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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r 27. 2022

디어 마이 프렌즈, 디어 마이 라이프!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노년의 청춘일기

이제야 봤다. 2016년에 나온 드라마를 이제야 보고 뒷북을 친다. 본방사수를 했다면 이러쿵저러쿵 같이 수다 떨 사람도 많았겠지만, 혼자 보고 울고 웃다, 여운이 남아 이렇게 혼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 노희경을 좋아한다고 다. 그녀의 드라마는 믿고 본다고 너스레를 떠는 사람도 여럿 본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배역을 맡은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각 배우의 실제의 삶을 모아 드라마를 만든 것 같았다. 자연스러운 인물 설정과 극의 전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노년의 우정

 친구가 아파서 입원하면 친구는 물론 친구의 딸, 친구의 엄마까지 출동하는 장면, 치매에 걸려 행방불명이 된 친구 희자를 찾아 친구들이 각자 차를 나눠 타고 그녀가 갈 만한 곳을 찾아 헤매는 장면, 노년의 병치레로 힘들어할 자녀들이 걱정돼서 스스로 요양병원에 찾아간 희자. 안타까운 친구의 심정을 공감하며 아무 말 하지 안아도 된다고 그저 안아주며 위로했던 충남이의 표정. 지금은 사람 만나기가 그 어떤 일보다 어려워진 시기라서 그럴까.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호들갑 떨며 모여서 얘기하고 내 일인  감정 이입하는 장면은 부럽기까지 한 풍경이다. 요즘은 보기 드문 노년의 우정과 깊은 이해의 장면에 마음 한편이 뜨뜻해졌.


늙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

주인공 박완을 중심으로 그녀의 엄마와 이모라 불리는 별난 엄마 친구들 이야기는 각기 다른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펼쳐 놓으며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누구도 궁금해할 것 같지 않은 소위 꼰대들의 이야기를 30대 주인공 박완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보여줌으로써 부담스럽고 장황한 설명을 피한 것은 신의 한 수. 알고 보니 노년이 된 이모들에게도 청춘이 있었던 것. 비주얼이 탱탱하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사랑과 설렘, 잔잔한 표현이 뒤섞인 나름의 멜로를 전하며 20,30대가 주류청춘드라마에 나름의 색깔로 존재감을 뽐낸다. 충남 이모, 성재 삼촌, 희자 이모를 둘러싼 삼각관계는 충남 이모의 쿨한 포기로 60대 청춘 로맨스의 새로운 맛을 더했다. 주인공 완의 엄마 난희는 기타를 치던 편의점집 사장과 달달한 연애를 한다. 아마도 화룡점정은 정아 이모의 남편 석균 아저씨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평생 아내를 발톱에 낀 때만큼도 여기지 않았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돌연 이혼 선언하고 나간 아내의 모습에 번뜩 정신을 차린다. 노년에 편히 살며 인생을 마감해도 모자란 상황에 돌연 싱글이 된 석균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아내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그. 젊은 시절 아내에게 잘 못 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아이가 유산되어 피를 철철 흘리며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는 아내의 요청을 매몰차게 무시하고 면박했던 그였다. 뒤늦게 잘못을 뉘우치고 미안하다고 고백했지만 정아"왜 그 이야기를 하냐"며 절규하며 밥상을 뒤집어엎어 버린다. 이후 석균은 평생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한다. "좋은 남편 되기 십계명"을 외우며 수시로 아내 정아의 집을 들락거리며 어설픈 애정표현을 한. 20대 청춘의 싱그럽고 푸릇한 첫사랑과는 대비되는 때늦은 후회와 미안함으로 절절한 한 노인의 구애는 아름답기보다는 처절하다고 해야 하나. 다른 방식의 표현으로 천편일률적인 사랑의 공식에 질문을 던진다.


