고 힘과 시간을 몽땅 쏟아부어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악질적인 적’. 내 인생에서 그 악질적인 적은 ‘과도한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왔다.
교직 생활 중 가장 뜨겁고 치열했던 시기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A시에서 근무했던 그 1년을 꼽는다. 당시 나는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운전해서 출퇴근했다. 새벽별을 보며 집을 나서고, 달을 보며 돌아오는 강행군이었다. 학교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들이 가득한 교실은 매일이 전쟁터였다. 싸움을 말리고, 가출한 아이를 찾으러 다니고, 깨진 유리창을 치우는 일이 수업만큼이나 빈번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소위 ‘뽕’에 취해 있었다. ‘나는 교사다. 내가 포기하면 아이들도 포기하는 것이다.’ 승진을 하겠다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겠다는 세속적인 욕심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좋은 선생님’,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서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는 내 체력이 무한한 자원인 줄 착각했다. 피로가 몰려와도 “젊으니까 괜찮아, 정신력으로 버티면 돼”라며 핫식스 같은 카페인 음료를 털어 넣고 다시 달렸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처럼.
그 1년의 끝자락, 내 몸이 기어이 파업을 선언했다. 종합건강검진 결과지에는 낯선 단어가 적혀 있었다. ‘갑상선암’. 의사 선생님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트레스와 과로가 큰 원인일 수 있습니다. 수술하셔야 합니다.”
진료실을 나와 병원 복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가 찼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나. 남들 꾀부릴 때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아등바등한 죄밖에 없는데. 내 목에 생긴 그 딱딱한 혹이, 내가 그동안 억지로 삼키고 억누르며 태워버린 스트레스의 찌꺼기들이 뭉쳐진 것이라 생각하니 억울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내 몸을 불사르며 살았는데, 내 몸은 나를 배신했다.
수술을 하고 병가를 낸 기간, 나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목에는 선명한 수술 자국이 남았고, 체력은 바닥을 쳤다. 평생 쉴 새 없이 달려온 나에게 ‘멈춤’은 고문과도 같았다. 무기력하게 거실에 누워 있다가, 문득 부엌 싱크대에 눈길이 갔다. 아내가 아침에 미처 치우지 못한 설거지감이 쌓여 있었다. 나는 홀린 듯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개수대 구석에 시커멓게 탄 스테인리스 냄비가 보였다. 며칠 전 아내가 사골국을 데우려다 깜빡 잠이 들어 태워 먹은 냄비였다. 바닥은 새카만 숯덩이가 되어 눌어붙어 있었고, 탄내도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평소 같으면 “이거 못 써, 버려” 하고 쓰레기통에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그 냄비가 내 처지 같아서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너도 나처럼 너무 뜨겁게 달궈지다가 속이 다 타버렸구나.’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냄비를 잡았다. 베이킹소다를 듬뿍 뿌리고, 철 수세미로 탄 바닥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석, 석, 석, 석.’ 거친 마찰음이 부엌을 채웠다. 검은 잿물이 흘러나왔다. 팔이 아팠지만 멈추지 않았다. 냄비의 탄 자국을 벗겨내는 것이 마치 내 목의 상처를, 내 마음의 억울함을 닦아내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내가 미련했다. 내가 나를 너무 몰아붙였어.’ 한참을 문질렀을까. 검은 껍질이 벗겨지고, 그 아래에서 은색 속살이 조금씩 빛나기 시작했다. 냄비는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다. 겉은 탔어도 속은 멀쩡했다. 닦아내면 다시 쓸 수 있었다.
그 순간, 냄비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봐, 괜찮아. 겉은 좀 탔어도 다 닦이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나는 헹굼 물에 씻겨 내려가는 검은 잿물을 보며 내 인생의 ‘탄 부분’을 인정하기로 했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혹은 스스로 만든 완벽함의 기준에 갇혀서 나를 태워버렸던 시간들. 갑상선암은 내 인생의 사형 선고가 아니라, “제발 그만 좀 달리고 잠시 불을 꺼!”라고 몸이 보내는 다급한 경고등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설거지를 하며 인생의 ‘불 조절’을 배웠다. 냄비가 타지 않게 하려면 처음엔 센 불로 끓이더라도, 나중엔 약불로 줄여서 은근하게 데워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센 불만 고집하다간 결국 바닥이 타버리고 만다. 가끔은 불을 끄고 식히는 시간,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도 나는 목의 흉터를 볼 때마다, 그리고 설거지하다가 탄 냄비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매듭은 묶였으면 풀면 되고, 그릇은 탔으면 닦으면 된다.’ 닦아낸 냄비가 예전보다 더 반짝이듯, 아픔을 닦아낸 내 삶도 더 단단하고 깊어졌으리라 믿는다. 나는 이제 내 몸에 생긴 매듭을 억지로 잡아당기지 않고, 부드러운 거품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닦아서 풀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