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삶, 삶과 문학

그대의 삶이 곧 한 편의 문학일지니

by 블루퍼
선장님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어요?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한 영상을 보았다. '다큐 3일'의 한 장면이었다. 묵호항 근해에서 조업하는 문어잡이 선장님의 배 위에서 항해 도중 제작진은 위의 질문을 던진다. 대개 고된 삶의 현장에서 어릴 적 꿈과 같은 질문은 멋쩍은 웃음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에, 나 또한 별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답변은 나의 예상과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왜 또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십니까?"


예상치 못한 문학적인 표현에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는 찰나, 이어지는 답변은 감탄을 자아냈다.

"제게도 꿈은 있었습니다. 난 있잖아요, 국문학과를 가고 싶었어요."


국문학과, 우리말과 우리 글을 가장 아름답게 사용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 곳에 가고 싶었을 정도로 우리말과 글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면 어릴 적의 꿈을 묻는 질문에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는 비유가 거침없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무슨 연유로 국문학과를 꿈꾸던 소년은 손에 굳은살이 박인 나이 든 어부가 되었는지에 대한 내 나름의 상상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 이어지는 나이 든 어부의 목소리는 시의 구절을 읊고 있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낙화>, 이형기 中

컷신이 넘어가고 어부는 잔에 물을 채워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건배를 하듯 팔을 뻗어 이 구절을 외기 시작했다. 마치 건배사를 하듯.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사모>, 조지훈 中

문학을 공부하며 수년간 보아왔던 시들이었기에 나이 든 어부의 말들이 시의 한 구절임을 눈치채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의 구절들이 나의 머리로 들어왔고, 습관적으로 나는 시의 구절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시의 제재와 주제, 특징과 표현방법, 시인이 드러내고자 했던 창작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 결과로 얻은 두 시의 공통점은 바로 '이별'을 담은 시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어부가 이별을 주제로 한 두 시의 구절을 읊은 이유는 무엇 일지에 대해 곰곰이 고민해보았다. 단순히 좋아하는 시의 좋아하는 구절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해석을 해보았다. '이 어부는 자신의 '꿈'과 이별했으리라.' 우리의 말과 글이 가진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국문학도의 꿈을 꾸었지만, 나로서는 뭔지 알 수 없는 그만의 사정으로 인해 포기해야 할 때를 알게 되어 돌아섰고, 문학을 꿈꾸던 그의 삶은 점차 문학을 지워간 채로 그물을 끌어올리는 삶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그의 삶에 애통해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담담히 자신의 운명을 순응하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삶을 무엇보다도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위의 두 시들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져 가장 애착이 가는 구절이 되었을 것이다. 마침 잊고 있었던 빛바랜 꿈을 묻는 질문에 마음속에 새겨져 있던 시의 구절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목소리를 타고 나왔을 것이다.


그에게 이형기의 <낙화>와, 조지훈의 <사모>는 '삶' 그 자체였으리라. 잔을 들고 <사모>의 구절을 읊는 모습은 시의 구절을 읊는 것이 아닌 온전히 그의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 마치 그가 이 시를 쓴 시인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는 국문학도의 꿈을 과거의 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국문학도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문학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 당신의 문학은 무엇인가요?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들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문과'다. 방정식의 근을 찾아내고 함수의 그래프를 그려내는 것보다 말과 글 속에 숨겨진 작가의 마음을 느끼고, 나의 마음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대학 입시와, 내신 성적을 위한 과목으로써의 '문과'에 해당되는 공부만을 하고 있던 나를 정말로 '문과'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그에 대해 떳떳한 대답도 하지 못하면서 "나는 문과입니다."라고 말하고 다녔던 내가 부끄러웠다. 문학 시간에 공부했던 수필이 잠시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故 신영복 교수(1941-2016)가 쓴 수필 '새 출발점에 선 당신에게'는 '탁(度)'으로 대표되는 형식과 겉모습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닌 '발(足)'로 대표되는 실천적 삶을 사는 사람이 되기를 충고해주는 수필이다. 그동안 나는 비본질적인 것들, 즉 '탁'에만 집착해왔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중요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이 살아온 것이다. 그에 반해 어부는 비록 학교라는 배움의 장소와는 떨어져 있었지만, 진정한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에 맞는 삶을 살아온, '발'을 따라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질적이고 진정한 가치를 좇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학작품이 되어 나를 포함한 '탁'을 좇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도 각자의 문학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함축적 의미를 담은 시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긴 서사를 담은 소설로 표현할 수 있고, 진솔한 마음을 담담히 써 내려가는 수필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비본질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가 나름 열심히 써 왔다고 생각한 우리의 문학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가치를 담고 살아오면서 쓴 '삶'이라는 문학은 묵호항의 어부의 그것처럼, 그 자체로도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짧은 생각은 하나의 질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금, 당신이 쓰고 있는 문학은 무엇인가?'

2021. 11. 03.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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