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요일 Sep 04. 2022

그동안 우리 참 외로웠구나!

편의점에서 얻은 뜻밖의 위로, <불편한 편의점>

요즘 여기저기서 핫하다고 소문난 책 <불편한 편의점>, 이 책을 아들이 학교에서 읽어야 한다고 부랴부랴 샀다. 최근 허리디스크로 누워있는 시간이 많은지라 책은 상비약처럼 없어선 안될 그 무엇이 되어버렸다. 안 그래도 지인 몇몇이 재밌다이 책을 추천해준 터라 아들에게 얼른 책을 내놓으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귀찮은 듯 책을 찾아 건네주는데 아직도 뽁뽁이 포장이 벗겨지지도 않은 배송받은 상태 그대로다. 웃으며 마지못해 주는 척하는 아들의 얼굴이 뭐라도 엄마를 놀려서 말이라도 붙이고 싶은 장난꾸러표정이다.

 "아니, 무슨 엄마가 협박을 하고 그래. 이 책 화요일에 가져가야 해. 그때까지 읽을 수 있어?"  

이게 무슨 개구리 뒷다리 긁는 소린가. 날 뭘로 보고.

"당연하지. 얼른 주기나 해." 책을 받자마자 하루 만에 쭉 읽어냈다. 쉽고 재밌고 따뜻한 책이다.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책표지
옥수수수염차 한 잔에 무장해제된 외로운 사람


아, 우리 모두 참 힘들고 외로웠구나.



 마지막 장을 읽고 느낀 한 줄 평이다. 몇 주 전에 읽었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나 지금 읽은 <불편한 편의점>에서나 팍팍하고 경쟁적인 삶에 지친 사람들이 쉴 곳을 찾고 작고 소소한 행동으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내용들을 심심치않게 찾을 수 있다. 기나긴 전염병의 유행 속에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서 일까. 모두들 뭔가 열심히 쫓기듯 살아가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고 위로받기보다는 상처받고 힘들어한다. 이렇게 다른 누군가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고민 하나씩을 안고 외롭게 버티며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들른 편의점에서 네모 머리 험상 굿게 보이는 남자가 옥수수수염차를 건네며 앞에 앉는다면 어떨까? 작아지는 존재감에 허탈한 마음으로 혼술 하는 가장이, 글이 써지지 않아 골머리를 앓는 무명작가가, 매일 게임만 하고 정신 못 차리는 30살 아들이 걱정인 엄마가, 전직 잘 나가는 경찰이었지만 이제는 한물간 흥신소 직원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 상황에서 뭔가에 홀린 듯 누런색 옥수수수염차를 나누어 마시며 서울역 앞 노숙인이였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독고에게 주저리주저리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따뜻한 위로와 힘을 얻어 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어찌 된 일일까.


힘드시죠?
(중략)
예. 힘듭니다.

유도 신문인 줄 알면서도 당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마치 둑이 무너진 듯, 경만의 입에 모터가 달린 듯, 온갖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중략) 경만은 신들린 듯 고해성사하듯 마구 침을 튀겨가며 사내에게 이야기했다.

살다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갈등이 더욱 힘들게 느껴진 적이 많다. 갈등이 시작된 당사자와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푸는 것이 가장 좋지만 너무 예민하거나 화가 많이 난 상태에서는 직접 해결이 오히려 더 큰 상처가 될 때도 많다. 이럴 때는 전혀 관계없는 제삼자에게 털어놓으면 문제 상황이 더 객관적으로 잘 보이거나 말을 하면서 '내가 뭔가를 잘못했구나'. 느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독고가 그런 사람이었을까. 자신의 기억은 모두 잊어버리고 텅 빈 그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게 되었을까. 네모반듯 백곰 아저씨에게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그들의 고민을 말한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독고 씨가 들어줘서 좀 풀린 거 같아요. 고마워요.

아들 말도 들어줘요. 그러면... 풀릴 거예요. 조금이라도.

