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하지 않은 길

by 푸른날개

비행을 마치고 내게 주어진 이틀.


눈을 떴다.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이 시간을 버리기가 너무 아쉽다.

누구나 해외의 호텔에서 눈을 뜨는 것은 아니니까.


'뭘 해야 하지?'

핸드폰을 켜고 주변에 갈만한 장소를 찾아

고민하기 시작한다.

'음, 여기 좋을 것 같은데, 약간 머네. 그래도 이 정도는 다녀올 수 있지',

'여기도 괜찮은 것 같다. 거리도 괜찮고. 아, 입장료가 조금 비싼 것 같은데.'

몇 군데 갈만한 곳을 추려서 다시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직도 내 몸은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다.

'조금 피곤한데. 잠깐만 쉬었다가.'

이리저리 뉴스도 보고 쇼츠도 보다가 스륵 잠이 든다.


어느샌가 2시간이 지나버렸다.

다시 고민한다.

'벌써 점심시간이 다가오니 이제 여기는 못 갈 것 같아. 그럼 여기로 가볼까? 아, 여긴 좀 비싼 것 같은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면 가 볼 법하지만 이제 가기엔 좀 아깝지 않아? 아 머리 아파. 우선 커피 한잔 마셔볼까?'


드디어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나온다.

커피머신을 켜고 물을 끓이는 동안

앉아서 이리저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찾아본다.

물은 진작에 끓었지만 난 잊고 있다.

다시 한번 커피머신을 켜고 커피를 내린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다시 갈 곳을 찾는다.

좀 더 편안한 자세로 찾고 싶다.

어느샌가 내 몸은 다시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한 손엔 커피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 핸드폰이 들려있다.

따뜻한 커피가 내 정신을 맑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커피는 옆테이블에 놓이고

몸은 점점 더 편안하게 눕혀진다.

그리고 또 시간이 간다.


해는 벌써 중천을 지나 뉘엿뉘엿 넘어가고,

내 마음은 조급해지고

밖에 나가고자 하는 내 의지는 해와 같이 넘어간다.

'아, 오늘은 안될 것 같아. 몸이 많이 피곤했던 거야. 이런 날은 푹 자야지.'

내 몸이 정말 피곤한지,

내 마음이 내 몸을 피곤하게 만든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그렇게 해는 저버리고 내 밝은 하루는 어두워졌다.




다시 아침에 눈을 떴다.

잠을 많이 자긴 했지만 아직도 피곤하다.

'뭘 해야 하지? 우선 나가보자. 속이 허전하니 밥부터 먹어야겠어.'

식당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그림 한 장을 완성했다.

아마추어 어반스케쳐라

어찌 보면 아이들 낙서와 같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내 모습이 보인다.

배도 부르니 바로 방에 갈 수는 없어서

그대로 밖으로 나가본다.


호텔 뒤쪽으로 산책로라 쓰인 길로 나선다.

좁은 길은 1분쯤 이어지고

이내 초록의 풀과

파랑의 하늘이 맞닿아 있는 곳이 나온다.


바로 호텔 뒤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

길을 따라 걸으며 이국적인 풍경에 취한다.

다시 그 길은 숲으로 이어지고,

동화 속에 나올법한 마법의 숲을 산책하게 되었다.


걸으면서 만난 아기 주먹만 한 달팽이와

멀리서 나를 물끄러미 관찰하고 있는 사슴.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풍경이다.

그리고 그 숲길의 끝에는 나무로 만든 탑이 있고,

그 아래에선 아이들을 위한 바비큐파티가 준비 중이다.

꽤 높아 보이는 나무탑에 오르니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곳이 있었나?

분명히 유명한 관광포인트는 아니다.

현지인들이 즐길법한 장소이지만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곳보다 훨씬 좋다.


아직도 서늘한 아침바람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점심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꽤 걸어온 거리를 돌아가는 것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로 계속 나아가기로 한다.

마을이 나왔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무작정 시내로 나갔다.


시내를 걷다가 한 언덕에 도착했고,

그곳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자유롭게 앉아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전문가처럼 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 같은 아마추어도 많았다.

잠시 나도 그 속에 섞여 보았다.

바쁜 여행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여유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언덕을 내려와 첫 번째 노천카페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으며 커피 한잔.

그리고 멀지 않은 곳의 상점에 들어가니

수많은 미술용품을 팔고 있었다.

아까 만난 자유로운 예술가들을 위한 상점인 듯싶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몇 가지 펜과 스케치북을 사고 나니

나도 벌써 예술가가 된 듯싶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이제 해가 조금씩 넘어간다.

어제와 같이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날은 차가워지고 있지만 내 마음은 따뜻하다.


같지만 다른 이틀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