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윤경 May 04. 2016

아빠와 떠난 아오모리 온천여행

2016년 2월 8일 오전 9시


  여느 설이라면 친척집 가느라 분주할 시각, 아버지와 다다미 위에 녹차 소반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다. 강하지 않은 향과 맛이 간소한 다다미방과 닮았다. 

  어제 오전 일본 아오모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로 두 시간 반을 날아 도착한 곳은 설국(雪國)이었다. 여행 전 아오모리 사진 자료를 보다 ‘이 책 정도는 읽고 가야겠다’ 해서 읽은 책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빛나는 설원 풍경이, 소설에서 느낀 이미지 보다 강렬하고 밝았다.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이곳에 온천을 주신 것은 신의 한 수다.   

  이번 아오모리 온천여행은 혼자 떠났던 동유럽여행에서 만난 룸메이트로부터 소개 받았다. 영혼과 육체가 위로받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시간이라 했다. 혼자 장기간 여행 떠나 온 것이 죄송했는데, 온천여행이라 아버지도 함께 하실 수 있다 생각했다. 마음먹은 지 3년 만에, 설 연휴에 이틀 휴가를 더해 열흘간의 명절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을 대하는 아버지 생각은 다른 듯 했다. 처음 계획을 말씀드렸을 때 "좋다 가자" 하실 뿐 별 말씀 없으셨는데, 큰 언니와 통화 가운데 "연휴에 내가 서울에 있으면 너희들 부담될까봐 떠난다." 하는 말씀을 하셨다. 부산과 강릉, 대전에 흩어져 사는 언니들이 명절 때 서울 올라올 수고를 덜어준다는 뜻인 듯 했다. 식사하며 "아빠, 이사 가면 명절 때 우리 가족 다 모일 수 있을 거 같아요, 지금은 집이 좁아서 언니들이 와도 걱정이야." 하고 말을 꺼내봤다. 아니나 다를까 "네가 이번에 머리 잘 썼다. 연휴도 긴데 멍하니 집에 있으면 뭐 하겠나." 하셨다.


  순간 머릿속에 그리던 순백의 온천여행 이미지가 회색빛의 어둡고 우울한 느낌으로 변했다. ‘늘 바쁜 딸과 여행가니 좋다’ 생각하면 될 것을 굳이 그렇게 의미를 확장할 필요가 있을까? 아버지와 시각차를 느껴졌다. 언니들은 나에게 전화해 "그렇게 우울한 여행이었어? 그럼 가지 마. 우리가 서울로 갈게." 라고 미안해 했다. 에휴~ 아무렴 어떤가. 고대하던 휴가이든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여행이든 가서 좋은 시간 보내면 되는 것을. 

  누군가는 우동 한 그릇 먹으려고 비행기 타고 동경까지 다녀온다는데, 첫 식사로 먹은 우동은 그 이의 맘을 이해하게 했다. 전통방식으로 우려낸 국물과 탄력 있는 면발이 절로 ‘후루룩’ 소리를 내게 했다. 저녁에는 무사들의 음식이라는 '가이세키 요리'를 먹었다. 종업원들이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식사를 마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불편함 없도록 극진히 살펴 주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여기요!” “반찬 더 주세요.” “식사 빨리 주세요.” 하는 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내일은 핫코다 산에 오른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1,500m 정상 근처까지 올라갔다 내려올 테지만, 사진에서 본 스키어들은 정해진 슬로프가 아닌 자연 그대로 눈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눈 위에 길을 내면서.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다. 그곳에서 보게될 ‘수빙(樹氷)―눈과 안개가 바람에 날리면서 나무에 얼어붙어 기괴한 형상을 이룬 것으로 '스노우 몬스터'로 불리기도 한다―’도 기대 된다. 내일 묵게 될 곳은 아오니 온천. 온전히 호롱불에 의지해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과거로 돌아간 듯 낭만가득한 시간이 되리라. 이런 나날이라면 명절에 가족이 다 함께 모여야 한다는 편견, 한번 쯤 깨도 괜찮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이 뭐라고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