돌고 돌아 십시일반 나누는 위로

 편의점 사장, 염여사는 어느 날, 신분증, 수첩, 카드 등 중요한 것들이 든 파우치를 서울역에서 분실한다. 다행히 노숙인 독고 씨가 파우치를 습득해서 염여사에게 건네준다. 이 과정이 자뭇 할리우드 뒷골목의 피 튀기는 싸움터처럼 치열했다. 결국, 필사적으로 파우치를 사수해낸 독고에게 염여사는 고마움을 갚고자 그녀가 운영하는 편의점에 들러 언제든 도시락과 음료수를 먹고 가도록 허락한다. 이후, 독고는 매일 같은 시각, 저녁 8시에 도시락을 먹고 깨끗이 치우고 간다. 이렇게 염여사와 독고의 인연은 시작된다.


어느 날 늦은 저녁, 야간 알바가 없어 홀로 편의점에 있던 염여사. 취기 어린 20대 아이들의 버릇없는 행동에 한마디 하다 결국 시비가 붙고 만다. 바로 이때 어디선가 독고가 흑기사처럼 나타나 염여사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사고뭉치 아들 민석보다 독고로부터 더 많은 도움과 위로를 받는 염여사, 긴 교직경력에서 온 직감에서였을까. 그녀는 일면식도 없는 독고라는 사내에게 야간 편의점 알바를 맡기고 그에게 잊힌 것들을 하나씩 찾아가도록 발판을 만들어 준다. 독고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든든하게 염여사를 지켜준다. 돌고 도는 선한 관계의 힘을 이들에게서 봤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252쪽)

역지사지(易地思之) : 잃고 나면 얻는 깨달음
역지사지, 나 역시 궤도에서 이탈하고 나서야 깨우치게 된 단어다. 내 삶은 대체로 일방통행이었다. 내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고, 남의 감정보다는 내 감정이 우선이었으며,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내치면 그만이었다. 가족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237쪽)


 독고는 편의점에서 잊힌 기억들을 하나씩 되찾아간다. 자신의 뜻대로 살면 모두 이해해줄 줄 알았지만 결국 홀로 남게 되었다. 아내와 딸을 잃고 지난 자신의 잘못을 기억해내고 역지사지의 의미를 되새긴다. 때늦은 후회지만 솔직하게 가족에게 고백할 용기는 낼 수 없었나 보다. 아마도 미안한 마음에 찾아가 볼 엄두도 못 냈겠지. 왜 항상 가까운 가족에게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마음을 고백하는 게 어려울까. 이럴 때 네모반듯 독고씨는 흥신소 곽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띄엄띄엄 어눌하게 말했던 그.

손님한테 ...친절하게 하시던데...가족한테도...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그럼...될 겁니다.
(251쪽)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해본다.

기획상품도 다양한 상품도 없는 편의점의 매출은 항상 그럭저럭이다. 하지만 염여사는 자기가 가져갈 수익보다는 직원들의 생계를 걱정하며 가게를 접지 못한다. 꼼꼼하게 수익을 따지자면 남는 것도 없는 편의점을 꿋꿋하게 지켜내는 염여사가 고지식해 보이기도 다. 자본주의가 판치고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인터넷을 뒤져서 가장 싼 물건을 사는 것이 똑똑한 현대인의 필수 요소이다. 하지만 재고 따지는 것이 많아질수록 값어치를 따질 수 없이 소중한 친절, 의리, 배려나 소명 등은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혹자는 돈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된다고 말한다. 열정을 받쳐 일하는 사람들을 기만하고 비웃는 일터, 그들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고 쫓겨나고 억울해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돈을 내면 물건을 받고 친절한 응대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건값은 돈으로 계산되지만 물건을 주고받는 행위는 엄연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행위이다. 함부로 돈을 던지거나 반말을 하는 사람에게 친절함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빠르게 자기 것을 챙기는 요즘 세상에 좀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기다려주는 멋진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염여사의 고귀한 행보가 따스하다. 꼭 지키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다.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살기로 했다.
(266쪽)


 결국, 그녀는 죽음에 이를 뻔한 귀한 생명 하나를  살려냈다. 교실이 아닌 세상에서 그녀는 그녀만의 방법으로 교육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숭고한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도 그 귀한 일을 계속하고 싶다.' 마음속으로 다짐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니체를 품은 가을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