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3 방관약화傍觀若火 - 나를 넘어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
공동주택 동대표 등 주체들의 7가지 불문율
1. 의결정족수가 안되면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는 그냥 노는 거다 2. 입대의에서 의결하고 시행까지 3개월 걸린다 3. 동대표는 ‘욕먹는’ 감정노동 봉사직이다 4. 선관위는 입대의의 하부기관은 아니다 5. 관리실은 구정•추석 등 명절연휴 전후 2일 동안은 개점휴업이다 6. 관리소장은 정치적인 자리가 아니다 7. 고용승계는 ‘고인 물’이다!
"번쩍이는 1급 페인트가 우리 단지의 훈장 아닙니까?" (조법술 / 입대의 전 임원, 3대악 / 전 임원)
"이것 보세요! 8년이 지났어도 우리 단지 외벽 광택이 저렇게 짱짱한 건 다 내 결단 덕분 아닙니까!" 조법술이 단지 중앙 광장에서 턱을 치켜세우며 사자후를 토했다. 그의 곁을 지키던 '3대악'은 연신 손바닥을 비벼대며 아첨을 쏟아냈다. 하지만 나는 냉소적으로 되물었다. "조 위원님, 아파트 재도장 주기가 보통 6~7년인데, 굳이 가성비 떨어지는 1급 페인트를 2배 가까운 예산 들여 바른 이유가 뭡니까? 그 차액이면 단지 전체의 안전을 위한 물받이 공사를 열 번은 더 했겠습니다!"
나의 일침에 조법술은 당황한 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니, 회장님! 그래도 칠해놓으면 번쩍번쩍하니 집값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영웅적인 결단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게 곧 아파트 가치지, 물받이 따위가 무슨 가치를 높인다고!" 조법술의 호통에 3대악도 비굴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맞습니다, 형님! 보이지 않는 물받이 고치면 누가 알아준답니까? 아스팔트 깔끔하고 외벽 광택 나야 주민들이 손뼉 치죠." 개인의 도덕적 자부심이 집단의 비도덕적 방임으로 변질되는 찰나였다 [1].
"기록 없는 위약금은 누구의 주머니를 채웠는가" (눈치밥 / 전 동대표, Why내만 / 관리소장)
"소장님, 소송까지 해서 받아낸 위약금은 어디 가고 재시공 보고는 단 한 줄도 없습니까?" 나의 매서운 추궁에 Why내만 소장은 서류 뭉치를 뒤적이며 땀을 훔쳤다. "회장님, 사실 물받이 공사가 돈도 많이 들고 주민들은 지붕 위에 돈 쓰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냥 놔두는 게 관례였습니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눈치밥' 전 동대표가 혀를 차며 슬쩍 발을 뺐다. "내가 그때 조법술이 가 문제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무도 안 듣더라고! 난 분명히 반대했어, 진짜라니까?" 그러나 정작 당시 회의록 어디에도 그의 반대 의견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자베르가 법의 이름으로 장발장을 쫓듯, 기록되지 않은 책임은 누군가의 삶을 옥죄는 법적 족쇄가 되어야 마땅했으나 [2], 인수인계 없는 이 단지에서 책임은 그저 '다음 입대의의 몫'으로 유기되어 있었다. "회장님, 저수조나 물탱크 청소 예산 올리면 '우리가 직접 먹는 물인데 설마 더럽겠냐'며 깎으라는 분들이 태반입니다. 정작 본인들 입으로 들어가는 물을 담는 곳인데도 말이죠." Why내만의 한숨 섞인 토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을 비용으로만 치환하는 우리 단지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내 집 천장에서 폭포가 쏟아지는데 정의가 무슨 소용입니까!" (5악녀 / 입주민, 처세짱 / 입주민)
장마가 시작되자 박공지붕의 보복은 잔혹했다. 물받이가 사라진 지붕 끝에서 떨어진 거대한 물줄기가 저층 세대 에어컨 실외기를 난타하며 '두두두두' 괴성을 질렀다. "윗집에서 물 버리는 거 아니에요?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이 양반들아! 관리실은 대체 뭐 하는 거야!" 5악녀가 관리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탁자를 내리치며 고함을 쳤다. "이건 명백한 관리 부실이야! 소장 당장 갈아치워! 위탁업체도 당장 계약 해지해!" 그녀의 뒤에서 처세짱이 스마트폰을 치켜들며 생중계라도 하듯 거들었다. "맞아요, 아파트 꼴이 이게 뭡니까? 주차차단기는 번쩍거리는데 천장에선 물이 새고 말이죠. 나같이 깨어 있는 주민이 가만히 있을 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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