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3주 전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이 이야기는 4월 23일 즈음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귀찮음을 포함한 다양한 사정이 겹쳐 이제 글을 올립니다. ㅎ
Chapter 0. P가 여행하는 법
난 시험이 끝나면 늘 나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주곤 한다. 평소 갖고 싶었던 것을 사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름의 휴가를 즐기기도 하고, 가끔씩 몹시 지칠 때나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을 때는 혼자서 작은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다녀오곤 한다. 나름의 보상 심리다. '한동안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선물인 셈이다. 크게 보면 이번 여행도 그런 보상 심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으나, 여타의 계획과는 조금 달랐던, 그리고 특별했던 여행이었다.
시험 전 날 새벽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이 없이 친구의 시험 내용 질문에 대한 답을 곁들인 잡담을 하고 있었다. 옆에선 asmr처럼 틀어둔 '한국인의 밥상'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불암 어르신의 잔잔하고 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간간히 지역 주민들의 정겨운 사투리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어쩌다 바라본 화면에는 평소 좋아하는 음식, 먹고 싶었던 음식, 궁금한 음식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동해 바다의 해산물로 차려낸 밥상을 보고 있노라니 절로 군침이 돌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동해안으로 가는 길을 검색하고 있었다. 후보지는 다양했다. 양양, 경포대, 정동진, 동해, 속초. 지도를 검색하니 이동 시간이 상당히 길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스로 장장 4시간의 길을 거쳐 동해 바다를 맞이해야 하고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다시 집에 돌아오는 것은 과도한 시간낭비였다. 자연스레 버스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교통수단을 찾았다. '기차'.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KTX-이음 열차를 통해 빠르게 바닷가에 도착할 수 있었고, 기차 여행이라는 특별한 감성, 그리고 무엇보다 편도 1시간 40분이라는 적당한 이동시간. 어렸을 때에 탔던 기차에서의 좋은 추억은 기차를 고르는 데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기차로 동해안을 가는 거라면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에서 내려서 최소한의 이동시간으로 최대한의 바다를 즐기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정동진이었다. 플랫폼에서 바다까지 약 100m 정도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 관광지였기에 실패할 확률도 낮았다. 그렇게 목적지를 정하고 난 후, 이른바 철도 덕후라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열차를 선택하고 좋은 자리를 고르고, 적당한 시간대를 선택하는 데에 성공했다. 용산역 표 사는 곳에서 기차표를 받아 들고 좋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플을 통해 앉은자리에서 왕복 기차표를 구매하니 묘한 격세지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이 글을 보았다면 느꼈겠지만 아무런 계획이 없이 이루어진 일이었다. 문득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정동진역에 내려서부터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를 탈 때까지의 모든 계획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아니, 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 여행의 근본적인 목적은 휴식이었기에 바쁘게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며, 원래 여행의 재미는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얻는 뜻밖의 기쁨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계획 따위는 세우고 싶지 않았다. 굳이 한 고민이라면 점심 메뉴의 유형을 정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으로 시험 기간을 무사히 잘 보냈다.
-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