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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ug 28. 2022

슬기로운 병실생활

디스크 환자의 20일 병원 일기

입원 20일째. 퇴원


뜻하지 않은 병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된 지 어언 20, 어제 퇴원을 했다. 처음엔 혼자 쓰던 병실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마지막엔 4인 병실에 70세 K할머니 한분, 66세 C 할머니 한분 이렇게 두 분 사이에 내가 있었다. 때 되면 밥 고 시간 되면 치료받고 하루에 한 번씩 수액 맞고 나머지 시간은 휴식이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다인실 방을 나누어 쓰게 되면 사소한 갈등이 생기기 마련.  슬기롭게 갈등을 헤쳐나가는 기술이 필요하다. 내가 있는 동안 벌써 2명이 나가고 두 명이 새로 들어왔다. 시어머님, 친정어머니 또래의 어른들과 지내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세심한 노하우가 필수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속에 살아남은 나. 그간 503호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TV는 제5의 멤버

병실에 와보니 40대 중반인데도 내가 제일 막내.  링거를 꽂고 치료를 받고 가만히 누워 병실에 있다 보면 보고 싶어서든 아니든 TV는 안 친한 사람들의 어색함을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어머님들의 픽은 아침 뉴스부터 인간극장, 속풀이쇼 동치미, 아침마당, 건강 프로그램 등이다.  출근할 때는 보기 힘든 프로그램이 지치지도 않고 계속 나온다. 누가 어떤 채널을 선택할지는 정한 적이 없지만 무조건 누구든 리모컨을 쥔 사람이 왕이다. 이 병실에서 가장 오래 머문 C 할머니가 주로 리모컨을 조정한다. 나야 선호하는 채널도 즐겨보는 드라마도 없어서 뭘 보든 상관이 없지만 하루 종일 왕왕대는 TV 소리에 처음에는 귀기우려 듣다가 심심하면 봤다가 다들 다른 일을 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가끔씩 TV에 나온 사람들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날은 부부들의 이야기를 토크쇼로 하는 <속풀이쇼 동치미>를 보며 "아. 남편들은 다 아기 같아. 뭐든 다해달라 하고. 이렇게 여자 마음을 모르네."  그러면 옆에서 한 두 명씩 "맞아요. 그니까요." 맞장구를 친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이런저런 경험담들이 끝도 없는 수다로  이어진다. 이렇게 TV는 안 친한 사람들의 대화를 유도하는 병실의 숨은 조력자다. 이쯤 되면 제5의 멤버쯤 되는 듯.

마법모자가 필요한 순간 : 뜨거웠던 온도 전쟁

밤 10시. 병실의 밤은 일찍 찾아든다. C 할머니는 몸이 시려 슬그머니 보일러를 튼다. 새로 들어온 B 할머니는 더워서 에어컨을 켠다. 이 와중에 C 할머니는 바깥공기로 환기를 해야 한다며 창문도 열어두신다. 8월 삼복더위에 보일러도 오버고 문 열고 에어컨 는 것도 이상하다. 난 뭐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그냥 잔다.

 아침 7시.

"아니. 왜 이래. 방바닥이 뜨끈뜨끈해. 아니 도대체 보일러는 누가 튼 거야?" B 할머니의 성난 목소리가 날카롭다.

"아. 제가 틀었어요. 새벽에 꺼야 하는데 깜박했네. 미안해요." C 할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대꾸한다.

"아니. 더위에 이렇게 덥게 있으려면 1인실을 쓰던지 해야지 이게 무슨 일 이래." B 할머니가 한마디 덧붙인다.

