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트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가 길을 잃었다. 알듯 말듯한 은유와 표현을 내 맘대로 해석하고 음미하는 재미가 있긴 했지만 어려운 건 사실이었다. 이번에는영어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연구회, S.R.G.T(Slow readers, Great Teachers)에서 <마흔에 읽는 니체>를 읽고 워크숍을 준비하게 되었다.다시 니체를읽는다.
'낙타-사자-아이'로 변화하는 인간
인간의 정신은 낙타, 사자, 아이 세 단계를 거쳐 변화한다고 한다.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버텨내는 인간의 단계를 말한다. "나는 해야 한다"는 말을 되뇌며 복종할 뿐 그 어떤 비판이나 항의도 하지 않는다. 그다음 단계는 사자이다. 사자는 자유정신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부정하고 파괴한다. 마지막 단계는 어린아이이다. 아이의 정신이랑 어린아이가 놀이에 흠뻑 빠져 몰두하듯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마흔에 읽는 니체, 88~89쪽)
지금 나는 사자다.
작년 굉장히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 이후로 숨겨진 내 안의 자유정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암선고를 받고 내 인생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로 생각했던 모든 일에 "왜?"를 붙여가며 따져 묻기 시작했다. 나는 왜 그렇게 많은 일을 아무 저항도 의문도 품지 않은 채 소처럼 낙타처럼 해내기만 했을까. 병든 몸과 피폐해진 시간은 잠자던 자유의지를 일깨워주었다.
최근 며칠간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시험문제를 보고 또 보아도 모자랄 이 시기에 시험문제 출제자가 시험지 인쇄도 직접 해야 한다는그 말에, 동의할 수 없는 학교의 규칙에 확 분노가 올라온다. 아니, 왜? 등사와 인쇄를 전담하는 주무관님이 계신데 왜 그걸 우리가 해야 하지? 하는 방법도 기술도 모르는데 그걸 새로 교사가 직접 배워서 해야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담당부장에게 물었더니 보안상의 문제로 교사가 직접 인쇄까지 해야 한다고 관리자님들께서 말씀하셨다고한다. 따박따박 따져 묻고 싶지만 일단 이번학기는 복직 후 처음이고 얼마 있으면 시험이니 참기로 한다. 정확하게 의견을 개진할 창구와 때를 찾아 논리적으로 말해야겠다 생각하고 일보 후퇴한다.
우리는 낙타였다.
늘 새로운 일이 생기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왜 그걸 해야 하냐고 한숨 쉬고 구시렁이나 할 뿐, 그걸 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지,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그 일이 오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더 따져 묻지 않고 괜한 갈등이나 분쟁을 만들기 싫으니 그냥 또 그 일을 또 해내고 만다. 거기에 더해 어떡하면 그 일을 빨리 잘 해낼지 생각하고 결국을 그 일을 뚝딱해내고 만다. 동물농장의 박서(Boxer) 같은 우리였다. 교육부정책이 바뀌면 이전것이 없어지긴커녕 옛날것은 그것대로하고 새로운 것은 새로운 것대로 따로 또 해냈다. 먼저 얹힌 짐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짐을 싣는 무자비한 주인에게 항의할 생각도 따져 묻지도 않는 그런 미련한 사람들이었다. 갈수록 힘든 학생사안에 학부모 악성민원에 시달려도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해도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 그것을 해결하려 애쓰고 그 모든 불합리를 버티며 이겨냈던 우리였다.
담당부장은 시험지를 직접 인쇄해야 한다는 관리자의 말에 왜 그걸 해야 하는지 문의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니지난 학기부터 그냥 그 일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들끼리 인쇄기 사용방법을 동영상으로 녹화까지 해서 돌려보며 익혔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혔다.
이런 일이 학교에서만 있는 일일까. 결혼하고 일을 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밥을 차리고 설거지, 빨래를 하고 가족을 챙기고 아이들을 돌보고. 계속 더하기만 있고 빼기는 없는 집안일이 문제라는 생각은 추호도 못했다. 반대로 어떡하면 애들을 더 잘 가르칠까. 어떡하면 집안일을 빨리 효율적으로 할까. 오르지 않은 월급이 문제라는 생각은 못하고 어떡하면 돈을 아껴 써볼까, 할인하는 곳, 세일하는 마트 정보를 주고받으며 알뜰하게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고, 어떡하면 더 나은 반찬으로 맛있게 밥상을 차릴까만 고민했던 나였고 우리였다. 애초에 우리에게 짊어진 짐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너도 나도 비슷한 짐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에 그 짐이 지워진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미련 곰탱이였던 우리였다.
언제쯤 아기처럼 즐기는 사람이 될까.
성스러운 긍정과 수용의 단계가 아이라고 한다. 달관한 인생의 선구자로 모든 인간사의 자잘한 갈등들도 달관한 듯 웃어넘길 수 있는 단계일까. 어느 순간 세상의 불합리와 불공평이 눈에 너무 많이 들어와 분노가 가시질 않는데, 나는 언제쯤 아이처럼 세상만사를긍정하고수용할 수 있을까. 가만 생각해 보니 아이처럼 성스러운 긍정의 모습을 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진정으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시고 즐기셨던 지도교수님이 그랬고, 사람들 앞에서 성가에 맞춰 아이처럼 심취해서 춤을 추시던 이해인 수녀님이 그랬다.
열심히 율동하시는 이해인수녀님. 뒤로는 가수 김태원, 박완규 (옥수동 성당)
영화 <코코>에서 주인공과 해변에서 춤을 추던 할머니의 모습도 생각난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고 단정 짓고 그저 매일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던 배우 윤여정의 말도 떠오른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일단 나는 지금의 분노를 자유정신을 일깨워준 고마운 도화선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눈에 보이는 불합리를 내 작은 분노로 바로잡을 수 있다면 싸우지않고 웃으며 하나씩 고쳐보려고 한다. 죽기 직전에야 아기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냈던 클림트처럼 나도 그때쯤 아이처럼 순수한 수용과 긍정의 마음을 갖게 되려나. 정신없이 현란한 무늬의 담요더미가 인간사의 복잡한 근심처럼 덕지덕지 쌓여있고 그 위로 근엄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아이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