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쓰는, 그리고 우리에게 쓰는 편지
아롱져 반짝이는 수천 개의 빛
지난 11월 모의고사의 필적확인란 문구다. 고3 수험생이 되기 직전 마지막 모의고사의 필적확인란 문구를 또박또박 써내려가는 순간에 다양한 생각이 교차했다. '내가 정말 고3이 되는구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구나.' 등등 안타까움, 불안함, 기대감과 같은 많은 생각들이 12글자에 녹아들어 갔다. 시험이 끝나고 하루를 함께한 문구의 의미를 찬찬히 곱씹어보았다. 문장을 잘게 잘게 쪼개기도 해보고, 생소하게 느껴졌던 단어의 뜻을 찾아보기도 했다.
사전 속 '아롱아롱하다'는 두 가지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또렷하지 아니하고 흐리게 자꾸 아른거리다.
여러 가지 빛깔의 작은 점이나 줄 따위가 고르고 촘촘하게 무늬를 이룬 데가 있다.
울림소리(ㄴ, ㄹ, ㅇ, ㅁ)로만 이루어진 단어의 특성상 우리말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단어 같다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다소 현학적인 감상은 저리 치워둔 채, 빛이 '아롱진'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어렸을 때 시골집 마당에 놓인 평상에 누워 바라보았던 밤하늘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수없이 펼쳐진 별들의 향연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린이에게 큰 감동을 주었으리라. 그리고 그때의 밤하늘에 대한 기억이야말로 '아롱져 반짝이는 수천 개의 빛'이라는 문구가 가장 잘 들어맞는 기억일 것이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아롱아롱하다의 첫 번째 정의, '또렷하지 아니하고 흐리게 자꾸 아른거리다.'가 내 눈에 밟혔다. 고3을 앞둔 마지막 모의고사를 보는 나, 그리고 우리의 상황이 아롱아롱하다의 첫 번째 정의와 맞물리며 어렸을 때 보았던 밤하늘이 아닌 다른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나와 같은 나이로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친구들은 모두 자금 껏 살아온 삶 중에서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어려운 분기점에 들어섰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조바심이 날 것이다. 지금 당장 수능 문제를 다 풀어낼 수 없다는 불안감, 1년이 너무 짧은 시간처럼 느껴지는 초조함, 혹시 모를 안 좋은 결과를 고민하는 괴로움 등등.
모 원로 정치인은 '별의 순간'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큰 뜻을 이룰 수 있는 최적의 순간이라는 의미다. 나는 지금부터 약 1년 간의 기간이 바로 우리의 '별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가진 큰 뜻을 노력을 통해 이루어 내기에 충분한 동기와 의지, 그리고 노력의 삼박자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과 불안은 우리의 별의 순간을 또렷하지 아니하고 흐리게 아른거리게 만드는 요소이다. 물론 우리의 별이 어둡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그 빛을 반짝이도록 갈고 닦을 동기가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과도한 걱정과 불안은 별빛을 흐릿하게 하는 것을 넘어 별을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에서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나 그리고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과도한 걱정은 되려 일을 망친다.'라는 것이다. 이제 갓 별이 되었으니, 그 빛이 밝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별의 순간이 온 것만은 확실하기에, 지금 당장 다른 별들보다 어둡다고 실망하지 말고, 지금 당장 빛을 낼 수 없다고 낙담하지 말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신만의 가장 반짝일 그 순간을 위해 노력한다면, 흐릿하게 아롱지던 우리의 별은, 촘촘하고 무늬를 이루며 아롱져 반짝이는 수천 개의 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나 또한 별의 순간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이다. 말은 걱정하지 말자고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위에 써둔 말은 나 자신을 다독이기 위한 한 마디의 변명과 위로에 가까울지 모른다. 아니, 변명과 위로, 그리고 격려이다. 말 그대로 새 출발점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고3 수험생'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게 된 나의 친구들에게, 그리고 그런 우리를 한 마음 한 뜻으로 응원하고 도와줄 그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고, 아롱져 반짝일 그 별빛을 잘 다듬어 곧 어두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게 조금만 더 힘을 내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늘은 그 누구보다 떨고 있는 나를 위해서, 그리고 곧 그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을 내며 아롱질 그 순간을 위하여 이렇게 짧은 글을 써본다.
2021. 11. 29.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