중간에 낀 나는 어찌할지 모르고 가만히 있는다. 안 그래도 보일러 전쟁은 그전부터 있었다. 다들 잠들면 C 할머니몰래 보일러 온도 30도로 해놓는 통에 다들 적잖이 불편해하던 상황이었다. 나는 모. 그냥 산후조리원에 왔구나 생각하고 그냥저냥 있던  터였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좀 심각하다. 병원장님이 따로 C 할머니께 방을 옮기는 게 어떠냐 제안한다. 그러자 C 할머니는 "제가 조심할게요. 괜찮아요." 하신다. 이 와중에 B 할머니는 간호사들에게 자신은 더위를 못 참는다며 방을 옮겨달라고 큰소리를 치고. 에고 어쩌지. 이 애매한 상황을. 결국 B 할머니는 방을 옮기고 C 할머니는 아주 불편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졸지에 중간에 낀 나는 가만히 듣고 만 있었고 그때부터 C 할머니는 나를 아주 고마워했다. 말없이 묵묵히 있어준다고. 아.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 사람을 골라  쓰고 바꾸는 것은 하면 안 된다고 늘 생각했던 터다. 이 사람 싫다고 저 방으로 옮기면 더 좋은 사람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 그냥 처해진 상황에 맞춰 조율하면서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 뿐 뭘 더 참은 것도 양보한 것도 없었다. 다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바꾸는 B 할머니의 용기가 조금 신기했을 뿐. 이 일이 있은 후, C 할머니는 더 이상 보일러를 틀지 않았다. 이럴 때는 영화 <해리포터>에서 처럼 기숙사 방배정을 해주는 호그와트의 마법모자가 있으면 겠다 엉뚱한 상상을 한다. 할머니들이 모자 쓰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70조 할머니의 판타지 소설

일주일 전, 밤 8시쯤 K할머니는 시끌벅적하게 등장하셨다. 알고 보니 뇌출혈이 있었는데 이 병원이 좋다고 오셨단다. 바로 응급차로 큰 병원에 가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지만 막무가내로 배가 고파서 밥 먹고 아침에 대학병원에 가신다고 떼를 쓰셨다고. '아. 이건 지. 척추질환 전문병원에 뇌출혈 환자가 밥 먹으러 오는 건 무슨 상황이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들 걱정스럽게 한 마디 한다. 뇌에 충격이 있어서 그런지 K할머니의 말은 횡설수설 어눌하게 들려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다. 대충 조합해보니, 뇌출혈 증상이 있은지 10일째라고 그런데 아직 때가 안돼서 조물주가 안 데려간 거라고 하신다. 도인이 오셨나. 그 대담한 호기로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간호사들도 긴장한 건 마찬가지 수시로 들락거리며 할머니의 상태를 체크한다. 의사 선생님도 밤 9시, 새벽 5시 병실을 들여다보시며 할머니가 괜찮은지 확인한다. 주위의 호들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K할머니는 아침식사까지 가뿐히 하시고 근처 큰 병원으로 유유히 사라지셨다.


3일 후, 그분이 또 나타나셨다.

"오. 아직 있었네. 허리 괜찮아?" K할머니가 나에게 물으신다.

 " 네. 할머니. 할머니는 괜찮으셔요?" 답한다.

"그럼. 피가 굳었데. 괜찮아. 약만 먹으면 된데. 교통사고 당해서 발가락 눌린 것도 치료하려고 왔지. 내가 여기 오고 싶다고 했어."

아이돌 팬심도 어마어마하지만 뇌출혈도 못 막은 할머니의 병원에 대한 무한 사랑, 팬심도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그 이후로 할머니의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는 매일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내후년 2024년 전쟁이 와. 그래서 다 부산으로 가야 해. 내가 딱 들었어. 내가 3번 죽다 살아났잖아. 신이 내가 할 일이 있어 살려주신 거야. 뇌출혈이 이번엔 우측, 4년 전엔 좌측에 왔었어. 근데 다 살려주신 거야. 내가 할 일이 아주 많다고. 내년에 내가 투자한 게 터져. 그게 70조야. 근데 세금이 40%야. 내가 여기 원장님한테 말했어. 부산에 병원 지어준다고. 12년 전에 말했거든. 이제 내년에 딱 지어줄 거야. 신도들이 계속 들어와. 어제도 100명이 우리한테 온다고 전화 왔다니까."

어마어마한 이야기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어디까지가 허풍인지 모를 정도다. 판타지 같은 말씀에 난 그만 웃음이 난다.

"70조요?  와. 부자네요. 전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숫자예요. 70조 할머니 부러워요."

내 옆의 C 할머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듣지도 않으시고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 나는 신기하고 재밌는 이야기에 끄덕이며 들어드린다. 피곤하면 눈 감고 자고.  

다음 날, 아침.

"잠이 안 와서 고생했어요. 밤새 통증이 심해서." 의사 선생님 회진에 C 할머니가 고통스레 말씀하신다. 회진이 끝나고 K할머니가 C 할머니에게 말을 거신다.

" 그게 귀신이 와서 그래. 밤새 잠 못 자게 괴롭히는 거라니까."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그런 말씀하시는 거 싫어요. 하지 마세요." C 할머니가 딱 잘라 말씀하신다.

