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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Sep 17. 2023

니체를 품은 가을밤

<마흔에 읽는 니체> 슬로리딩2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불금을 맞이하러 분주하게 퇴근을 준비한다. 오늘은 영어선생님들의 모임, S.R.G.T에서 <마흔에 읽는 니체>를 읽고 1박 2일 워크숍을 하는 날이다. 쉽지 않은 책에 무거운 주제지만 혼자가 아니고 같이 읽으니 가능하다. 한 달에 한 번쯤, 아니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니체를 읽는다면 어떨까. 어려운 철학책이지만 같이 읽고 나눌 친구들이 있으니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편안하게 철학에 다가갈 수 있어다. 약속한  아침까지 책을 한번 더 읽고 워크숍의 알맹이를 채울 아날로그식 활동도 준비한다.


잠깐만요. 퀴즈로 복습하고 가실게요~

수원의 명물, 왕갈비치킨후라이드와 보영군만두를 앞에 두고 더 늦기 전에 퀴즈를 시작한다. 00에 들어갈 말을 맞추는 이름하여 땡땡퀴즈다. 무려 쌀국수 두봉지가 걸린 어마어마한 게임이다. 언제나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열정적으로 참여해 주시는 선생님들, 아직 동심이 남아있는 초1 교실이 이랬을까.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들고 정답을 외친다.


난이도 최강 니체 퀴즈~


나만의 아포리즘, 찾아볼까요?

바쁜 하루하루, 어떻게 시간을 내서 책을 읽어오셨을까. 진지하고 어려운 니체의 말들을 더듬더듬 다시 읽으며 반복되는 삶에 지칠 때쯤 각자의 삶에 촉촉한 위로되어줄  책 속 한 줄을 찾아 적는다. 좁은 탁자 위에 치킨을 뜯던 손을 얼른 휴지로 닦아내고 파스텔톤 색지에 한 글자씩 또박또박 문장적는다. 암송도 연습한다.

제 때에 기억할 줄 알아야 한다. 제 때에 잊을 줄도 알아야 한다.

디오니소스적 긍정, 삶에서 끊임없이 놀이의 계기 만들기

춤추는 별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을 상실하고 또다시 발견하는 법을 터득하여야 한다.

자신을 원하라. 그러면 자신이 될 것이다.

추한 것과 싸우지 않는다.

오늘의 나는 어제한 선택의 선물이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삶은 직선이 아니다. 곡선이다.


와. 이렇게 좋은 글귀가 많을 줄이야. 놀랍게도 같은 책을 읽고 찾아낸 글귀가 서로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 각자의 삶이 다르고 관점이 달라서일까. 글을 쓸 때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얼굴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시작하니 초롱초롱한 빛을 내며 정성을 다해 귀를 열고 듣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각자 적은 글귀를 들고 사진을 찍자고 카메라를 갖다 데니 활짝 웃는 얼굴을 보이는 다정한 사람들.


긍정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강력한 에너지다.


우연히 모임을 시작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느낌에 딱 맞는 한 문장을 고른다. "그냥 한번 해보자. 안되면 말고"라는 주문을 외며 뜻밖의 기회에 모임은 시작되었고 서로를 위해 좋은 시간을 만들 것이고 충실히 책을 읽고 나눌 것이라는 긍정과 믿음이 오늘날 필연적 만남을 만들어냈다. 사자처럼 화  일이 많은 요즘, 비열하고 비도덕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한 세상에 긍정을 이뤄내는 일들은 지친 마음에 큰 힘이 된다.


니체의 심야상담소를 열어볼까요?

책 속에 담긴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기에는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내용도 그랬고 실천하기는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상세계는 책 속에나 존재하는 것일까. 서로의 고민, 인생의 질문들을 적어본다.


니체는 믿고 있는 것들을 의심하라고 하는데 지금의 삶에 만족해도 의심해야 하는 걸까요?

우린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요?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에서 처럼 시간을 초월해 조언을 구하듯 우리는 서로에게 니체가 되어 인생의 조언을 니체의 말을 가져와 인생의 길을 안내한다. 밤이 깊어가고 질문도 깊어진다. 서로가 서로의 조언자가 되어 이쁜 그림이 있는 편지지에 각자의 답변을 적는다. 상담소는 늦은 저녁, 친히 찾아주신 고객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책 한 권에 이벤트하나, 워크숍으로 마무리하는 책거리.

긴긴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답하며 고민과 이야기가 무르익어간다. 12시 자정이 되자  상담소는 다음날 아침을 기약하며 문을 닫는다.

싱그러운 가을아침

다음날 아침, 무더웠던 여름날의 열기가 가신 듯, 비 온 뒤 상쾌한 아침을 연다. 아침에 다시 만난 사람들, 새로 태어난 듯, 피로가 가신 얼굴에 생기가 돌아 다들 이뻐졌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성곽주변을 걷는다. 니체는 걸을 때 얻는 생각만이 가치 있다고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성곽을 걸으며 니체도 했을 많은 생각과 또 망각도 하고 신선한 가을만끽한다. 무념무상으로 이어지는 길함께 걷는다. 이렇게 우리는 책 한 권을 눈에서 머리로, 가슴에서 발끝으로 담아 새긴다. 참으로 충만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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