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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Sep 22. 2022

그대들의 아저씨는 안녕하신가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 리뷰

디스크로 두 번째 입원 후 3일째, 치료를 마치고 무료한 시간이 시작될 즈음, 나는 비장의 무기인 노트북을 꺼낸다. 글쓰기를 위해서도 아니고 일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간 밀린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다. 전편을 다운로드하여 야심 차게 미리 준비한 폴더를 연다. 제목은 <나의 아저씨>. 방영된 지 한참 지난 드라마지만 지인들의 추천을 많이 받은 터라 시간이 되면 한번 봐야지 생각했다. 총 16부작, 가문의 희망이자 기둥인 성실한 중년 박동훈(이선균) 아저씨와 알면 알수록 어두운 이지안(아이유)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나이를 초월한 로맨스인가? 하는 호기심과 기대감은 어른 맛 감동으로 보기 좋게 깨졌다.

꾸역꾸역 살아내는 평범함의 굴레에 돌을 던지다.
나만큼 지겨워 보이길래
어떻게 월 5~6백을 벌어도 저렇게 지겨워 보일 수 있을까.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신발과 가방을 들고 똑같은 노선의 출근길을 가는 사람들,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업무를 하다가 비슷한 시간에 퇴근해서 비슷한 저녁시간을 가진다. 박동훈, 그는 남부러울 게 없는 안정된 직장에 식구들의 기대와 믿음을 한 몸에 받는 착한 한국 남자 아저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소설<스토너>의 주인공처럼 시종일관 심심한 표정과 단조로운 말투에 감정의 변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지안이 그의 인생에 뛰어들어오기 전까지는. 고단한 한국 아빠들의 삶을 엿본 것 같아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상사의 비난과 폭언에도 묵묵히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고 많은 업무 양에 치인 듯 퀭한 눈동자가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니. 퇴근 후에 시시콜콜 내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기를 바랐던 내가, 아내들의 바람이 아이들의 응석같이 철없이 보일 수도 있겠구나 때늦은 이해를 다. 


그의 아내는 왜 바람을 피웠나?


이다지도 성실한 남자를 남편으로 둔 그녀는 왜 외도를 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명확지 않다. 하지만 알 것 같다. 그저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던 부부는 서로 어긋나는 지점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것 아닐까? 지친 몸으로 상처받은 하루를 보낸 남편은 자신의 고통을 온전히 자기만 감당하고 철저히 숨김으로서 아내에게 더 이상의 괴로움을 주지 않는 것이 그의 사랑이라 생각했고 아내는 그 모든 것을 나누고 공감하고 해결방법을 같이 찾아가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입을 굳게 다문 남편의 모습에서 배려보다는 고독, 자신이 범접하지 못하는 외로움을 느낀 게 아닐까. 그리고 그녀는 공감하고 대화할 상대로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하게 된 거라 나는 이해했다.


로맨스를 기대하셨나요?


평범한 이들 삶에 이지안이라는 충돌이 없었다면 아마 이 드라마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을 사랑한 스파이처럼 이지안은 박동훈을 계획적으로 회사에서 몰아내라는 도준영(김영민)의 사주를 끝내 지키지 못한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 형과 동생, 친구 정희, 겸덕, 조기축구회 이웃들을 통한 박동훈 그리고 박동훈 그 자체를 들여다 봄으로써 더더욱 그에게 빠지게 된다. 사랑이 아닌 존경으로.


사라져 버린 따뜻한 이웃들의 향수

 

비록 낡은 차로 별 볼 일 없는 사업이지만 선뜻 박동훈의 형제 기훈, 상훈에게 청소업체를 넘긴 동네 형, 거의 매일 밤마다 친구네 술집 <정희네>에 모여 시시콜콜 다양한 모든 일들을 같이 축하하며 웃고 울고 싸우는 동훈의 동네 친구들,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의 모습은 참으로 정겹다. 골목골목 비좁고 초라하지만 길목마다 추억이 있고 사람 냄새가 난다.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한다며 모여 술 마시고 싸움질하는 모습에는 창피하다가 동훈이 상무가 되었다고 사돈의 팔촌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하해 주는 모습에는 부러웠다가 이지안의 할머니의 장례식에 모두 모여 텅 빈 빈소를 메워주었던 우정에는 따뜻함이 전해진다.


고독 보존의 법칙


늘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던 동훈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도 다른 사람에게 그 어떤 힘든 내색도 하지 않는다. 미련하기까지 한 그의 모습은 사뭇 부처나 성인군자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그는 왜 그렇게 모든 것을 참아내려 했을까. 그의 고독과 외로움은 도청이라는 방법으로 이지안에게만 들린다. 그는 왜 그렇게 참아야 했을까. 가난과 폭력에 일그러지고 사채업자의 지독한 괴롭힘에도 버티어낸 21살 이지안의 눈에도 그런 그는 한없이 불쌍해 보인다. 그녀는 말한다. 박동훈이 '성실한 무기징역수'라고. 무엇이 우리를 삶의 즐거움에서 몰아내고 무엇이 우리를 더더욱 성실해지게 만드는가. 사채업자 이광일의 광기 어린 눈빛은 박동훈의 한없이 서글픈 눈망울과 대조된다. 둘 다 외롭긴 마찬가지지만.


결국, 로맨스는 아니었다. 실은 그 보다 큰 사람들의 믿음, 온기, 이웃, 그리고 고독을 전했다. 그런데 왜 이런 결말이 새로울까. 어린 시절 봤던 <전원일기>는 한 동네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만으로 20년이 넘는 드라마로 장수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런 가족, 이웃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질까. 잃어버린 향수처럼 징글징글하지만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의 정이 그리워져서 일까. 어쨌든 진부한 사랑 얘기 말고 지지고 볶는 결혼과 이혼 말고, 동네 아저씨의 재미없는 이야기가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엄청난 경험을 했다. 말 안 통하고 답답한 꼰대 아저씨 말고 술 먹고 주사를 부리는 주책맞은 아저씨 말고 무뚝뚝하지만 따뜻했던 동네 아저씨의 재발견, 그에게도 말 못 할 고독과 슬픔이 있었다는 사실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새롭다. 문득, 우리 곁에 있는 아저씨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모두 안녕하신가요? 오깽끼 데스까~~



**사진출처: https://m.blog.naver.com/therenow/22127349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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