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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ul 21. 2022

기꺼이 불편한 휴가

걷기 여행의 특별함을 아시나요?

난 운전이 불편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숙하다.  매일 하지 않아서 그런다고 혹은 아직 꼭 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없으니 운전이 늘지 않는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맞는 말이다. 대중교통으로 다닌 세월이 너무 길어서 그런가. 아무 생각 없이 버스에 올라타는 게 나는 더 편하다. 혹여라도 운전을 해야 한다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주차된 우리 차 앞에 누군가 또 주차를 했다면 어떻게 밀고 나가지? 좁은 틈을 빠져나가느라 핸들을 잘못 꺾기라도 해서 옆 차에 스크래치라도  정말 낭패인데. 그래서 나는 시간이 없고 급할 때가 아닌 아파트 주차장이 한산한 시간에만 운전을 시도한다. 주차장 입구를 잘 빠져나왔다면 그다음엔 끼어들기 타이밍을 기 위해 또다시 긴장한다. 자칫 늦거나 엄한 타이밍에 들어가면 뒤차의 빵빵 소리에 심장이 쪼그라든다. 그리고 절대 모르는 길은 가지 않는다. 익숙한 길, 편한 길로만 간다. 아무 생각 없이 가다 보면 결국 자주 애용하던 버스노선 코스로 가는 나를 발견한다. 이건  정차만 안 할 뿐 버스랑 다를 게 없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다음엔 가장 큰 미션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주차. 무조건 두 칸 이상이 남은 자리라야만 할 수 있다. 한 자리만 남아있는 곳이면 깔끔히 포기하고 다른 층 주차장을 찾아간다. 그래서 입구에서 가장 멀고 후미진 곳에 주차하기 일쑤다. 주차장이 늘 만차인 주말이나 공간이 좁은 시내엔 차를 몰고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운전은 내게  빠를 것도 더 편할 것도 없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일 뿐이다. 게다가 요즘은 기름값도 만만치 않아 그냥 운전을 포기하자 맘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당당히 뚜벅이를 자처한 .


이번 여름에도 아이 셋 중 같이 가고 싶다는 아이 둘 만 데리고 속초를 간다. 방법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기나긴 여정으로. 차 없이 가는 뚜벅이 여행살짝 다른 매력이 있다.


모든 게 심플해. 나는야 미니멀리스트.

내 손, 내 어깨에 짐을 다 들고 다녀야 하니 가방이 가벼워야 한다. 긴 여정일지라도 여벌 옷은 5세트를 넘지 않는다. 5세트지만 다 같은 종류의 여름옷은 안된다. 짧고 시원한 것. 길고 시원한 것. 편한 생활복. 살짝 두께감 있는 점퍼까지. 최소한의 짐을 싸서 작고 팩트한 캐리어에 넣는다. 휴대전화, 선글라스, 지갑은 작은 크로스백 넣으면 준비 끝. 이제 어디든 나갈 준비가 된 셈이다.

 걸어다니다 발견한 제주해변 카페

다음은 일정 짜기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야 하므로 하루에 딱 한 곳, 많으면 두 곳만 간다. 볼거리와 먹을거리, 할 거리가 한 곳에 붙어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 만약 속초를 간다면 속초해수욕장 근처 바다 뷰 카페서 차를 마시고 해수욕을 하고 회 한 접시 먹는 코스로 모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곳으로 한다. 굳이 멀리 인*타 맛집, 네*버 맛집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냥 동네 식당으로 느낌적인 느낌으로 휘적휘적 걷다가 사람 많고 맛있어 보이는 곳으로 고고. 그러다 의외의 맛집을 발견하는 행운도 종종 생긴다. 물론 망할 확률도 높지만. 하루 만보걷기는 걱정마시라~

골목골목 동네를 알아가는 소소한 즐거움

 뚜벅이 여행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미션 중 하나는 숙소 정하기.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고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곳, 재래시장이 근처에 있으면 너무 좋고, 아침저녁으로 산책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위치라면 베리굿이다. 게다가 조식까지 제공되는 숙소라면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버스나 택시로 이동하니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이동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시간대 동네 산책코스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낮은 담장, 흐드러지게 핀 꽃들, 살짝살짝 보이는 소소한 가정집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평화로운 골목 어귀에서는 어슬렁거리는 길냥이나 세상 팔자 좋아보는 개들도 보인다. 도시의 그들과는 달리 전혀 도망치거나 숨지 않는다. 그저 자기의 공간과 시간을 여유로이 즐길 뿐이다. 나 또한 그러하듯이.