'어, 어쩌지.' 나를 사이에 두고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C 할머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고  K할머니는 들어본 적도 없는 신도들이 많은 어떤 종교단체란다. 참, 애매모호한 종교이야기엔 뭐라 할 말이 없다. '아,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네.' 슬그머니 일어나 나간다.

가을이 익어가는 옥상

병원의 옥상에는 텃밭이 있다. 호박, 수박에 참외도 있고 대추도 주렁주렁 열렸다. 일찌감치 열린 포도는 환자들이 드나들면서 다 따먹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원장 선생님이 포도를 한 상자 사서 걸어두라고 하셨다고. 환자들이 오며 가며 먹으라고 마음 써준 윈장 선생님의 따뜻함이 남다르다. 이른 저녁을 먹고 산보도 하고 후식으로 포도도 따먹을 겸 C 할머니랑 501호 떡볶이집 할머니랑 옥상에 올라가기로 한다. 오늘은 퇴원 1일 전, 내가 없으면 둘 만 남아 어색해질 C 할머니, K할머니가 은근 걱정이 된다. 저녁 드시고 누워계신 K할머니께 말한다.

"어머님. 밥 먹고 산책 겸 포도로 디저트 하러 옥상 갈까요?" 말을 건넨다.

"그럴까." 하시며 선뜻 일어나신다.

K할머니는 교통사고로 발을 다쳐서 걸음이 불안 불안하다. 기다렸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다. 난간을 잘 잡고 계단을 올라가시라고 말씀도 드리고. 천천히 올라가시는 K할머니를 보고 있으려니, C 할머니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귓속말로 한마디 하신다.

"아니. 걸음도 못 걷는 사람을 왜 데리고 왔어~"

나는 한번 웃고 만다. 오래간만에 바깥바람을 쐬니 좋다. 그 사이 치열했던 여름이 다 지나가고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머리칼을 흔든다. 시간과 공간이 훌쩍 이동한 느낌이다. 하늘이 유난히 높고 푸르다. 저 멀리서 따로 또 같이 조심조심 걷는 할머니 세 분이 보인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말 한마디 못 붙였던 분들이었는데, 이제는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이렇게 산책도 같이하게 되었다. 사람들이랑 친해지는 일은 그 과정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언제나 신기한 일이다. 가을 하늘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C 할머니는 방울토마토 세알을 따서 내 손에 얹어주신다.

퇴원하는 날,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 데 C 할머니는 식사를 하시다 말고 버선발로 따라 나오신다. 못내 아쉬운 듯 쉬이 들어가지 않으시고 지켜보시다가 내 등 뒤로 "그동안 고마웠어요. 선생님"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저도 감사했어요. 푹 쉬셔요." 얼른 답을 하니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닫힌다.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을 유배 아닌 유배생활처럼 병원에서 지내고 보니 어느덧 한 계절이 지나고 가을이 코앞에 와 있다. 어디서든 사람들과의 관계는 계속되고 혼자만 쉬고 싶다던 투정들도 결국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는다. 참 지독히도 인간들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갑작스레 재발한 통증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없어 조용히 울던 어느날,  할머니들은 이런 나를 발견하고는 어느새 식판을 올려다 주고 수저를 들어 손에 쥐어주시고는 눈물을 닦아주신다. 도움을 건네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 눈앞에 와 있다." 아픈데 말도 않고 울기만 하네. 밥은 먹어야 힘을 내지. 내가 먹여줄까. " 하시면서. 역시 같은 아픔을 먼저 겪은 어머님들의 위로는 다. 괜한 설움까지 더해 꺼이꺼이 한바탕 울고 나니 통증은 그대로지만 가슴은 후련하다. 도저히 앉을 수는 없어 똑바로 선채로 국물에 밥 한술을 말아먹는다. 할머님들이 '잘 했다!' 칭찬해 주신다. 이런 응원이 힘이 되었을까. 그날 나는 원장님의 사랑이 담긴 2배 강력해진 고통스러운 침 치료를 2시간 동안이나 잘 참아낼 수 있었다.

 

집에 왔다. 창을 열고 익숙한 침대에 누워있는다. 가을바람이 선선히 불고 푸른 하늘에 적당한 온도가 좋다. 오늘 날씨처럼 덥지춥지도 않은 나이를 초월한 병실 동지들의 묵직한 우정이 보일러를 켠 듯 온기로 남아 아직도 가슴 한켠이 뜨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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