세대를 넘나드는 삶과 죽음이라는 공통과제

 요양원에 있던 어머니를 모시고 바다에 갔던 정아.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며 한가로이 산책하던 정아는 갑작스럽게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다. 아마도  새처럼 자유롭게 어머니를 보내드리던 그날, 정아 자신도 자유롭게 날아갈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죽음은 머뭇거리는 누군가에겐  용기를 또 살아갈 힘을 전해주고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 완이의 엄마 난희는 평생 꿋꿋하게 홀로 딸을 부모를 아픈 동생을 돌보는 깡패 엄마였다. 그런 그녀가 암에 걸리고 손쓸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았을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 완이의 인생을 욕심을 덜어내고 보게 된다. 절대 허락할 것 같지 않던 장애인 남자 친구인 연하와의 결혼을 허락하고 딸의 선택을 응원한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가볍게도 무겁게도 친근하게도 다양한 요리할 수 있는 드라마가 또 있을까.


사람 사이의 감정의 빚은 어떻게 탕감되는가.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나름의 이유와 짐을 안고 사는 그들, 하지만 그 짐에 깔리거나 징징거리지 않고 유쾌하게 그들만의 답을 찾으며 살아간다. 매 맞는 교수 아내였던 첫딸 순영이를 극악무도한 남편에게서 구해낸 아버지 석균, 그의 폭력을 인정하는 대화를 녹음하고 수억의 위자료를 받아내고 마지막으로 복수로 사위의 외제차에 못으로 찍~~ 스크래치를 내며 쾌재를 부른다. 무심한 아버지라는 딸의 서운함을 불식시킨 아버지 석균은 딸의 고맙다는 문자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으며 뿌듯해한다. 고집쟁이 아버지의 천진한 부성애는 그만의 방법으로 발휘된 것이다.

주인공 완은 엄마 난희가 친한 친구와 남편이 외도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을 나온다. 엄마의 독촉에 못 이겨 완이는 독극물을 들이켜게 된다. 난희는 이미 자살을 생각한 터라 혼자 남게 될 딸이 걱정되어 딸에게도 약을 마시게 한 것이다. 하지만 딸 완이에게는 자신을 죽이려고 한 엄마였고 평생 공포와 두려움, 원한으로 엄마를 기억하게 하는 장면으로 남아있다. 완이가 선배 동진과의 감정을 정리하고 돌아온 날, 엄마는 유부남 동진과 딸 완이가 만나고 있음을 뒤늦게 알고 동진의 사무실을 찾아가 직원들 앞에서 유부남이 자신의 딸의 인생을 망친다고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린다. 이 사실을 알고 엄마와 완이가 담판을 짓던 날, 그녀는 "그날 왜 날 죽이려 했어?" 따져 묻는다. 아무 말도 못 한 엄마 난희는 멍하게 바라보다 소리 지르는 완이를 부둥켜안고 운다. 이렇게 우리는 가깝고 쉬운 사이라는 가족끼리도 말 못 할 감정의 빚을 안고 산다. 그 빚은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일 수도 있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말 그대로 빚이고 부담인 것이다. 그 빚을 하나씩 탕감하는 일, 미쳐 설명하지 못했던 오해를 풀고 가는 일 그건 인생이 준 가장 큰 숙제겠지.

나는 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제발 나랑은 상관없이 행복해줬으면 좋겠으니까
나는 엄마가 아주 많이 불편하다.


디어 마이 프렌즈, 디어 마이 라이프

별  볼일 없는 우리 인생도 이렇게 모아 엮으면 멋진 드라마가 돼 듯, 우리의 실수투성이 인생도 소중히 담아내고 키워가면 어떨까. 내 곁의 친구를 지키고 내 가족과 잘 지내고 마지막으로 내 삶을 잘 지켜내는 일은 평생의 숙제일 것이다.  그런데 무리하게 나에게나 남에게나 열심히 하거나 애쓸 필요는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데로. 암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평생 연예인으로 화려하게 꽃 같은 삶을 살던 친절한 영원 이모가 말했다.


세상에 이 도 저 도 많아도
내가 살아보니까
진짜 도 중의 도는 '냅도'야

알아서 해. 냅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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