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 마!"-지하 펌프의 비명을 들으세요

CH 3 방관약화傍觀若火 - 나를 넘어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

by 관계학 서설 II

공동주택 동대표 등 주체들의 7가지 불문율

1. 의결정족수가 안되면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는 그냥 노는 거다 2. 입대의에서 의결하고 시행까지 3개월 걸린다 3. 동대표는 ‘욕먹는’ 감정노동 봉사직이다 4. 선관위는 입대의의 하부기관은 아니다 5. 관리실은 구정•추석 등 명절연휴 전후 2일 동안은 개점휴업이다 6. 관리소장은 정치적인 자리가 아니다 7. 고용승계는 ‘고인 물’이다!


“터지고 나서 고치는 게 국룰 아닙니까?” - 무지의 안락함이 만든 지옥 (무책임 소장 / 서영 반장)

지하 기전실의 공기는 30년 된 노후 펌프가 쿨럭이며 내뱉는 녹물 섞인 증기와 습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한정된 예산이라는 족쇄 아래서 기전실 직원들은 이미 '사후 약방문' 식의 사고방식에 중독되어 있었다. “회장님, 솔직히 말씀드려서 공동주택에서 선제적 교체는 사치입니다. 사고가 나야 명분이 서고, 그때서야 입주민들도 지갑을 열지 않겠습니까?” 무책임 소장의 말은 정교하게 짜인 방어기제이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비겁한 유산[1]이었다.

옆에서 낡은 밸브에 구리스를 칠하던 서영 반장도 거들었다. “에이, 회장님. 이거 조금 더 버팁니다. 당장 안 터지는데 예산 세우면 우리만 피곤해져요. 그냥 다음 임대의로 넘기시죠.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어서 관리비 올렸다는 소리 들을 필요 있나요?” (방백: 아, 이 얼마나 달콤하고 비겁한 공모인가. 내 임기만 아니면 된다는 그 '무책임의 대물림'이 30년 세월 동안 이 단지의 안전을 갉아먹고 있었구나. 사실보다 프레임이 우선시되는 인간의 본능적 허구[2]는 기전실의 곰팡이 냄새만큼이나 지독하게 그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었다.)


“가치 떨어진다는 소문나면 회장님이 책임질 거예요?” - 프레임이 삼킨 이성 (근시안녀 / 조일남 / 나몰라 동대표)

입대의 회의실은 이미 '관리비 폭탄'과 '자산 가치'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이 점령하고 있었다. 근시안녀가 회의 탁자를 내리치며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아니, 노후화 이슈가 밖으로 돌면 우리 아파트 가치 떨어진다는 생각 안 하세요? 멀쩡한 펌프를 왜 들쑤셔서 소문을 내냐고요! 관리비 10원만 올라봐요, 난 바로 구청에 민원 넣을 거예요!” 그녀의 곁에서 조일남이 팔짱을 낀 채 냉소를 흘렸다. “그러다 사고 나면 어쩔 건데요? 그땐 관리업체가 전액 배상해야지. 월 수수료 받는 게 얼마인데, 이 정도 책임도 안 집니까? 업체 보험 처리하면 될 거 아냐!”


나는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조 선생님, 업체 수수료 몇 십만 원 받아서 수천만 원 배상하는 구조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보험 처리 한 번 하면 내년엔 보험사들이 우리 단지 거들떠도 안 봅니다. 노후화를 숨기는 게 가치를 지키는 겁니까? 터지고 나서 '관리 안 된 아파트'로 낙인찍히는 게 진짜 가치 폭락 아닙니까!” 나몰라 동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눈치만 살폈다. “회장님, 이번엔 그냥 넘깁시다. 25대 임대의로 넘겨도 아무 문제없어요. 왜 굳이 욕먹어가며 총대를 멥니까?” (독백: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언덕[3] 위에서 그들은 자기 집 혈관이 터지는 줄도 모르고 서로를 향해 삿대질만 해대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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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속에서 '여유와 감성'을 잊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35여년간 홍보, 마케팅, 브랜딩 분야에서 일을 했습니다. 말.글 그리고 그림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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