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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14. 2022

석파정에 가보셨나요?

중년의 진로수업 : 미래의 나

구독자 지니님의 소환으로 작년에 적었던 추억의 글을 편집하여 다시 올립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면 강사님이 글쓰기 주제를 공지해주십니다. 공지를 보자마자 제 머릿속은 글쓰기 시뮬레이션을 하느라 바쁩니다. 설거지할 때도, 요리할 때도, 빨래할 때도, 목욕할 때도 주어진 주제로 이 궁리 저 궁리합니다. 키워드와 중심 생각이 잡히고 대강의 틀이 완성되면 그때 바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다행히도 이 틀을 만드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이번 주 주제는 <미래의 나>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 맞는 키워드나 일화가 금방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계속된 비로 축축했던 마음이 오늘은 밝은 햇살에 꼬실 꼬실 말려진 기분입니다. 이럴 땐 집에 있을 수 없죠. 무작정 버스를 타고 떠납니다. 부암동에 가고 싶습니다. 예전에 갔던 환기미술관 근처 동네가 매우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고 미처 들르지 못했던 석파정도 가고 싶습니다. 물론 <미래의 나>라는 주제는 머릿속에 함께 있습니다. 맛있는 커피 한잔을 하고 석파정과 함께 있는 '서울미술관'에 먼저 갑니다. 전시의 주제는 '거울 속의 나'.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거울속의 나> 서울 미술관


 저는 언제나 저 자신을 바라보거나 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작품 속 글귀처럼 웃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싶으면 제가 먼저 웃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글쓰기를 하면서 저는 저 자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나, 지금의 나, 힘들었던 기억, 어려웠던 기억 하나씩 건져내어 마주 보기 연습을 하게 된 거죠. 글쓰기는 '나, 탐구생활'이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 끝에 미술관을 지나 석파정으로 들어갑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것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푸른 나무와 지저귀는 새, 멋들어진 기와와 한옥, 고풍스러운 돌담과 청명한 하늘. 분명 예술작품을 보고 나왔는데 이보다 더한 작품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걸음, 한걸음 사진을 찍고 감탄하며 걷습니다. 불현듯 사진 속 풍경들이 <미래의 나>가 되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줄 수 있는 창이 되고 싶습니다.


서울미술관2에서 바라본 석파정


깨끗한 창은 새로운 세상과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통로가 됩니다. 가끔 창밖을 바라보면 일상 속에 파묻혀 볼 수 없었던 산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길이 보입니다. 저는 바쁜 하루 속에서 한 번쯤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환하게 펼쳐지는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창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깨끗한 창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수많은 질문과 고민으로 이어지는 공부를 하면서 저는 저의 창을 수시로 닦아내야 하니까요. 뿐만 아니라 때때로 욕심과 나태함의 먼지도 털어내야 합니다. 가끔 이런 과정이 버겁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고로움은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풍경을 보게 하고 바깥세상을 제대로 보게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저는 힘을 내서 창을 닦고 먼지를 털어냅니다.


​저는 시원한 그늘이 있는 숲길이 되고 싶습니다.
석파정으로 가는 산책로

 오늘처럼 쨍한 오후, 시원한 숲길을 들어가면 서늘한 바람과 그늘이 맞아줍니다.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졸졸졸 시냇물 소리도 들립니다. 이름 모를 나무와 꽃, 풀이 무성하게 자라지만 누구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한없이 이어지는 길을 사람들은 걷다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저는 저의 길을 갑니다. 저의 길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길입니다. 서로 다른 길을 가던 사람들이 저의 길에서 만나고 헤어집니다. 하지만 절대로 가지 말라고 붙잡거나 빨리 가라고 밀지 않습니다. 각자 자기의 속도에 맞추어 갑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가다 저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그 길의 풍경을 즐깁니다. 처음 듣는 새소리, 물소리지만 전혀 싫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 함께 가는 길, 저는 그런 길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중요한 것을 지키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Eco-flow : Singing Nature > 김태수


석파정을 나와 잔디밭을 보니 ​눈에 띄는 작품이 있습니다. 독특한 형태와 색깔로 잔디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풍경을 헤치지 않습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중요한 것을 지켜내는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작품일 수도 있고 문화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저는 사람이 사람답게 어울려 사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If the culture doen't work, don't buy it. Create your own.
<Tuesdays with Morrie>



 ​많은 아이들이 배 안에 갇혀 한없이 차디찬 물속으로 가라앉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그 말을 아이들은 그대로 따랐고 영원히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교육은 죽었고 나라는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와 제 아이들도 그 배 안에 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저는 분노와 절망에 큰 슬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저는 교육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짓누르는 죄책감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는 잘못되어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문화나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어른인 제가 그것을 바꾸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가 속한 마을에서만이라도 능동성과 자율성을 키워보고자 마을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광명의 16 가족과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고 독서연계 체험을 하며 새로운 가족, 마을문화를 만들어 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10년 후에도 제가 속한 공동체만이라도 조금 더 낫게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다시 물에 잠기고 있는 배를 무책임하게 보고만 있는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석파정


석파정, 한적한 공간으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갑니다.


아, 여기에 오길 정말 잘했습니다.


​(2021.06.21 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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