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설거지와 성장

흉터가 있는 그릇은 더 단단하다: 7살의 개업식 날

by 로벤

"세상은 모든 사람을 깨뜨린다. 그리고 그 후에, 많은 사람들은 그 깨진 곳에서 더 강해진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무기여 잘 있거라』 중에서



내 몸에는 여기저기 훈장 같은 흉터들이 있다. 그중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흉터는 내 나이 일곱 살 때 새겨진 것이다. 그날은 우리 가족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였다. 부모님이 시장통에서 만두 가게를 처음 개업하는 날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전혀 없었던 두 분이 자수성가를 해보겠다고, 밤낮으로 준비한 희망의 터전이었다.


부모님은 개업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기에, 나와 동생은 외가에 맡겨졌다. 어른들은 분주했고, 우리 형제는 골목에서 뛰어놀았다. 그날의 기억은 파편적이다. 가게 앞에는 화환이 놓여 있었을 것이고, 부모님은 웃으며 이웃들에게 시루떡을 준비해두고는 만두를 빚고 굽고 하셨을 거다. 하지만 그 시간, 외갓집 앞 도로에서 나는 거대한 시내버스와 마주했다. ‘끼이익-’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날카로운 파열음. 둔탁한 충격. 그리고 세상이 암전되었다.


의사들이 “아이가 살아난 게 기적”이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큰 사고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의 생명에 지장이 조금도 없었고 몸 여기저기에 찰과상으로 인한 상처들이 있을 뿐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날 시장통은 그야말로 대혼돈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개업 축하 떡을 돌리며 “잘 부탁드립니다” 허리를 굽히던 부모님에게 날벼락 같은 비보가 전해졌다. “장남이 사고가 났대요! 빨리 병원으로 와보세요!”


아버지는 밀가루 묻은 앞치마를 벗을 새도 없이 뛰셨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셨다. 가장 축복받아야 할 시작의 날이, 가장 끔찍한 비극의 날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부모님은 가게 문을 열자마자 닫아걸고 내 병상 옆을 지키셨다. 만두를 빚어야 할 손으로 내 붕대를 감싸 쥐고 얼마나 많은 밤을 기도하며 지새우셨을까. 사고의 장면을 전해들은 부모님도,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셨다고 훗날 말씀하셨다.


기적적으로 나는 약 한 달 정도 병원 밥과 곰탕을 먹으며 살아났다. 하지만 그날의 사고는 내 몸에만 흉터를 남긴 게 아니었다. 현장에 함께 있었던 내 남동생은 그날의 충격으로 오랫동안 혼자 잠들지 못했다. 밤마다 공포에 질려 뒤척이는 동생의 등을 할아버지나 내가 한참 동안 토닥여줘야만 겨우 잠이 들곤 했다. 개업식 날 터진 액운은 우리 형제의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문신을 새겼다. 부모님은 그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1년에 딱 이틀, 설과 추석 당일을 빼고는 363일 내내 가게 문을 열고 만두를 빚으셨다. 쉬는 법을 잊은 사람들처럼.


그 이후로도 나는 마치 ‘죽음’과 술래잡기를 하듯,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3번이나 더 겪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일어났다. 내 몸에 남은 흉터들은 그 치열했던 생존 게임의 기록이다.

어릴 때는 그 흉터가 죽기보다 싫었다. 목욕탕에 갈 때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수건으로 몸을 가리기 바빴고, 여름에도 반소매 입기를 꺼렸다. 매끈하고 깨끗한 몸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왜 하필 좋은 날에,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개업식 날 사고를 쳤다는 죄책감과 내 몸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매일 밤 설거지를 하며 수많은 그릇을 만지다 보니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가끔 설거지를 하다가 아끼던 접시에 실금이 가거나 이가 살짝 나갈 때가 있다. 예전 같으면 “에이, 못 쓰겠네” 하고 쓰레기통에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는 깨진 도자기를 버리는 대신, 그 깨진 틈을 옻과 금가루로 메워 수리하는 ‘킨츠기’라는 공예 기법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깨진 자리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금색 선으로 그 상처를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수리된 그릇은, 깨지기 전보다 더 아름답고 기품 있어 보인다. 한 번 깨졌다가 다시 붙은 그릇은, 충격을 흡수하고 견뎌내는 법을 알기에 오히려 더 단단하고 오래 살아남는다.


나의 삶도 그랬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나는, 삶이 얼마나 연약하고 동시에 질긴 것인지 본능적으로 안다. 내 몸의 흉터는 깨진 자국이 아니라, 삶이 나를 단단하게 ‘이어 붙인’ 금 자국이다. 그날의 사고가 나를 깨뜨렸지만, 부모님의 사랑과 나의 의지가 나를 다시 붙였다.


설거지를 하다가 이가 살짝 나간 접시를 보면, 나는 그것을 버리는 대신 가장 손이 잘 닿는 곳에 둔다. “너도 아팠구나. 그래도 버티느라 애썼다.” 상처 입은 그릇이 여전히 따뜻한 밥을 담아내듯, 흉터 많은 내 몸도 여전히 한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매일 밤 설거지를 해낸다. 살아남았다는 것, 견뎌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뜨거운 물에 손을 담글 때마다, 나는 내 손목의 맥박을 느낀다. 콩닥, 콩닥. 개업식 날 멈출 뻔했던 이 심장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힘차게 뛰고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이 사무치게 고마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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