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2 역지사지易地思之 - 입장 바꿔 생각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관리소장이 늘 '하는' 7가지 찐? 소리
1. 저만한 사람 없습니다 2. 저희 수준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3. 너무 큰 기대를 하시네요 4. 저희가 동대표, 부하직원은 아니잖아요 5. 우리는 서면, 기록 좋아하지 않습니다 6. 뭐든 너무 서두르신다! 7. 하루 1가지 이상 업무 처리는 절대 안 합니다 (*대표 회장은 단지의 컨? 어른이시니 언제든지 하문해 주세요?!)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 나주장(관리소장), 편리곰(입주민)
"현재 우리 단지의 보안 체계는 파편화된 누더기 상태입니다. 통합 보안망 구축 전까지는 모바일 앱 도입, 절대 불가합니다." 나주장 소장의 목소리는 작년부터 이어진 편리곰의 간청을 다시 한번 차갑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는 상황실 내부에 육중하게 자리 잡은 CCTV 서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 서버는 단지 안에 있지만, 주차 관제와 공동현관 소프트웨어는 각각 다른 외부 업체가 관리합니다. 이 구멍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유출 경로를 원천 차단하기 전까지는, 어떤 새로운 앱도 얹을 수 없습니다. 보안은 편의보다 우선하는 절대적 가치니까요."
편리곰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항변했다. "소장님, 벌써 1년째 같은 말씀만 하시네요! 옆 단지는 다 앱으로 방문 차량 등록하는데 왜 우리만 구석기시대처럼 매번 경비실에 전화해서 통사정을 해야 합니까? 이게 무슨 보안입니까, 그냥 주민 불편 방치지!" 편리곰의 목소리가 커지자 나주장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설계도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나직이 읊조렸다. "질서가 없는 편리함은 혼돈일 뿐입니다. 진정한 Flow [2], 즉 의식과 시스템이 하나로 결합하여 거침없이 나아가는 최적의 경험은 완벽한 통제 안에서만 발현되는 법입니다." 편리곰은 돌아서며 방백을 던졌다. "완벽? 저건 소장님이 책임지기 싫어서 만든 거대한 알 껍질일 뿐이야. 저 고집불통의 알을 깨려다 주민들 인내심이 먼저 박살 나겠어."
이를 지켜보던 한 입주민이 보다못해 나 소장의 강박적인 보안 논리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대신, 부드러운 우회로를 제안하기로 했다. "소장님, 보안 서버 통합 전까지 앱 도입이 어렵다면, 우선 경비실 전화를 줄일 수 있도록 방문 차량 예약 번호를 주민 핸드폰으로 자동 전송하는 시스템부터 시범 운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서버를 건드리지 않고도 주민들의 행동을 편리한 쪽으로 유도하는 정교한 선택 설계 [1] 가 우선 필요해 보입니다." 나 소장은 예상치 못한 부드러운 제안에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설계도면 위로 시선을 떨궜다.
"내 밥그릇에 손대지 마!" - 음지뱀(입주민), 장단춤(전 동대표)
"소장 말이 백번 지당해요. 외부 앱 쓰다가 주민 정보 털리면 누가 책임져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장단춤은 음지뱀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주장의 결벽증적인 방어 논리를 교묘하게 주민들에게 전파했다. 사실 장단춤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시스템이 하나로 통합되어 주차 기록이 투명해지는 순간, 그가 경비원들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관리해 온 방문 차량 청탁과 소소한 이권의 경로가 완전히 차단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형님! 괜히 편리함 찾다가 내 휴대전화 번호가 대출 업자한테 넘어가면 끝장이죠."
음지뱀은 동조하며 격앙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이미 외부 업체들이 파편적으로 주민 정보를 다루고 있는 현재의 모순된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들의 호가호위(狐假虎威)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소장의 고집을 '보안 전문가의 소신'으로 포장해 주자고. 그래야 우리도 그 뒤에 숨어서 단지를 계속 주무를 수 있으니까." 장단춤은 독백하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통합을 통한 유출 차단이라는 소장의 명분은,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변화 자체를 봉쇄하는 강력한 방패가 되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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