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9일 저녁 6시
“이거, 머리도 먹는 건가?”
“생선은 머리가 맛있지.”
“여기 오니까 음식 정말 맛있지?”
“네가 한 거 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정갈하고 맛있다.”
이 한마디에 또 울컥한다. 나는 먹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혼자 집에 있으면 냉장고 열 일이 없다. 알약 하나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괜찮다 싶다. 그런 내가 삼식(三食)이와 산다. 애인도 남편도 아닌 일흔 여덟 되신 아버지와 동거 7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엄마가 먼저 떠나시고 미처 독립 못한 내가 아버지와 남았다. 케이크 굽는 게 취미인 큰언니도 한식조리사 자격증 있는 둘째 언니도 자취 요리에 일가견 있는 셋째 언니도 아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 밖에 모르는 내가 아버지 밥을 짓는다. 인터넷으로 국을 주문하고, 강남 주부들이 명절이면 줄을 선다는 은마상가에서 반찬을 사며 7년째 버티고 있다. 오후 다섯 시 반에 현대백화점 식품관에 가면 한 팩에 6천 원씩 하던 국이며 반찬을 세 개 만원에 살 수 있다는 알짜 정보에 행복해 하며.
처음엔 “국 참 잘 끓였다” 하시면 시선을 피했다. “달래 향 아주 좋은데?” 하시면 딸꾹질이 났다. 요즘은 “둘이 먹으려고 재료 사 만드느니 사는 게 더 싸.” 하며 알뜰한 척 한다. 처음엔 “맛있게 먹었다.” 하시면 정말 맛있게 드신 줄 알았다. ‘이렇게 또 한 끼 해결하는구나.’ 안도했다. 가끔 반조리 식품에 약간의 양념과 재료를 더해 요리랍시고 내놓고는 “내가 하면 또 잘 한다니까.” 으쓱대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맛있다.” 하시는 건 그저 ‘수고했다’는 뜻이고 “먹은 거 같다.” 하실 때가 진정 만족스러울 때임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아예 미리 여쭌다. “아빠, 오늘은 좀 먹은 거 같아?”
막둥이가 전문가 손길을 빌려 급조한 밥상을 아버지는 “자, 맛있는 것을 오늘 또 먹어볼까요.” 하며 늘 반갑게 맞이하신다. 국 먼저 한술 뜬 뒤 “잘 끓였네.” 하시고, “잘 먹었다. 이제 네 일만 남았구나.” 하며 설거지를 맡기는 미안함까지 챙기신다.
여행을 오니 오늘은 또 뭘 먹나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큰 행복이다. 정해진 시간에 안내된 장소로 가면 환상의 먹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 식재료나 양념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아 편안하다. 먹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우동, 라멘, 돈가스와 같은 단품요리들도 맛있지만 귀족과 무사들이 먹었다는 가이세키는 절로 입을 떡 벌리게 한다. 재료와 조리법이 겹치지 않도록 하면서도 모양과 색의 조화를 생각하는, 그릇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기자기한 그릇을 하나씩 비우다 보면 어느새 용량을 초과해 후회하게 되지만, 돌아간 뒤 ‘그 때 더 맛있게 많이 먹어둘걸’후회할까봐 깨끗하게 비운다. 여행 중 높아질대로 높아진 아버지의 미각을 돌아가서 어떻게 만족시킬지 걱정이 밀려온다.“네가 해 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 하는 아버지의 말씀이 실은 “너와 함께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 라는 뜻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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