제주 바다 길냥이

동네 문구점, 만화방,  코인세탁소, 치킨집등 그곳에 사는 사람만 아는 골목 작은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말엔 우연히 발견한 숙소 근처 성당에도 가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신성한 경험까지 추가된다.

너에게 멍 때릴 자유를 허하노라.

단순한 일정이고 바쁘게 여러 곳을 다닐 욕심도 운전할 필요도 없으니, 버스나 택시에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보며 멍 때릴 뜻밖의 시간이 생긴다. 내가 원하는 행선지까지 믿을 만한 운전사가 태워주어 난 그저 그 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길을 잃을까 지나칠 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한없이 곰곰이 생각에 빠질 수 있다. 이어폰을 끼고 나른한 가요 한 곡을 들어도 되고 인강을 들으며 요긴하게 자투리 시간을 실속 있게 쓸 수도 있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는 그날 해야 할 일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저장하며 하루를 준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버스정류장 놓칠 수 있음 주의! 혹시 잘 못 내려도 그냥 또 거기서 여행하면 되는 거지요.^^

한 곳에 오래 머물면 보이는 것들

 같은 곳을 다른 시간 때에 즐겨본다면 어떨까. 차를 타며 편하게 여러 곳을 여행할 자유 대신에 때때로 길게 한 곳을 볼 여유를 선택한다. 같은 곳이라도 아침에는 해가 뜨는 산뜻함을 오후에는 뜨거운 햇볕과 푸른 바다가 주는 시원함을 만끽하기도 한다. 흐릿한 저녁이면 바닷배의 불빛이 수면에 비치며 생기는 낭만적인 풍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아침 산책, 오후 수영
저녁 물안개가 낀 해변

같은 곳을 다른 방향에서 보는 것도 재밌다. 아침산책을 오른쪽으로 쭉 30분 해를 바라보며 걷는다.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를 관망하다 반대방향으로 돌아 나온다. 이번엔 아까와는 다른 풍경이 보인다. 같은 곳 다른 느낌이다. 모든 상황이나 사람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의외의 깨달음도 같이 얻는다.

같은 곳 다른 방향, 속초해수욕장
길을 잃으셨나요? 정말 잘 하셨네요~

요즘은 길찾기 앱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누군가에게 길을 물을 일도 별로 없지만, 여행자의 특권이자 현지인과의 소통 첫 단계는 길묻기다. 버스정류장을 모를 때 혹은 멍때리다 지나쳤을 때 뚜벅이들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면 큰 손해다. 이런 실수랜덤으획득하는 걷기 여행자들만의 재미라고 봐야 정신건강에 좋다. 운이 좋으면 내려야 할 정류장에 한번 더 안내해주는 인심좋은 동네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원하는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의외의 맛집을 발견하는 기분좋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돌발상황을 즐기는 여유로움은 걷기 여행자의 필수요건이다.

우연히 발견한 빙수 맛집, 백금당, 속초

누군가 고맙게도 운전해준다면 편한 여행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기꺼이 따라나선다. 그렇지만 차가 없고 운전을 못한다 해서 여행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느리면 느린 데로 단순하면 단순한 데로 같은 곳에서도 새롭게 발견할 것들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버스 타고, 지하철도 타고, 택시로 갈아타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그곳은 헤매던 골목마다 이야기가 있고 우연히 마주친 사람마다 표정과 얼굴이 다. 여러 해가 지나 다시 찾아도 그때 그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신기한 경험을 종종 다. 차를 타고 지나쳤으면 놓쳤을 풍경들이 하나하나 정지화면으로 클로즈업되어서 내 삶에 들어오 경험. 걷기 여행의 매력은 참으로 깊다. 소중한 사람들에게만 나누고픈 아주 고단한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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